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 건국절 논쟁의 시작
(건국절 주장은) 역사를 외면하는 처사일 뿐만 아니라 헌법에 위배되고, 실증적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고, 역사 왜곡이고, 역사의 단절을 초래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2016년 8월 12일 광복절을 앞두고 청와대 독립유공자 초청 만찬에서 광복군 출신의 원로 독립유공자인 김영관(92) 전 광복군 동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소신 있는 발언을 해, 당시 연일 화젯거리였습니다. 방송은 분주하게 김영관 애국지사의 장면을 촬영하고 기사를 퍼 날랐고, SNS에서는 김 애국지사의 발언 영상이 돌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죠.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한 즉답은 회피한 채 행사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제 71주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입니다.”라고 발언하며 논란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건국절 논쟁의 시작은 2006년 7월 31일 자 동아일보 칼럼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 기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이자 ‘식민지 근대화론’ 자로 알려진 이영훈 교수는 자신의 칼럼에서 “나에게 1945년의 광복과 1948년의 제헌, 둘 중에 어느 쪽이 중요한가라고 물으면 단연코 후자이다.”라고 운을 떼며 건국절 제정의 필요성을 주장합니다.
그는 “광복은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광복은 일제가 무리하게 제국의 판도를 확장하다가 미국과 충돌하여 미국에 의해 제국이 깨어지는 통에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광복을 맞았다고 하나 어떠한 모양새의 근대국가를 세울지, 그에 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라고 주장합니다. 이어 “일제에 의해 병탄 되기 이전에 이 땅에 마치 광명한 빛과도 같은 문명이 있었던 것처럼 그 말(광복)이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광복의 의미가 지나치게 미화되었다 지적합니다.
또한 이영훈 교수는 광복에 대한 의미가 과잉 평가되었던데 반해 건국의 의미는 평가절하되어 있음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미화된 광복보다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태어난 대한민국의 건국이 역사에서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죠. 그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의 8월 15일은 1945년 광복이 아닌 1948년 건국을 기념할 국경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한 이교수의 주장은 수많은 역사학계의 질타와 비난을 받게 됩니다. (*식민지 근대화론: 일제의 식민지 정책이 조선을 근대화했다는 주장으로 일본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려는 역사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이명박 정권 시절 8월 15일을 ‘건국 60주년’으로 명명하면서 학계 단위에서의 건국절 논쟁은 정치 담론으로 공론화됩니다. 당시 역사학계, 독립유공자 단체 등의 강한 반발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만 이후에도 건국절 제정을 두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하는 뉴라이트 계열에서는 ‘건국절’ 제정을 포기하지 않죠.
그리고 2016년 8월 15일, 2015년 경축사 때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은 ‘건국 68주년’으로 명명하고,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의 8월 15일 광복절을‘광복절 및 건국절’로 개정하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또한 개정 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교묘히 바꿔서 표시하기도 했죠. 이처럼 일부 수정된 이영훈 교수의 주장을 바탕으로 건국절 논쟁은 여야 정계뿐 아니라 시민단체, 역사학계 등 뜨거운 논란과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건국절을 주장하는 측에서 제시하는 주요한 논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민주공화정의 시작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는 것이죠. 즉, 한반도에서 48년 5월 10일 역사상 처음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8월 15일 비로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갖춘 민주 공화정으로 거듭났기에 대한민국의 건국은 1919년이 아닌 1948년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임시정부의 활동이 민주공화정을 향한 움직임이었다면, 광복 직후 미군정 시기에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헌법이 아닌, 임시정부 주도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존재했어야 한다는 것이죠.
더불어 1919년 임시정부는 정부로서 한계점을 지닌 단체였기에 건국을 1919년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8월 22일 열린 토론회에서 김학은 연세대 명예교수는 1919년 임시정부가 당시 외국 국적자들이 주도해 설립된 단체였고, 국가의 구성 요소 ‘국민, 영토, 정부, 주권’를 충족하지 못했기에 대표성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임시정부가 국제적 승인을 받지 못한 것이 이를 반증하며, 1919년을 건국으로 보는 주장에 오류가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유독 강조하는 부분은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보는 현 입장이 48년 이전에 존재했던 북한 정권도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며 이는 지금의 북한 정권도 인정한다는 뜻과 일맥상통하는 처사라 비난합니다.
그리고 1948년 정부 수립 경축사에서 “민국이 새로 탄생한 것을 경하한다.”는 이승만의 발언을 빌려 진정한 대한민국의 건국은 1948년 8월 15일이고, 이를 경축할 ‘건국절’을 제정해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파적 차원뿐만 아니라 역사학계에서도 일명 ‘건국절 제정파’의 이러한 주장은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이라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국절 제정파 주장에 손을 들어준 정부의 숨겨진 의도를 강하게 규탄하고 있죠.
2008년과 마찬가지로 2016년에도 역사학계는 건국절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다시 반복되는 해묵은 논쟁에 대해 강한 우려와 의문을 던지게 됩니다.
- 2부에서 계속됩니다.
논문
백기완, 김명인, 「광복절과 건국절 – 보수권력의 역사인식과 식민주의 극복의 과제」, 『황해문화』 68. 2010. pp.193-227.
지수걸, 「건국절 논쟁의 지형 바꾸기」, 『내일을 여는 역사』 64. 2016. pp.15-25.
편집부, 「‘건국절’ 철회를 촉구하는 역사학계의 성명서」, 『역사비평』 84. 2008. p.14.
하상복, 「이명박 정부와‘8ㆍ15’ 기념일의 해석 - 보수의 위기의식과 담론 정치」, 『현대정치연구』 10. 2012. pp.109-132.
기사
김민정, 〈[단독] 해방 후 첫 역사교과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명시〉, 《한국일보》, 2016.10.05.
김미향, 〈“전두환 정권도 1919년 임시정부 인정…독립공채 상환해줬다”〉, 《한겨레》, 2016.10.11.
김청환, 〈건국절 제정 ‘역사 전쟁’ 시작되나, 與 법안 발의 시동… 당론화 움직임〉, 《한국일보》, 2016.08.30.
심진용, 〈[전문]역사학계 원로 성명 “건국절 주장 본질은 ‘역사 세탁’”〉, 《경향신문》, 2016.08.22.
장은교, 〈이승만 “1919년 대한민국 건국“ 친필 사인 문서 공개됐다〉, 《경향신문》, 2016.10.02.
조태성, 〈역사학계 “건국절은 광복 의미 반토막 내는 것… 정치적 편가르기” 논란 재점화에 싸늘한 시선〉, 《한국일보》, 2016.08.17.
최창열, 〈오피니언: [아침을 열며] ‘건국절’과 프레임 정치〉, 《한국일보》, 2016.08.22.
황영식, 〈오피니언: [황영식의 세상만사] ‘건국절’ 논란의 한계〉, 《한국일보》, 2016.08.18.
8월 15일 광복 그리고 건국? - 에디터 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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