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브 Mar 15. 2023

반복의 여행을 마무리하며

프랑스에 돌아온 지 일 년이 되었다

2022년 2월 9일에 프랑스 캥페르에 다시 돌아왔다. 이제 이곳에 돌아온 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프랑스에 돌아오며 받은 비자는 딱 일 년이었다. 이곳에 돌아오며 정해진 건 하나도 없었다.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하고 2년 동안 모은 돈을 들고 솔직하게 말하면 대책 없이 이곳에 왔다. 사실 이곳에 돌아왔다기보다 다시 여행을 한다는 생각으로 왔다. 이전에 왔던 곳을 다시 여행하는 반복의 여행이라 테마를 정했다. 

나는 프랑스에서 석사 논문을 쓸 당시 예술작품 속 반복의 차이점에 대한 주제에 대해 다뤘다. 그 당시 내가 건드린 반복이란 개념은 표면에 불과했는데, 이번 여행은 내 논문의 체험판? 실천형 같은 것이다. 나도 키에르케고르처럼 반복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곳에 온 지 일 년이 되어가며 이번 글을 통해 이 여행을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프랑스에 돌아오며 내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다. 이 여행이 과연 과거의 반복이 될까 혹은 다름의 반복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여행은 미련이었고 다름이었다. 나는 벗어날 수 없는 욕망과 미련 속에서 벗어나 현재의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했고 그로부터 변하고 싶었다. 내 작은 경험에서 느낀 반복이란 미련하게 조금씩 진행되는 과거와 미래의 평행선 운동이다.

사실 이곳에 돌아오면서 내가 5년 동안 학생 시절을 보냈던 캥페르에 또 한 번 정착할 생각은 없었다. 친한 친구들과 그리웠던 동네를 잠깐 보고는 다른 프랑스 도시에 정착할 계획이었다. 사실 이 여행에서 내가 가장 두려웠던 점은,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다시 회기 시키려 하는 내 욕망이었다. 


이년만에 돌아온 캥페르는 달라진 게 없었다. 친구들도 달라진 게 없었다. 언제 한국에 갔었나, 그렇게 가슴 아프게 그리워할 만한 가치가 있었나 할 정도로 평범했다. 결국은 이곳에 다시 정착했다. 나도 참 징그럽다. 


나는 프랑스에 돌아와 한국에 있는 동안 과거를 살고 있었다. 이곳의 사람들과 이곳의 장소를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스스로를 자학했다. 내가 한국에 있으면서 끊임없이 불행하다고 느낀 건, 일이 힘들다거나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나는 현재에 존재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과거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이 들 때까지 나는 끊임없이 과거를 떠올렸다. 함께 사는 가족에게도 사실 못할 짓이었다. 나는 현재 함께 있는 가족과 온전히 마음을 나누지 못했던 것 같다. 과거를 떨쳐버리고 싶으면서도 그 과거가 나 자신이라 생각해 과거를 잃는 순간 내가 이 세상에 사라질 것만 같았다. 

프랑스에 돌아오는 건 아름다운 포장지로 싸인 과거에 진짜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곳에 돌아오며 한편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오히려 이 여행에서 완전히 상처받고 스스로가 깨져버리는 것이 낫겠다. 그렇다면 그때는 더 이상 이곳을 그리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 


정말 신기한 일 년이었다. 반복의 여행이란 타이틀답게 정말 5년간의 유학생활을 속성으로 요약하는 것 같았다. 프랑스에서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잠깐 지나친 인연들, 한 번이라도 가봤던 레스토랑, 바, 바닷가, 숲 등을 모두 다시 경험할 수 있었다. 이 과거의 경험 중간중간 동시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장소에 가보고 색다른 순간들이 새롭게 채워졌다. 

이 중에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경험들도 새롭게 다시 겪어볼 수 있었다. 그 안에서 내가 가졌던 미련들을 조금씩 떨쳐버릴 수 있었다. 또 실패했던 경험들을 새로운 기회로 역전시킬 수 있었고 학생 때 두려움에 도전하지 못했던 것들도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 결국 반복의 여행은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현재의 나와 다시 만나는 경험이었다.

계획대로 이곳에서 좋은 꼴 못볼꼴을 다 봤다. 학생의 신분에서 미처 알 수 없었던 내가 모르던 프랑스의 새로운 모습을 보기도 했다.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존재하는 프랑스는 때때로 한국보다 더 폐쇄적이고 더 많은 차별이 존재한다. 또 한국보다 더 극적이면서 수동적이다. 계층 간의 차별, 인종 간의 차별, 사회적 차별. 또 마냥 친절해 보이던 프랑스 사람들의 또 다른 면과 프랑스 사회의 여러 가지 구조적, 시스템적 문제점 등. 

나는 이제 프랑스를 떠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훌훌 털고 언제 이곳에 살았냐는 듯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모든 것들을 떠나서 나는 여전히 이곳이 좋다. 이제 이곳을 떠난다면 이곳에 남을 것은 후회가 아니라 그리움이다. 평생 간직할 그리움. 


 9월에 이곳에서 운 좋게도 일을 찾게 되었다. 2023년 2월 9일 비자가 만료됐다. 현재 비자에서 체류증으로 변경을 신청했고 새로 체류증이 발급될지 거절당할지 모르는 상태로 임시체류증을 가지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내가 2년간 기다기로 준비했던 이 여행이 끝나간다. 이제 과거의 미련으로부터 나 자신은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느낀다. 그래서 내 반복의 여행은 이곳에서 끝을 내려고 한다. 이제 그리움으로 남아 다시 되짚어야 할 것은 없다. 이제 새로운 도전을 가지고 다시 출발하자. 앞으로 내가 이곳에 남아있을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다. 외국인의 삶은 항상 불안정하다. 다만 나에게 앞으로 주어진 시간 동안 나는 이곳에서 계속해서 성장하고 변화하는 나의 삶을 계속해서 이야기해 나갈 것이다. 

때때로 잠시 뒤를 돌아봐도 좋다. 다시 뒤를 돌아보는 이유는 지나간 어떤 것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확인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게 익숙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어떤 지나간 얼굴일 수도 있고 과거의 달콤한 기억을 상기시키는 냄새일 수도 있고 인상적이었던 어떤 글이나 어떤 장소일 수도 있다. 분명 본능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볼 때에는 그게 자신에게 연관된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본능적인 태도를 억지로 억제하지 말자. 뒤를 돌아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아는 게 차라리 물음표를 두고 떠나는 것보다 낫다. 

예전글에서 이야기한 적 있다. 나는 고집쟁이로 살아가기로 했다. 나는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가 뒤돌아본 풍경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 풍경을 다시 바라봐 그 풍경이 나에게 준 의미를 깨달았으니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다시 반복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가졌던 의심과 스스로에게 줘야 했던 용기를 기억할 것이다. 

앞으로 이야기해 나갈 것은 새로움에 대한 것이기를, 감사에 대한 것이기를, 변화와 성장에 관한 것이기를 바라며.  


나는 이곳 캥페르 브레따뉴에 살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Instagram @yoon_yves / @magazine_picnic

Blog https://blog.naver.com/heonzi

Contact heonzi123@gmail.com   


매거진의 이전글 내 삶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