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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Jun 19. 2021

밀도 있는 모래의 삶에 대해

'일의 기쁨과 슬픔은 퇴사로 잊는다' 번외 편

 우리는 왜 상암동에서 만나 눈물을 흘릴까


1년 전, 20살에 만났던 친구를 상암동에서 다시 만났다. 일이 끝나고 상암동 길바닥에서 만난 그 친구가 왜 그리 간절하던지. 서로의 근황을 전하던 나는 조금 슬퍼지고 말았다. 우리는 그렇게 그 꿈의 '상암동'에서 눈물을 흘렸다.




월드컵 공원의 날카로운 추억


대학교 친구를 만났다. 나보다 먼저 상암동에 상경하여 일을 시작했던 프리랜서 PD였다. 비정규직 지상파 방송국 소속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정규직의 벽은 너무 높았다. 하지만 친구에게는 꿈이 있었고 누구보다 그 일을 사랑했다. 하지만 정규직의 문은 유독 그에게만은 열리지 않았다. 연차가 쌓였지만 그에게는 입봉의 기회가 오지 않았다. 프리랜서이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그와 함께 입사하여 정규직이 된 동기는 입봉 할 연차가 되어 프로그램 기획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는 그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동기와 함께 일하고 때론 동기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면서 말이다. 묵묵하게 버티고 일하던 그는 이제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나에게 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할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조금 더 버텨내자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꼭 나 자신을 지키자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는 눈물을 쓱쓱 닦고 김밥을 먹었다. 그날따라 월드컵 공원의 햇볕이 따가웠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는 날카롭게 내 기억 속에 박혔다. 




때로 바위보단 모래의 삶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집에서 귀한 사람인데 어째 집 밖을 나서면 길가에 놓인 돌멩이처럼 내팽개쳐진 기분이다. 아파도 묵묵히 참고, 발에 차여도 뭉치지 못하고 부서진다. 오늘도 내일도 부서지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일을 사랑하기에 묵묵히 돌처럼 버틴다. 그러나 부딪히는 돌은 풍화되어 결국 모래가 된다. 하지만 모두가 꼭 바위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유연하고 밀도 있는 모래의 삶은 나름의 가치가 있는 법이다. 흘러가되 사라지지 않고 빈자리를 채워가는 모래는 언젠가는 제 역할을 하기 마련이니까. 


나는 이 밀도 있는 모래의 삶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로 바위보다 강하고, 변화무쌍하며 어떤 틈이든 메꿔주는 매력이 있는 삶. 불확실한 일상 속에서 불안이라는 감정을 유려하게 흘려보낼 줄 아는 유연함이 우리의 삶을 좀 더 여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일보일경一步一景' 이라는 말이 있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는 뜻이다. 한 번에 모든 풍경이 눈에 들어오진 않지만, 시간을 갖고 찬찬히 둘러보면 새로운 광경을 찾을 수 있는 한옥의 매력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마크 테토의 인스타 게시글 인용)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을 단번에 결정지을 수 있는 건 없다. 모든 순간들은 갈림길에서 정해지는 이정표 같은 것일 뿐이다. 한 가지의 선택이 인생 전체의 결말을 정해주는 건 아니다. 지금의 모습은 우리의 긴 여정 속에 일부에 불과하다. 한걸음 떼는 걸음마다 우리의 미래에는 새로운 풍경이 펼쳐질 테니까. 


그렇기에 삶은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도 인생의 아름다운 풍경을 발견하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당신을 응원한다.

'나만의 풍경'을 만드는 우리의 삶은 충분히 가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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