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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브 Sep 21. 2022

언제든 떠날 각오

지금 이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계속 살아갈 용기

프랑스에 돌아올 때 정말 거의 맨몸으로 돌아왔다. 큰 캐리어와 작은 캐리어 하나. 그게 내 짐 전부였다. 밥솥도, 애정 하던 전기장판도 안 들고 왔다. 일 년 받은 비자가 끝나서 한국에 돌아가거나 이곳에 돌아온 것을 후회하고 중간에 돌아가거나 모아둔 돈을 다 탕진해서 돌아가거나, 얼마나 이곳에 머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집을 찾고서도 최대한 짐을 늘리지 않으려고 가전제품이나 가구 등의 크고 부피를 차지할 것들은 일절 구매하지 않았다. (주방기구도 같이 사는 친구의 것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최대한 짐들을 늘리지 않고 돌아왔을 때처럼 가볍게 떠나기 위해서였다.

유학시절당시 워낙 짐을 옮기고 돌아다닌적이 많아 짐을 많이 쌓고 돌아다니는걸 극도로 꺼리는것도 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당시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도 넓어지고 경력도 쌓이고 소비도 늘어났다. 이 소리인즉슨 프랑스에 떠나는 것을 미룰수록 한국에서 잃을게 많아진다는 소리였다. 유학 선배들의 말이 이해가 됐다. "한국에 한번 돌아오면 다시 나가기 힘들다". 지금 떠나지 않는다면 다시는 프랑스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렇게 코로나 상황이 조금씩 잠잠해진 올해초 프랑스에 떠나기로 결심했다.


프랑스에 돌아온 지 7개월이 되어간다. 조금씩 이곳에서의 삶이 안정되간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를 만들고 돈을 벌기 시작했고 소속된 곳이 늘어났다. 최대한 짐이 될만한 것들은 소비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상황에 따라 필요한 옷이나 신발도 한두 개씩 늘어났고 책도 좀 샀고 괜히 필요도 없는데 충동적으로 작은 카펫도 하나 샀다.


금요일 저녁 일을 마치고 마트에 들러 장을 보며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죽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 돼버린 건가' 우리 엄마 언니도 모르는 사실이겠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버릇처럼 "아 죽자"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말대로 죽고 싶어서 그런 건 전혀 아니었다.


이 버릇은 16살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생겼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슬펐지만 평생 고생하신 아버지가 천국에서 드디어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삶의 모든 사명이 종료되는 때가 그때였으리라 이해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에게 죽음이란 내 삶의 주어진 사명이 끝나고 이 삶에서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버리고 자유로히 떠나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철없게도 "지금 죽는다면 이게 나의 때인 거겠지"라며 살아왔기에 죽는게 무서웠던 적이 없었다.

최근 깨달은 사실은 나는 몇 년 전부터 전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삶이 안정되고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삶에 대한 애착 혹은 욕심 같은 게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를 잃는 것이 두려워질수록 우리는 겁이 많아진다. 그리고 그것들에 우리는 더욱더 매달리게 된다. 돈, 인간관계 그리고 명예 같은 것들 앞에서 우리가 초라해지고 추악해지는 이유는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장을 보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 붉은 노을이 펼쳐진 하늘을 마주하고 터덜터덜 걸으며 내가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기억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나열해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읊조렸다. "이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나는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다. 언젠가 잃을 것들에, 사라질 것들에 지금 두려워하지 말자" 언제든 놓아줄 준비를 하자.


나는 지금 현재 가진것이 영원할거라 생각하고 처절히 그것들을 붙잡고 살아가고 싶지 않다. 언제든 그것들에서 떠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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