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 러시아 혁명 100주년 기념 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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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장 기간의 추석 연휴로 온 국민이 행복한 요즈음. 벌써부터 연휴가 끝나가는 게 아쉽기만 하다. 그런데 이 엄청난 휴가만큼 2017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하나의 사실. 바로 올해가 1917년 세계를 뒤흔들었던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라는 것. 러시아 혁명을 기념하는 의미로 앞으로 두 차례 정도 러시아 혁명에 관한 글을 풀어보려고 한다.
오늘은 러시아 혁명 티저다. 레닌, 스탈린, 사회주의, 마르크스. 어디서 들어는 봤는데 잘 몰랐던 분들. 앞으로 몇 차례 이 글을 읽고 나면, 어디 가서 아는 척은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사회주의 하면 떠올리는 국가는 북한인 경우가 많지만, 사실 대표적인 사회주의 국가는 1917년 10월,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은 러시아다. 혁명의 기간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쉽게는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린 1917년 2월 혁명과, 같은 해 레닌을 중심으로 한 볼셰비키 세력이 권력 장악에 성공한 10월 혁명, 이 두 가지 사건을 생각하면 된다.
볼셰비키? 레닌? 아직은 몰라도 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오늘은 먼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한 간단한 기초작업이 필요하다.
근대화 이전의 유럽에서는 거의 70%가 넘는 인구가 농민이었다. 이들은 지주의 토지를 경작해서 먹고살았는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세대를 거쳐 한 땅을 경작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토지에 대한 애정은 매우 남다른 것이었다.
당시 이들의 생활은 이 사랑하는 토지와 함께 순환하는 삶이었다. 해가 뜨면 나가서 경작을 하고 배고프면 점심 먹고, 힘들면 쉬다가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느릿한 자연의 리듬에 따라 삶을 살았다.
물론, 농민들은 토지에 대한 경작권만 가진 사람들이고, 실질적인 토지 소유권은 지주에게 있었지만, 이들은 마치 자기 땅인 것처럼 애정을 가지고 행복해 할 수 있었다. 바로 이 당시의 특별한 개념이었던 ‘공동체적 소유권’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면 실소유권이 아닌 심리적인 소유권 같은 건데, 이에 따라 땅 주인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을 멋대로 처분할 수 없었다. 이유는 아주 순수하다. 지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땅을 팔아버리면 땅에 소속되어 있는 농민들이 먹고살 길이 없어지고, 결과적으로는 촌락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러시아에는 그들의 특별한 농촌 공동체인 ‘미르’라는 개념이 있었다.) 현대인이라면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 땅인데 내 마음이지.”라고 하겠지만, 어른들이 지나가며 항상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때는 지금과 달랐다.
개인적 소유권보다 공동체적인 소유 관념이 훨씬 더 강했고, 땅은 빌린 것이라 할지라도 조상 대대로 경작해 온 땅에 대한 농민들의 추억과 애착, 그에 따른 심리적 권리를 인정해주는 사회였다.
이런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던 농민들의 삶이 완전히 바뀌는 일이 생기는데, 바로 19세기를 거치며 유럽 전반적으로 진행된 산업화다. 점차 공장이 들어서고 자본주의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70%가 넘는 농민들 중 어떤 이들은 부득이하게 급격한 변화를 겪어야 했다. 농민이 아닌 노동자의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의 삶은 이들이 상상하지 못한 내외부적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일단 이들에게 가장 충격적인 변화는 생산수단(인간이 필요로 하는 재화를 생산하는 수단)에 대한 공동체적 소유권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지주와 농민이 존재하는 봉건제 사회에서 생산수단이 토지였다면, 이에 대응시킬 수 있는 자본주의 시대의 생산수단은 공장의 기계라고 이해하면 쉽다. 농촌 사회에서와 다르게, 기계를 돌리는 노동자에게는 이에 대한 권리가 ‘전혀’ 없다. 내가 회사에서 30년간 근무하면서 담당한 기계를 애지중지하며 돌렸다고 해도, 이걸 돌릴 사람은 내일 당장도 대체 가능하다. 이제는 기계, 즉 생산수단에 대한 공장 주인의 ‘사적 소유권’이 훨씬 더 중요한 시대가 왔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이‘사적 소유권’이라는 단어는, 앞서 말한 공동체적 소유권의 반대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자연의 리듬에 따라 여유롭게 삶을 사는 것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쉴 수 있는, 즉 수리체계(시간)와 인위적 규율에 따라 사는 사회. 노동에 대한 대가가 임금의 형태로 지불되고, 나의 노동력이 시장에서 상품처럼 팔리는 사회. 자본주의는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농민들에게는 너무 적응하기 힘든 체제였다.
이렇게 삶의 형태가 완전히 변화되면서 사람들이 힘들어하자,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기되었고, 이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보수주의: 공동체 관념을 되살리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자.
자유주의: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지금은 과도기일 뿐, 자본주의와 산업화를 더 가속화하자.
사회주의 : 산업화가 진행되었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단, 자본주의는 너무 문제가 많다. 중간 지점을 찾아볼 수 없을까?
1890년대 이후 러시아에서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앞서 말한 자유주의 세력(자본주의 옹호), 그리고 그를 비판하는 사회주의 세력(자본주의 비판)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문제의 원인이 되었던 자본주의란 1) 자유로운 시장의 보장과 2) 임금노동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시스템이다. 즉, 유통 영역에서는 상품 가격이 시장에서 ‘알아서’ 결정되고, 생산 영역에서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면서, 자본가에 의해 소유된 생산수단에 기대어 임금노동체제를 중심 수단으로 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나온 것이므로, 자본주의를 뒤집으면 된다. 1) 시장경제에 맡겨두면 안 되니, 시장에 개입해야 하며, 2)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는 것이 되겠다. 이때 정확히 짚어야 할 점은 사적 소유권의 제한이 생산수단에만 해당한다는 것이다. 즉, 사회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도 생산 수단만 제외하면,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마음대로 살 수 있다. 사회주의에서는 무조건 다 식량 배급받고, 신발도 국가가 나눠주는 것만 신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가을 신상품이 나오면 요즘 유튜버들이 많이 하는 신상 하울*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물론 공산품의 종류가 좀 부족하고 질이 떨어질 수는 있겠다.)
*신상 하울 : 하울이란 ‘끌어오다’라는 뜻의 단어로, 신상 하울은 ‘신상품을 다량 끌어왔다’, ‘사 왔다’라는 뜻을 가진 신조어다.
다시 돌아와서, 19세기 후반 러시아에서는 노동착취, 빈부격차와 같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발생했고 이를 비판하는 사회주의가 주목받게 되었다. 그런데 사회주의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그 여러 갈래의 사회주의 중 러시아에서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러시아의 사회주의는 ‘러시아 마르크스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주 들었던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주의의 한 종류라고 보면 된다.)
여기까지 이해했으면 일단 기초 작업은 끝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정확히 무엇이고, 혁명은 어떻게 된 건지 등의 이야기는 다음번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