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의 시간, 미취인들이 모이기까지 1.
내가 63일간의 유럽여행을 계획한 건 인터넷에 올라온 한 대학생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여행 후기를 읽고 나서였다. '시베리아'라는 단어가 던져주는 막연한 신비로움에 사로잡혔다고 할까. 무더운 더위 속에서 한없이 춥고 시릴 것만 같은 시베리아는 나에게는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볼까?
이 짧은 충동은 내 여행의 도화선을 당겼다. 요즘같이 전 세계를 하루 안에 도는 세상에서 하루 종일 배를 타고 일주일 내내 기차를 타고 가는 이 여행, 정말 괜찮을까.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대학생에게 남는 것은 시간이고 없는 것은 돈 뿐이니 무슨 방법으로든 유럽에만 가면 된다. 그래 그냥 타고 가보자. 비행기보다 더 싸니까!
그렇다면 시베리아를 넘어 어디를 가야 할까? 이게 아주 또 중요한 일이었다. 여행의 테마를 정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내 머릿속에 있던 키워드는 딱 세 가지였다. 겨울, 시베리아 그리고 오로라. 세 가지 테마를 잡고서 지도에 동선을 그렸다. 동해에서 블라디보스토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그리고 종착지는 아이슬란드.
한 겨울에 시베리아를 건너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보자.
다만 느리고 천천히 가자.
고생은 하되 죽을 만큼은 하지 말자.
그리고 남은 건 뭘까? 그렇다. 동행 구하기다. 부모님은 도저히 딸내미 혼자 그 험한 러시아 땅에 보낼 수가 없으니 동행을 구해오라고 주문했다. 나는 적당히 말을 잘 듣는 사람이기에 조건을 붙였다. 최대한 동행을 구해보겠지만 아무도 동참하지 않으면 나 혼자라도 가겠다고.
대충의 여행 계획이 잡히자마자 먼저 대학 동기들을 영입하려고 시도했다. 방법이야 별거 없었다. 동기들을 모아놓고 미끼를 던진다. 졸업하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무어냐고 말이다. 그러면 여행이라 답하는 애들이 한 명씩은 나온다. 그러면 나는 그 동기를 붙잡고 집중적으로 내 여행 계획을 설명하는 거다. 최대한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마치 '횡단 열차에 타서 막심 고리끼의 책을 읽는 상상을 해봐'와 같은. 하지만 모든 이의 반응은 똑같았다.
"정말 멋진 계획이다. 진심으로 잘 다녀오길 바라. 후기 남겨줘."
그렇게 별 소득 없이 시간은 흘러 어느덧 겨울이 되었다. 11월의 겨울날 나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연말 모임을 가졌다. 정말이지 추운 날이었다. 나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친구들에게 여행 계획을 설파했다. 대학로에 있는 커피집이라는 카페에서 휴지에 그림을 그려가며 정말 열심히 설득했다. 덧붙인 건 내가 러시아어를 배울 것이며 총대는 내가 맬 테니 따라만 와라였다. 한바탕 설명이 끝나자 친구들의 반응이 이번엔 조금 달랐다.
"정말 멋진 계획이다. 그래서 언제 갈 거냐?"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정해놓은 게 없었다. 그렇게 친구들에게 영업을 해놓고도 출발 날짜는 잡아놓지 않았다. 그래서 난 "겨울에"라고만 답했다. 그 엉성한 답에도 2명의 친구가 나와 동행이 되어주겠다고 했다.
문구점 직원 손양, 계약직 회계팀 사원 하라쇼, 대학교 졸업반 나. 3명의 '미취인未就人'조합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미취인未就人
아닐 미未에 나아갈 취就 사람 인人. 아직 취직을 하지 않은 사람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