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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Aug 28. 2024

공기업 초과근무라는 권력

윗선은 월급 챙기고, 아랫사람은 마른걸레 짜고

그는 퇴직 3개월이 남은 역장이다.


퇴직금은 퇴직 전 3개월의 평균 임금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천만 원 정도 퇴직금을 더 받아가기 위해서 초과근무를 해야 한다.


인건비를 통제하는 공기업에서


본인이 초과근무를 하고 싶다고 막 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기 때문에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역장은, 역장을 관리하는 관리역장에게 굽신거린다.


관리역장은 말한다.


"여기 역장님 사람 참 좋으시죠~"


실무를 모르고 헛다리 짚은 건 많이 봤는데, 사람 보는 것도 헛다리를 짚다니.


뭐, 모두에게 나쁜 사람은 없지. 범죄자에게도 자기편은 있더라.


역장은 본인이 역에 양해를 구해야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


관리역장에게 열심히 아부 포션을 쓰고 남은 게 없는지


직원들을 은근슬쩍 괴롭힌다.


직원이 연차를 쓰면 본인이 그 직원 대신 근무를 하며 초과근무 수당을 받겠다고 달려드는 것이다.


권위적인 성격의 역장이지만, 초과근무 수당 앞에서는 역무원이 되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그가 역무원의 자리를 지키고 나면 사실 역무원 업무는 진행된 것이 별로 없다.




부역장에게 욕설을 뱉은 문제 직원이 있었다.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일인데 뭐"


문제 직원이 전출될 즈음에 본인은 퇴직이니 그가 언제 가든 역장은 상관이 없다고 한다.


이런 역이니 관리역장은 문제 직원의 뒤처리를 조금 미뤄도 괜찮다고 생각해 미룬다.


다른 역에서 역장과 말다툼을 한 또 다른 문제 직원이 있었다.


역장이 그 문제 직원이랑 근무 못한다고 하자 관리역장은 그 문제 직원을 아주 신속하게


퇴직 3개월 남은 역장의 역으로 보낸다.


그런 식으로 그 역장의 역에는 문제 직원들이 고이고,


성실하게 근무하는 소수의 직원들은 고통받는다.


힘없고 성실한 직원들이 마른걸레 쥐어짜지듯 짜지는 것이다.




일을 열심히 하던 직원이 다른 역으로 발령 나서 한 직원이 아쉽다는 카톡을 올리자


역장은 자기를 무능하다고 비꼬는 거라는 피해망상을 느끼며


카톡을 올린 직원을 괴롭힌다.


대놓고 괴롭히면 고발당할 수 있으니 은근한 방법으로 계속 구박을 준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라는 둥


전혀 맥락과 상관없는 구박의 말을 해서


그의 발언은 역 직원의 밈이 되었다.


'학교 수준이 회사보다 나은 것 같은데?' 직원은 생각한다.


그는 본인이 조롱받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좋은 게 좋은 건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문제 직원을 덥석 받는다.


그리고 부역장에게 말한다.


"남은 3개월 잘 부탁드립니다."


남은 3개월 (돈 좀 벌게) 잘 부탁드린다는 뜻이다.


개인이 사용하지 않은 연차는 연말에 돈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데,


네 연차를 많이 희생해 주고 나는 초과수당을 벌겠다는 뜻이다.


물론 상대방에게 받은 것이 있으면 갚는 법도 있지만,


그것까지 생각할 인격의 여유가 있는지는 미지수다.





규모가 큰, 조마다 몇십 명의 직원을 거느린 역에서도


초과근무라는 권력은 아래를 쥐어짠다.


높은 위치의 사람들이 실적을 챙기는 동안, 젊은 직원들은 올해도 회사가 성과급을 받지 못하는 등급이 되어 좌절한다.



젊은 직원들이 많은 역에서는 결혼이나 여행 등의 사유로 연차를 쓰는 직원들이 많은데,


이러한 사유라는 것도 특정 성수기에 몰려 한꺼번에 많은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다른 조에서 대체근무자를 구해 부족한 인원을 채우면 초과근무 수당이 나가기 때문에 역장과 팀장은 이를 통제한다.



말단 직원들에게는 그것이 나비효과가 된다.


출근을 하면서 카톡방에 그날의 업무분장을 확인한다.


병가에 연차에 공가에 쉬는 직원들이 많았다. (알고 보니 같은 조 애들이 한꺼번에 연차를 쓰고 그들끼리 몰래 해외여행을 갔다)


추가 인력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두 명이 앉아 하루종일 바쁘게 일하는 종합안내 직원 한 명의 업무분장이 바뀌어 있다.


오전은 종합안내, 1시간 점심, 점심 먹은 후 1시간은  유실물 담당 점심 교대, 오후 전반은 종합안내로 복귀했다가 오후 후반은 총괄(서무) 및 회의실 업무 땜빵을 해야 한다.


둘이었던 종합안내 직원이 한 명으로 줄어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남은 종합안내 직원은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팀장을 호출해 자리에 앉혀야 했다.


유실물 교대를 간 다른 직원은 가자마자 영문도 모르고 유실물 관련 민원을 받았다.


유실물을 찾지 못했다고 말해놓고 유실물 보관 공고를 올렸다고 사기꾼이라고 한다.


영문을 모를 수밖에 없는 직원은 화가 잔뜩 난 민원인에게 자세한 사정을 다시 설명해 달라고 했다가 다시 욕을 얻어먹으면서


수십 개의 유실물을 뒤져 결국 민원인의 물건을 찾아낸다.


오후 총괄 땜빵을 갔더니 갑자기 높으신 분이 오신다며 주차장을 열어달라는 업무 지시를 받는다.


주차장 키는 어디 있으며 차단기는 도대체 어떻게 여는 것인가? 휴가를 간 직원에게 급히 연락해 미안해하며 설명을 듣는다.


어찌어찌 일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려는 찰나 화장실을 들렸는데 화장실 안에서 직원을 급히 찾는 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린다.


용변을 급히 마무리하고 사무실에 가니 회의실을 이용하는 손님이 화가 난 채로 기다린다.


빔 프로젝터가 고장 나서 준비된 발표를 할 수가 없다고 얼른 고쳐달라고 한다.


빔 프로젝터를 고쳐본 적 없는 땜빵 직원은 땀을 뻘뻘 흘리며 휴가를 간 직원에게 급히 또 전화를 한다.


전화상으로는 빔프로젝터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휴가 간 직원도 미안해하며 다른 회의실 담당 직원에게 전화해 물어보라고 한다.


쉬는 날인 또 다른 직원에게 전화를 하고 질문을 하고 상황은 한참 후에 해결된다.




마른걸레처럼 쥐어짜진 직원은 오늘 자신이 조각난 대체품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두 명이서 하던 종합안내 업무를 홀로 수행한 직원도 영혼이 나가 있다.


화장실 갈 때, 점심 먹을 때 교대를 해 준 팀장님이 종합안내 업무를 할 줄 몰라서 승차권 반환을 잘못 처리했고, 이를 바로잡느라 진을 뺀 것이다.


민원을 받을 문제가 아니었던 사항도 팀장님의 지식 부족으로 민원을 받았다.


민원을 혼자 달래느라 지친 모양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길어지자, 직원 중 한 명은 팀장에게 하소연한다.


직원의 쓴소리에 상처받은 팀장은 역장에게 달려가서 이제 여기 팀장 못 하겠다고 한다.


말 잘 듣는 착한 팀장이 안쓰러운 역장은 그동안 고생했다며 팀장을 다른 부서로 보내준다.


그들은 말한다.


"요즘 직원들 참 상사 존중할 줄도 모르고 버릇없어"


그리고 힘없는 직원들의 근무 여건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좋은 상사를 만나 숨 쉬는 것은 잠깐 금세 다시 이기적인 상사들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힘없는 직원들의 운명이다.


권력의 맛에 공감능력을 잃은 그들은 요즘 젊은이들 용어를 배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글을 쓰고 있다.


[누칼협? 꼬우면 이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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