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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브 Apr 04. 2023

프랑스에서 내 연애의 역사를 되짚어 보며

사랑은 인터뷰

퇴근 후 저녁을 먹은 뒤 뭔가 더 먹고 싶은 욕구를 막기 위해 차를 한잔 끓여 집 마당에 나왔다. 잠시 멍하니 하늘을 보다 "그래 오늘은 사랑에 대해 쓰자"중얼 거렸다. 최근 철학가 Deuleuze의 Dialogue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으로부터 내 적은 연애 경험을 되돌아보는 글을 써야겠다고 다이어리에 적어 놨었다. 

28살이 된 지금에서야 나는 연애라는 것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나에게 연인, 사랑이라는 개념은 미지의 세계였다. "어떻게들 연인이 되는 거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바로 프랑스 유학을 왔다는 건 내 지난 글을 읽은 독자라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누군가를 사귀어 본 적 없이 프랑스에 유학을 왔다. 그럼 프랑스에 오고 남자친구가 생겼느냐 물으신다면 당연히 "No"다. 


정확히 말하자면 25살 때까지, 그러니까 내 5년간의 유학이 끝나기 거의 직전까지 이성과 사귐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니 25살까지 온갖 망상을 다했다. 도대체 누군가의 연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주변 친구들은 잘만 사귀던데, 조금 부끄럽지만 외로운 유학시절, 연인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었다. 

한국에 돌아가기 6개월 전 문득, "아 5년을 이곳에 있으면서 남자친구하나 사귀지 못했다니, 정말로 아쉬운 일이다." 하고 용기를 내어 데이트 어플을 깔았다. 그렇게 처음 어플에서 만난 사람과 사귀게 되었지만 바람을 핀 사실을 알고 3개월 만에 헤어졌다. 그때는 첫 연애 실패에 대한 충격이 커, 화나는 감정과 슬픈 감정을 해소하고자 캥페르 도시 언덕을 달리고 달렸다.

그 후 한국에 돌아가기 두 달 남았을쯤 다른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를 실제로 본 건 약 두 달 정도뿐이다. 내가 그 이후 한국에 돌아갔음에도 서로 연락을 이어갔으니 나는 우리가 사귀고 있다고 생각했다. 코로나로 프랑스에 가는 길이 약 이 년간 막히면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란 비련의 여주인공 콘셉트에 빠져 이것도 사랑이라 생각했다. 



당시에는 내가 프랑스에 있었다면 우리는 열렬히 사랑했으리라 생각했으나 당연히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사실 나는 그 사람을 잘 몰랐다. 그와 함께 보낸 시간도, 제대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시간도 별로 없었다. 나는 단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동시에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있었다. "우리는 하나가 될 운명이니 이 역경을 이겨내야지!" 아니 다르게 말하자면 가족 아닌 이성이 나를 좋아하는 게 그게 사랑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시간이 일 년 정도 흐르니 각자의 생활에 바빠져 서로 연락이 뜸해졌다. 그리고 그가 이미 다른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친구를 통해 알게 되고는 마음을 정리했다. 이후 한국에서 일하며 짬을 내 소개팅을 한 두 번 정도 받아보긴 했지만 감정을 발전시키진 못했다.


그리고 2022년 프랑스에 돌아왔다. 우선 이성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는 것은 알았다. 내 나이가 좋은 나이긴 한가보다. 올해 내 인생 통틀어 이성으로부터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면서도 그런 얘기를 했다. "아니 살면서 한 번은 인기가 좋은 시기가 있다던데, 나한테는 그게 지금인가 봐". 그러나 본인 원래의 자연이 '경계의 철벽'이기 때문에 다 애매하게 잘라냈다.


그러다 착한 남자 한 명을 만났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착한 사람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솔직히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 이 정도 사람이라면 괜찮겠다. 착하고, 일 성실히 하고, 가족에게 다정하고, 사려 깊고.

다만, 이 역시 내 착각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건 참 쉽다. 하지만 이어가는 건 참 어렵다. 우리는 겉보이에 누구보다 행복한 커플이었다. 그의 부모님과는 일주일에 한 번은 함께 식사를 하고(헤어진 지금도 여전히 그의 부모님과는 자주 뵙고 식사를 한다.) 그의 친구들도 만났다. 다만 나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와 어색했다. 겉으로는 즐거워 보였지만 가면 갈수록 나는 불행하다고 느꼈다. 애써 "그래, 이 정도면 괜찮지"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는데, 내가 착해서, 그가 착해서, 우리가 조건이 맞는다고 꼭 연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구나를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느낀 것은 당연히 그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같은 대화와 같은 단어, 같은 문장을 쓰며 당연히 돌아올 대본 같은 대화를 했다. 나는 그가 좋아하는 것을 속으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보려고 해 본 적이 없다. 이상하게도 애써 그 사실을 감추려 정해진 질문과 정답 같은 대화를 했다. 그게 틀렸느냐라고 말하면 또 굳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 세 번째 연애는 내가 끊어냈다. 이렇게 말하는 건 참 아이러니 하지만, 내 인생에 가장 이상적인 이별을 맞이하였다. 권태기 아니었나 할 수도 있지만, 권태기정도의 과정을 가질 수 있을 수준의 관계도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괜찮은 사람"으로서 "그래 이 정도면 괜찮지"라며 중얼거리며 사실 서로를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번 이별은 후유증이 별로 없었다. 받아들이고 이해한 이별이었다.


최근 읽은 Deuleuze의 책 Dialogue에서 결혼이란 말이 나온다. 결혼이라고 번역하기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겠다. 결혼이라기 보단 결혼식 세리머니, 즉 둘이 어떠한 관계에 연루되는 세리머니라 해야 더 맞을 것 같다. 이 책에서 결혼이란 인터뷰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인터뷰, 간단히 생각하면,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가 말하는 인터뷰는 질문과 대화, 검정과 흰색, 행동과 결과 같은 짝개념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인터뷰란, 연애란, 아니 연인이 된다는 것은, 둘이 하나가 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두 개체의 계속해서 뻗어져 나가는 평행선과 같은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개체는 계속해서 뻗어 나간다. 둘은 함께 변화하고 나아가지만 결코 섞이지 못하는 다른 개체이기도 하다. 둘은 서로를 바라볼 수는 있어도 하나의 선이 될  없도록 그렇게 태어났다. 


사실 연인 관계란건 계속해서 서로 대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대화가 앞으로 뻗어져 나가기를 그만두고 길을 틀어 버리면 서로는 영영 서로를 바라볼 수 없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 다시 말하면 질문=대답이라는 정확한 만남의 지점을 만들어 버리는 순간 이후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바라볼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버린다.(관계가 지그재그선이라면 가장 이상적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연애에서 항상 착각했던 것은 그런 것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듣기 원하는 질문과 대답이 무엇인지 항상 알 수 있었다. (애초에 나는 사람들 기분이나 상태를 금방 파악하고 비위를 잘 맞추는 편이기도 하다.) 이 질문은 변화하지 않는다. 이 대답도 변화하지 않는다. 항상 점으로 정확히 맞추기 식이였다.

대답을 하기 어려운 질문에 사람들은 보통 당황하거나 놀라기 마련이다. 사실 나는 어렵지 않은 마침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물음표로 남지 않는 뻔하고 편한 습관 같은 사람. 다만 사실은 그런 뻔한 대화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지루함을 느꼈다.


나는 여전히 사랑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음 연애가 언제 올지, 다신 안 올지 모르겠지만 최근 혼자인 시간이 참 소중하다고 느끼며 드는 생각은, 다음 연애는 앞으로 계속해서 뻗어나가는 이 삶과 평행선으로 옆에서 함께 뻗어나가는 사람이기를. 그 역시 내 길을, 내 뻗어나가는 선에 길을 틀어 침범하지 않고 서로의 길을 존중하며 계속해서 끝나지 않는 대립과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기를. 서로의 길을 존중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관계를 맺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끝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닿지 않기를. 계속 앞으로, 곁에서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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