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논지 Dec 12. 2021

2021년을 보내며

힘들었지만 그만큼 더 강하고 단단해진 한해 

2021년을 시작하면서 썼던 글을 보면 '그저 버티자, 존버하자' 라는 내용이 있다. 그만큼 힘들었다. 어디까지 더 버텨야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만둘 수 없어서 하루하루 버티는 날들이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한해는 정말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2021년 상반기에는 정말 너무나 toxic한 파트너때문에 내 정신건강이 완전 무너져 버렸었다. 2020년 하반기부터 딱 1년 동안 회사에 있던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 한명이 마치 암세포처럼 조직 전체를 망가뜨리고 나갔다. 그나마 제일 만만해보였고 제일 눈엣가시였던 나를 가지고 괴롭히고 괴롭혀서 나는 정말 나중에는 매일매일 울면서 회사를 다녔다. 너무나도 서서히 나를 망가뜨렸기 때문에 나는 내가 비정상인 상태인지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3월 생일에 남편이 생일 카드에 힘들었지만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어찌보면 아주 평범한 메세지를 써서 주었는데 그걸 들고 울다가 아무리 그치려고 해도 울음이 안그쳐서 하루종일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줌 스크린을 끄고 미팅을 했다. 그래서 그때 알았다. 아 이건 뭐가 잘못됐구나.


그 즈음에 한참 대학 선배이신, 스타트업에서 같은 분야로 오래 계신 분을 알게 되어서 멘토링을 받았었다. 첫 줌 미팅에서 그분은 왠지 내 상황을 꿰뚫으신 것 같았다. 버티는 것 만이 답이 아니라고, 어쩌면 억지로 버티다 보면 이게 상처가 되어서 나중에 안좋은 작용을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액션을 하지 못했던 것은 회사가 IPO를 앞두고 있었고, 조금만 더 버티면.. 어쩌면 조금이라도 더 버텨내야 이렇게 온 기회를 잘 살려낼 수있을 것 같았다. 나만 참으면 될것 같아서. 하루만 더 버텨도 한 달만 더 버텨도 벌 수 있는 돈이 얼만데.. 그리고 그 파트너만 제외하면 보스던 팀이던 나머지 사람이던 모든게 다 너무 좋았다. 그래서 쉽게 떠날 결정을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썩어가고 있던 중에 내 매니저와 그 매니저가 심각성을 알아 채고 도와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앞이 안보이며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나에게 방아쇠를 당길 수 있게 준 것이다. 잘못해서 backfire 가 되어 나도 같이 무너질수 있는 상황인건지 아니면 이게 다 짜여진 상황에서 내가 방아쇠를 당겨주는 척만 해야하는지 알수가 없었고 워낙에 conflict를 싫어하는 나에게는 그 과정도 너무나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폭풍우같은 시간을 다 겪고 모든게 다 잘 해결되었다. 파트너는 떠나게 되었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일을 되찾았다. 


그리고 나서도 회복하는 데는 몇달이 더 걸렸던 것 같다. 중간에 조용히 한국에 가서 엄마 밥도 먹고 오고, 시간이 흘러흘러 4분기가 되어서야 미소도 되찾고 편집증처럼 일분일초를 일에 대해 (그 파트너에 대해) 생각하던 것을 벗어나 정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은 나에게 말을 못하셨지만 걱정이 크셨고, 내 남편.. 불쌍한 내 남편은 하루하루 나를 달래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정시키느라 너무나 힘들었을테지만 내색하지 않고 굳건한 내 편이 되주었다. 


폭풍과 소용돌이 와중에 회사는 IPO를 했고 생전 만져 보지 못할 큰돈도 만져보게 되었다. 무언가 같이 만든 것을 세상에 내놓고 보상을 받는 그 경험은 정말 가슴벅차는 것이었다. IPO날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정말정말 뿌듯하고 더군다나 나는 마음 고생을 많이 했기에 더욱 감개 무량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팀도 잘 꾸리고 좋은 파트너들도 잘 만나서 점차 일에서도 행복감도 늘고 배우는 것도 많고 보람찬 상황이 되어 아주 좋은 상황에서 2021년을 떠나보내고 있다. 이 모든게 1년 사이에 일어난 것이라고는 정말 믿을수가 없고. 하나하나 풀어보자면 끝도 없을 테지만 이제는 차곡차곡 담아서 과거에 놓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정신 건강과 몸 건강을 잠깐 잃었었지만, 결국 나는 잘 버텼고, 내 옆에는 소중한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나를 믿어주고 도와주었으며, 이 모든 보상으로 얻은 두둑해진 지갑과 함께 더 단단해진 내가 되었다. 2022년은 나 자신을 더 잘 챙기고 싶다. 잃었던 건강을 되찾고 내 주변 사람과 가족을 더 챙기고 좋은 가정도 꾸릴 수 있는, 잠시 숨돌리고 쉬어가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약간은 배째라 하는 마음으로 2주나 휴가를 냈다. 4일 후면 하와이에 가서 2주 동안 랩탑을 닫고 푹 쉬다 올 예정이다. 열심히 일하고 버텼으니까 나 자신에게 이정도는 베풀어도 된다. 가서 안 좋은 기억 훌훌 날려버리고 푹 충전해서 돌아와야지. 그래서 2022년 다시 힘내서 시작할 수 있도록.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이후 첫 대면 오프사이트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