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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브 Nov 10. 2022

외국인으로서 산다는 것

외국에서 애매하게 오래 산 사람들

학업을 마치고 중간에 한국에 다녀왔지만 프랑스 캥페르에 산 시간을 다 합치면 약 6년 정도 돼가는 것 같다. 외국에 6년 있었다 하면 오래 있었다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적다고 할 수도 없는 시간이다. 이제 이곳에 살아가는 데 있어 언어가 크게 걸림돌이 되진 않는다. 원어민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한국에서 일생생활하는 것만큼 이곳에서 사는데 언어로 지장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제는 문화적으로도 크게 충격받을 일이 별로 없을 정도로 이곳에서의 삶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때때로 그런 믿음을 부숴버리는 순간과 여전히 마주한다. 

유학을 끝마치고 한국에서 2년 동안 회사생활을 했지만 프랑스 문화에 언어에 다시 적응하는 데는 그렇게 큰 노력이 필요하진 않았다. 만나는 친구들도 직장 동료를 빼면 대부분 프랑스에서 태어난 사람들이고 이제는 한국 음식이 그립다고 느끼지도 않을 정도로 식습관 역시 자연스럽게 적응하거나 변했다. (물론 한국 음식 먹을 기회가 있으면 절대로 마다하지 않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살며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 느끼는 순간이 있다. 최근 한국에서 20년 이상 사신 분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인생의 반을 이곳에서 보내셨고 하루에 대부분을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지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으로서 살아가는 데에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을 여전히 만난다고 하셨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데 일상에 불편은 없더라도 어렸을 때부터 이곳에서 살며 언어를 배우지 않는 이상 이 나라 사람들과 항상 어느 정도의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언어 실력이 문제라기 보단 애초에 그 언어 속에서 자라고 성장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주제를 모두 알 수 없는데에서 온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나 역시 늦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20살에 처음 유학을 와 정말 원어민처럼 말해보자 하고 젊은이들이 보는 유튜브를 보고, 어려운 단어가 나오는 철학 주제 관련 라디오도 듣고, 다양한 프랑스 사람들을 만나며 최대한 자신을 프랑스 삶 속에 노출시켜 완벽한 원어민이 되리라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 삶 속에 나를 완벽히 일치시키기는 불가능했다.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캥페르에서 정착한 중국인 친구가 있다. 프랑스에 산지 10년이 넘고 2살 배기 아기도 있고 으리으리한 전원주택에 살고 있다. 쿨한 시어머니 시아버지에 다정한 남편까지 부족할 게 없어 보임에도 외국인으로서의 소외감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최근 식사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슬쩍했다. 이곳에서 가정이 있고 남편이 있긴 해도 감정적으로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게 있다고. 

그래서 그런지 외국에서 국적을 넘어, 다른 외국인들과 때때로 더 잘 통하는 이유는 그런 채워지지 않는 것들에 서로 공감하기 때문인 것 같다. 프랑스에 처음 와서 언어가 잘 안 되던 시기에 같은 학년으로 만났던 외국인 친구와도 그랬다.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았음에도 눈빛만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무언가가 있음을 느꼈다. 


적어도 중고등학교 때 이곳에 유학을 온 친구들에게는 이런 괴리감이 적으리라 감히 짐작해보지만 보통 고등학교, 또는 대학을 중간에 그만두고 외국으로 유학을 오는 사람들 중 외국에 오래 남아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이곳에 적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생각하게 되고 매번 그런 사람들이 독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은 덜 예민한 사람이 돼야 됐고 즉 덜 불편한 사람이 돼야 됐고 때를 따라 변해야 했고 억지로도 받아들여야 했고 그것을 이해해야 했으면 그럼에도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심지를 가지고 있어야 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최근 그런 한계를 느낄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꽤나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던 친구 무리에서도 여전히 종종 소외감을 느끼는 이유는 언어적인 한계라기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그들이 공유해온 같은 민족이 가지고 있는 공통 대화 주제에서 온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보진 않았어도 대충 제목만 들으면 아는 영화 이야기를 나는 전혀 듣지 못한 마냥 벙진 얼굴을 할 때라던가 하물며 한때 유명했던 유명인을 대고 하는 농담에 껄껄 모두가 웃고 있을 때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던가. 모르면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안 물어봤을 것 같은가? 모두 껄껄 웃어대는 상황에서 몰래 슬쩍 물어보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런 대화로 가득한 자리에서는 매번 대화를 끊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 눈치껏 이해한 척 웃어넘기는 것이다.


최근 만나고 있는 친구의 부모님과 친구들을 만날 때도 이런 소외감을 느꼈다. 다행 힌지 불행인지 이들은 내가 외국사람이란 것을 잊어버린 것 마냥 나를 스스럼없이 대한다. 그게 솔직하게 말하면 편하긴 하지만 때때론 내가 다른 문화에서 자란 완벽한 외국사람이란 것을 인식하고 조금 배려해주었으면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외국에 애매하게 오래 산 사람들에게 오는 공통적인 딜레마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는 한국에 돌아가도 거리감을 느끼고 이곳의 사람들과도 본질적인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다. 최근 그럭저럭 아는 프랑스 친구들과의 저녁식사를 했다. 지들아는 얘기로 가득한 순간에 난처하고 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냥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풍부히 받아들이면 어떨까. 

사실 이런 소외감은 무의식적으로 이 무리에 내가 절대로 완벽히 일치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순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는 나라는 사람에 정체성 안에는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이 함께 존재하는구나. 그냥 나는 어딜 가서 든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 아닐까. 어차피 내 가족과도, 내 오래된 친구들과도 완벽히 매칭 되는 건 불가능한데 왜 나는 기를 쓰고 이곳에 나를 맞추려고 애를 썼던 걸까.


종종 외국인으로서의 삶에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내가 이 정체성을 가지고 이곳에 살아가는 이유는 아직 견딜만하기 때문이다. 사실 견딘다기보다는 즐긴다고 해야 될 것 같다. 외국에 살다 보면 계속해서 고유한 나 자신과 외국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과 부딪히게 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매일 저녁에 했던 기도가 여전히 떠오른다. "제가 좀 덜 소심했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먼저 다가가고 이 나라 사람들과 더 자유롭게 소통하고 싶어요. 그럴 수 있을 만큼 프랑스어를 잘하고 싶어요."  지금 그때를 돌아보며 현재의 나를 생각해보면 나라는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외국인으로서의 나는 그렇게 변한 것 같다. 언어 하나를 배우는 건 정체성 하나를 만드는 것이랑 같다고 누가 그랬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두 정체성, 아니 여러 개의 정체성이 매일 서로 부딪히고 섞이며 현재에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나 자신을 만든 것이다. (자기 자랑일까)  

오늘 저녁 브르타뉴는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다. 강한 바람에 나무들이 머리를 미친 듯 흔들어 대면서도 나무줄기는 굳건히 서있다. 바람이 심하게 불수록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곳에 서 있기 위해 더 단단한 껍질을 만들고 그 자리에 자신을 지키고 서있는 것이다. 내일 아침이면 이 바람은 잠잠해질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날이 되면 또 거센 바람이 불어 닥치겠지만 나도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나무들처럼 어느 곳에서든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단단하게 서서 그런 바람을 내 운명이라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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