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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브 Mar 27. 2023

프랑스에서 체류증 신청이 거절될 것 같다. (1)

이곳을 떠나게 된다면, 

당연히 나올 줄 알았던 체류증이 거절당할 것 같다. 2월 14일 나와는 상관없는 발렌타인데이 화요일 오후, 하루 업무를 거의 마무리하고 1시간이면 퇴근이구나 하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왠지 캥페르 경시청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두 달 반을 기다리던 체류증이 나왔으니 찾으러 오라는 전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내가 제출한 서류에 문제점이 있고 어쩌면 신분변경(개인사업자/프리랜서) 신청이 거절당할 수 있다는 전화였다. 내가 이곳에 돌아오며 받은 비자는 Recherche d'emploi/Creation d'entreprise. 즉 프랑스에서 석사까지 학업을 한 외국인에게 1년 동안 직장을 구하거나 사업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비자이다. 내 서류에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이 비자를 받고 돌아온 것에 있었다. 내가 현재 가장 많은 수입원을 얻고 있는 일은 내가 전공한 아트와는 관련되지 않은 일이고 내가 두 번째 영리 활동으로 하고 있는 일러스트일은 대단한 수입을 벌어드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고 초반은 어이가 없었다. 나는 프랑스에서 충분한 돈을 벌며 소비를 하고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는데, 이런 나를 추방한다니. 하루는 흥분상태로 아무것도 못하다 아침에 일어나 천천히 생각을 해보니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그래 내 비자의 성격은 그런 것이었구나. 내가 아무래도 전략을 잘못 짰던 것 같다. 나는 당연히 프랑스에서 충분한 수입원이 있다면 이곳에 남아있게 해 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추가적인 서류를 제출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가 어떤 서류를 준비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다행히 주변에서도 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겠다 말해주었다. 회사에서도 편지를 써주겠다고 했고 내가 소속된 아티스트 단체에서도 이와 관련하여 편지를 써주겠다고 했다. 나 역시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내가 프랑스에서 유학당시 배운 것과 어떤 연관점이 있는지 줄줄이 편지를 썼다. 혹시 몰라 변호사에게도 상담약속도 잡아놨다.

프랑스에서 외국인으로서 가장 어려운 행정 절차가 바로 신분변경이다. 학생에서 영리 활동을 하는 회사의 직원 또는 사업자가 될 때. 주변에서는 비싼 돈을 주고 변호사를 껴서 겨우 신분변경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조금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변호사를 쓰면 분명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용이 어마무시하다. 나는 돈을 다 털어서면서까지 프랑스에 남아있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되는 것을 편법을 써가며 남아 있고 싶지도 않다. 한편으로는 아마 내가 이곳에서 죄를 너무 많이 쌓아 한국에 돌아갈 때가 됐나 보다 하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도 들었다. 


유학 마지막해였던 2019년, 프랑스에 남아있을 방법이 없어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서 지냈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그때에 비하면 훨씬 차분하다. 언젠가 돌아가야 할 때가 온다면 돌아가는 게 맞지. 


2월 말 날씨 좋았던 주말, 친구들과 일박이일 짧은 겨울 바캉스를 다녀왔다. 함께 걷다 뜬금없이 시몽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길래, 왜 그래?라고 물어봤더니, "아니 네가 이곳에 있는 게 이제는 너무 당연해서."라고 말했다. 나도 그날 그렇게 생각했다. 1년만 있을 줄 알았던 이곳에 조금 더 오래 있을 수 있게 됐구나. 하고. 

전화를 받은 그다음 날 경시청에 보낼 장문에 편지를 쓰며 생각을 정리했다. 하지만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니 눌러왔던 서러움과 외로움이 몰려왔다. 그래서 따뜻한 차를 끓여 잠시 집마당에 나갔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보되, 안된다면 후회 없이 한국에 돌아가자." 다만 이번 일이 잘 안된다면 한국에 돌아가서 내가 가장 그리워할 것은 무엇일까. 


지금의 당연한 일상이다. 친구들과 시장에 가서 야채와 빵을 사고 함께 커피를 마시는 일상. 함께 모여 식사를 만드는 것, 주말에는 가까운 공원에 나가 별생각 없이 벤치에 앉아 오랫동안 풍경을 바라보는 것.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 천천히 저녁을 요리하고 빵을 슬슬 썰어내는 순간. 날씨 좋은 날  테라스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 떠는 것. 버스로 10분 걸리는 곳에 직장이 있는 것. 9시까지 출근해 17시에 퇴근하는 것.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 노부부를 보는 것. 노숙자에게 담배를 건네주며 대화하는 젊은이들을 보는 것. 봄이 되면 공원에서 굴을 파먹고,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면 피크닉을 가는 것. 

한국 보다는 좀 더 느린 삶의 리듬, 일상에 단순한 것을 소중히 대하는 삶. 내가 이곳에서 가장 사랑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살아있다 느끼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자극을 찾는 것 대신 부드럽게 반복되는 삶을 작은 마당 정원 가꾸듯 소중히 대하는 매일의 삶. 반복적인 삶 안에 더욱 풍부해지는 순한 맛. 내가 가장 그리울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 삶을 보여준, 나를 지금의 나로 변화시킨 내가 이곳에서 사랑한 모든 사람들.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지금과의 삶과는 분명 다르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잠시나마 내 인생에 이런 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인 걸까, 아니면 모르고 살았던 게 어쩌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종종 그런 얘기를 했다.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게 너 프랑스 보낸 거야."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두 번째 삶이 있다면, 외국에 나가 살지 않을 것이다. 평생 그리워할 곳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주말, 집에 있는데 마음이 조금 답답해 공책하나 들고 자주 가는 숲으로 갔다. 매일 앉는 벤치에 앉아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가져온 공책에 글을 썼다. 





공책에 글을 쓰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참 고마운 사람들을 만났고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여름을 보냈다. 한국에 가서 다시 취업을 하고 일자리 구하는 건 체류증 결과가 나면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안된다면 이 추억을 한가득 마음에 담고 한국에 돌아가자. 그래, 후회 없이 돌아가자. 이 그리움을 마음속에 품고 후회 없이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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