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밈혜윤 Mar 14. 2024

헬린이는 시간을 먹고 자란다

   헬린이

   나는 헬린이다. 헬린이란 헬스와 어린이를 합쳐 만든 말이다. 헬스를 시작한 지는 2.5년쯤 됐지만 뭐가 뭔지도 모르고 PT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어리둥절 아무렇게나 했던 시간이 2년 정도 된다. 요즘에야 비로소 분할 개념을 이해했고 이제야 간신히 스스로 루틴을 짠다. 아는 운동이 많지는 않아서 그야말로 ‘간신히’ 짠다. 그래도 성장한 모습이 자랑스럽다.


   헬스를 시작한 이유는 다이어트였다. 코로나, 재택근무, 배달앱 삼박자가 환상의 콜라보를 이뤄 10kg이 거뜬히 쪘다. 대충 10kg가 쪘었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실은 13kg가 불어났다. 굶어서 빼고 싶지는 않았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살도 빼고 겸사겸사 강해져 보자는 생각에 PT를 시원하게 내질렀다. 식단은 의도하고 열심히 한 건 아녔다. PT를 끊고 나니 돈이 없어서 배달을 못 시켰다. 빵과 디저트, 메뉴는 다르지만 맛은 고만고만하게 자극적인 배달 음식을 끊었다. 냉동 닭가슴살 소시지와 오렌지, 바나나만 우직하게 먹었다. 두 달을 그렇게 먹으니 주 2회 운동에도 불구하고 살이 빠졌다.


   어느 날 샤워를 하고 거울을 보며 수건을 들었다. 원래 같으면 그렇게 화장실을 나왔겠지만 그날은 뭔가 이상했다. 다시 팔을 들어 봤다. 어깨와 가슴 사이에 뭔가가 뿅 솟았다. 솟은 걸 반대 손으로 눌러보니 말랑함과 단단함 사이 어딘가에 있는 근육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헬스인이 된 것은.


   그 뒤로 PT가 가기 싫을 때마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팔을 들었다. 점차 단단해지는 근육을 만져 보고 짐을 챙겨 헬스장으로 갔다. 20회를 채우고 새롭게, 또 새롭게 20회를 결제했다. 식단은 조금 느슨해졌지만 PT를 끊고 나면 긴축 재정에 들어가야만 했으므로 나의 식단은 대체로 클린했다. 이제 내 팔은 팔짱을 끼면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쭉 갈라진다. 등짝은 생각보다 훌륭하고 데드리프트는 70kg을 든다. 발바닥 접지의 감을 더디게 잡고 있다.


   준 헬창

   주변 사람들은 나를 헬창이라고 불러준다. 주 2회 PT 수업이 있을 때만 가던 헬스장을 이제 못해도 주 4회를 간다. 유튜브 피드에는 온갖 헬스인들이 나와서 운동을 가르쳐 준다. 완벽한 자세는 못해도 내가 스쿼트의 어느 지점에서 자세가 무너지는지 인지하고 있다. 운동을 마치면 그날그날 운동과 소감을 기록하는 팔로워 0명의 운동 인스타그램 계정을 갖고 있다. 슬랙스를 사모으던 과거와 달리 운동에 좋을 민소매 티셔츠와 조거 팬츠를 사모은다. 이놈의 사모으는 습관은 작별하면 좋을 텐데.


   몸은 생각보단 밋밋하고 또 생각보다 괜찮다. 팔꿈치부터 어깨 사이 이두근, 삼두근은 보강해야겠지만 등짝이 생각보다 잘 컸다. 허벅지는 앞뒤 균형을 맞춰 자라는 중이다. 체지방률을 20%~22% 사이로 유지하고 있다. 이 또한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장기적인 클린식이 내 몸을 바꿔줬다. 체지방률이 제일 적게 나간 건 18%였는데, 그때는 도리어 각종 염증과 생리불순으로 고생을 해서 그 시절 입에 절대 대지 않던 떡볶이나 케이크 같은 것도 틈틈이 먹는다. 갈라지던 복근은 체지방률 20%대로 올라오자마자 자취를 감추어 버려서 조금 아쉽다.


   헬스를 통해 얻은 건 반드시 몸만은 아니다. 어떠한 태도를 배웠다. 바벨로우를 지난주엔 7kg으로 겨우 했는데 한 주가 지나니 20kg 봉으로 해냈다. 이게 되는 거구나, 하고 (좀 크게) 혼잣말을 했더니 피티 선생님이 어제는 실패해도 오늘은 이겨내고 성공하는 게 운동이라고 말해줬다. 그렇다. 오늘 패배해도 내일은 이길 수 있고, 내일 또 실패해도 다음 주에 이길 수 있고, 다음주가 안 되면 다음 달에, 아니면 내년에… 꼭 오늘 이길 필요는 없는 것.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헬스의 매력은 끊임없는 성취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지난주 또는 엊그제 실패한 것을 또다시 맞닥뜨리고 또 실패하는 것. 그러다 어느 날은 마침내 성공하는 것. 보란 듯이 완벽하고 매끄러운 성공이 아닌 것. 부들부들 떨면서 포기할까, 조금만 더 버텨볼까, 하다가 어설프게 들어 올리는 순간의 폭발적인 쾌감. 견딘 스스로에 대한 자랑스러움. 겉으로 드러나는 몸보다 더 달콤한 것들이 헬스장 바벨과 덤벨에 있다. 건강미가 묻어나는 좋은 몸은 덤이다.


   앞으로 내가 그날그날 한 루틴과 짤막한 일기를 엮어 헬스일기 시리즈를 만들어 볼까 싶은데 뭐 대단한 일기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확실한 건 내 헬스 일기는 대단할 게 없지만 항상 헬스장으로 들어가 땀 흘리는 나는 대단하고, 그런 나를 언젠가는 온 맘으로 담뿍 예뻐하지 않고 견딜 수 없으리란 사실이다. 내가 나를 존경하는 근사한 미래를 위해. 바벨 치얼스.


   

작가의 이전글 이별은 그리움을 우표처럼 붙이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