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ssical Jul 06. 2017

마린 르펜의 얼굴로 돌아온
드레퓌스의 비극

드레퓌스 사건 다시 보기 -  민족주의의 광기는 늘 굶주려 있다.


"프랑스는 죄가 없습니다.

벨디브 사건*은 당시 프랑스에서 
권력을 잡고 있던 집권자들의 잘못이지, 프랑스의 잘못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태 아이들에게 프랑스의 어두운 역사를
비판할 수 있도록 가르쳐왔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다시 프랑스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벨디브 사건 : 2차 대전 중인 1942년 프랑스 경찰이 유대인 1만 3000여 명을 체포해 나치에 넘긴 사건

                                                                                        


그는 위대한 프랑스를 꿈꾸었다. 

프랑스가 저지른 잘못은 반성해야 하는 것이 아닌 외면해야 하는 것임을 호소하던 그는 바로 마린 르 펜. 


마린 르 펜은 프랑스 국민전선(FN)의 정치인으로, 몇 달 전 프랑스 대선에서 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에게 패했다. 그러나 그의 득표율은 34%로 상당한 수준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이에 우려를 표했다. 프랑스의 많은 시민들이 그의 극단적인 의견에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이자 국민전선을 창당한 장 마리 르 펜은 ‘가스실은 2차 대전의 소소한 부분 중 하나’ 라며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거나, ‘집시들에게서 냄새가 난다’라는 막말을 하는 등, 반유대주의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언행을 보였다. 


그의 딸인 마린 르 펜 역시 프랑스의 EU 탈퇴, 프랑스 보호주의, 반난민정책을 대통령 공약으로 내세우며 극우 프랑스인들의 극단적 민족주의를 자극했다. 그녀가 선택한 '위대한 프랑스'라는 말이 섬뜩한 이유는 단순히 자국에 대한 지나친 자긍심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곧 이민족에 대한 경계와 비난, 혐오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민족 없는 위대한 프랑스'를 부르짖는 마린 르 펜의 모습은 백여 년 전 프랑스를 강타한 한 사건을 생각나게 한다. 바로 드레퓌스 사건이다.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부터 1906년까지, 유대계 프랑스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 스파이로 몰려 수사를 받았던 사건이다.


일단, 대강의 사건 전개는 이렇다.



1. 1894년 프랑스 참모 본부가 한통의 문서를 입수. 문서에는 프랑스 육군 기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고, 수신인은 독일 대사관이었음.


2. 프랑스의 기밀이 유출된 것을 알아챈 군부는 이 편지의 발신자를 찾는데 매진. 마침내 범인으로 지목된 자가 유대계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


3. 문서 명세서의 필체가 드레퓌스 대위의 필체와 일치하는 것 '같다'는 추측성 주장, 빈약한 증거들밖에 없었음에도 속전속결로 유죄 판결. 


4. 자세한 조사과정 없이 스파이로 몰린 이후, 군적 박탈식을 거쳐 결국 악마섬으로 유배를 당함.


5. 그러나 몇 년 후, 에스테라지 소령이 새로운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되지만, 참모 본부는 이것이 군부와 프랑스의 위상이 떨어트릴 것이라고 우려. 결국 에스테라지 소령은 무죄로 풀려남. 



심지어, 당시 유대인에 대한 증오로 눈이 먼 군중들 사이에서는 ‘유대인들이 돈을 써서 감옥의 자리에 유대인 대신 기독교 인을 넣으려 한다’는 억지스러운 루머가 떠돌았다.


그러나 당대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가 1898년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하며, 드레퓌스 사건을 대하는 군부와 언론, 정치인의 부조리함을 낱낱이 고발한다.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군부가 객관적인 수사를 하지 않은 점, 재판 과정을 비밀에 부친 점, 조사 과정에서 문서 외 비공개 서류에 근거했다는 점, 군부의 명예 실추가 두려워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밝히지 않으려고 한 점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군부뿐 아니라, 당시 언론 역시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전달보다는 반유대주의 정서를 조장해 사건의 본질을 흐렸고, 정치인들은 재선에 방해가 될까 두려워 방관하거나 오히려 반유대주의 정서를 이용하기에 바빴다.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드레퓌스는 몇 번의 재판을 거쳐 마침내 1906년 간신히 풀려나게 된다. 


사실 드레퓌스 사건은 극단적 민족주의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증오로 눈이 먼 군부, 언론, 여론을 상대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증오는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프랑스는 죄가 없다.’는 말은 곧 프랑스라는 국가가 휘둘렀던 왜곡된 권력과, 그 거대한 힘 아래에서 사라져 간 모든 약자들의 존재를 지우겠다는 말이다. 


자국의 영광을 위해 타민족을 희생시키려는 자들. 그들의 이상은 비극을 통해 이루어진다. 

드레퓌스, 벨디브 사건의 희생자들, 그리고 오늘날 르 펜과 일부 프랑스인들이 도려내려 했던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민족주의의 광기는 늘 굶주려 있어 다음 타깃을 찾기 마련이다. 우리는 비판적인 자세로 또 다른 드레퓌스가 나오지 않는지 늘 주시해야 한다. 다음은 나의 차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단행본-

에밀 졸라,『나는 고발한다』, 서울: 책세상, 2015-Ruth Harris,『Dreyfus : politics, emotion, andthe scandal of the century』, New York: Metropolitan Books,2010


-국문 논문-

임종권,「드레퓌스 사건: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교회」,『서양 사론』102,2009, pp.97-124

임종권,「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저널리스트들의 논쟁 - 민족주의 · 반유대주의와 정의 · 인권-」,『숭실 사학』25,2010


-기사-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0410_0014821275&cid

작가의 이전글 인종 해방의 구호 속에도 그녀는 없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