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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ssical Nov 25. 2016

건국절 논란 2부

- 2부: 역사학계의 반발

안녕하세요! 에디터 소.소 입니다. 지난주에는 건국절 논쟁의 시작과 건국절을 제정하고자 하는 입장의 이유와 그 근거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이번 주는 건국절 논쟁의 허와 실을 역사적 사료들과 역사학계의 주장에 따라 비판해보고자 합니다. 과연 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건국일까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_ 헌법 전문 발췌

사진1. 3.1 만세운동 삽화

역사학계의 입장에 따르면, 건국절 논쟁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우리나라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입니다. 헌법 전문에 따르면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은 헌법 재판소에서 판결 내린 것과 같이 대한민국이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의 공헌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룩된 것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즉, 헌법정신에 입각했을 때 건국절 논쟁은 법률적으로 위배됨은 물론이며, 독립운동의 가치를 폄하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사진2. 백범 김구

또한 건국의 의미를 강조한다는 것은 해방 이후 48년 8월 15일까지 건국에 참여했었던 친일파에게 건국의 공로를 부여하고 친일 행각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는 것과 같다고 주장합니다. 더하여, 건국절 제정파 논리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해 참여하지 않았던 김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반국가 사범으로 폄하하는 것이라 주장하죠.


숙명여대 이만열 명예교수는 건국절 제정파 주장에 일목요연하게 비판하였는데요. 발언에 따르면 임시정부가 가진 해방 이후 국가의 형태가 조선시대 왕조를 계승한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이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으로 시작한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으로 국호를 바꾼 후 임시헌장을 발표하는데, 제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차례의 개헌에도 제1조는 살아남아 1948년 제헌헌법에서도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계승한 것입니다.  


사진3. 대한민국임시정부

또한 임시정부가 갖는 한계로 1919년 임시정부를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은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결과라고 반박합니다.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는 국제적 승인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임시정부가 실제 한국인의 의사를 대변했는가라고 강조합니다. 1919년 임시정부는 사실상 모든 독립운동단체를 아우르는 단체였고,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임정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승하겠다고 명시했다는 점은 임정의 역사적 평가를 높게 샀었음을 반증함을 근거로 들었죠.


이만열 교수도 이에 대해 이승만 정부가 임정을 이어 가겠다 명시한 것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내부의 체계적인 좌우합작 조직을 통해 외교활동과 독립운동을 했던 임시정부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는 증거라고 꼬집고 있습니다.


또한 국제적 승인에 있어서 어떤 국가든 정부 수립과 독립 승인 사이에 시차가 존재하는데, 가령 미국 독립 시점을 승인받은 해가 아닌 독립문을 선언한 해로 본 사례로 보아 3.1 독립선언을 건국으로 보는 지금의 헌법이 국제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다고 보았죠.



한편, 수많은 역사학자들의 비판과 더불어

여러 역사 사료들은 건국절 제정파 논리들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사진4. 1919년 6월 이승만作 일본 국왕에게 보내는 공식문서


가장 널리 알려진 문건인 1919년 6월 이승만이 일본 국왕에게 보낸 공식 문서에서는 1919년 한국은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주권국가이고, 3.1 독립선언서 낭독 및 선포 사실과 입법부를 구성했음을 명시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승만)을 비롯한 행정부 관리들을 선출했음을 전달하는 문건의 내용이었죠. 이는 곧 이승만의 단독정부가 비로소 대한민국의 시작이라고 보는 건국절 주장 측과는 전면 대치되는 자료인 것입니다. 결국 이승만조차도 1919년 임시정부 설립을 대한민국의 시작이라 말한 것이기 때문이죠.



사진5. 1948년 해방 후 첫 교과서


해방 후 첫 교과서에서도 역시 1948년은 건국이 아닌 정부 수립으로 명시하고 있었습니다. 1948년 이후 첫 제작된 ‘중등학교 사회생활과 우리나라의 생활’에서는 “남쪽에서는 국제 연합의 원조로 말미 아마 4281년(1948) 5월 10일에 선거를 거행하고 대한민국 정부의 설립을 보게 되어...”라고 적혀있었죠.


이 보다 더 시간이 흐른 전두환 정권 당시 1919년 임시정부를 인정하는 자료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은 1980년 전두환 정권 시기 1919년 임시정부의 독립공채를 상환해준 문건이었습니다. 이는 전두환 정권이 임시정부를 계승했으며, 이에 대한 책임을 이어받아 상환으로 의무를 다하겠다는 뜻이었죠. 즉, 전두환 정권 때에도 다시 한번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렇듯 역사적 사료들의 발견과 임시정부에 대한 그간의 수많은 연구들은 임시정부의 법통성과 역사적 가치를 폄하한 건국절 주장이 어불성설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주었습니다.


그간의 사료들을 살펴보면 건국절 논쟁 이전 학계에서조차 정부 수립과 건국을 혼용해서 써왔을 정도로 단어적 차원에서 혹은 역사학적 차원에서 큰 논제는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대한민국 건국을 특정 시점과 대상에게로 초점을 맞추지 않은 것이죠.


또한 1949년 국경일 제정 당시 1945년과 48년 8월 15일을 동시에 경축한다는 의미로 ‘광복절’이라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이 기록을 말미암아 광복절에는 정부 수립과 광복을 동시에 축하는 의미가 담겼던 것이고, 지금까지 큰 문제가 없던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국절 논쟁은 2008년에도 그리고 지금에서도 뜨거운 이슈죠.

왜일까요?




정치적 영역에서의 역사 논쟁은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세력을 다지는데 좋은 도구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소위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인 개념으로 말이죠. 그리고 건국절 논쟁 속에서 *이승만 국부론자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건국절을 제정하든, 그렇지 않든 임시정부와 48년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역사 속에서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죠. (*이승만 국부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을 높게 평가하는 입장으로 그를 국가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주장)


사진7. 이승만 사진



그렇다면 여러분은 ‘건국절 논쟁’이 순수한 학문적 영역에서의 논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국경일 제정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라 생각하시나요. 어쩌면 건국절 논쟁은 양쪽의 톱니바퀴가 맞물린 지점은 아니었을까요?



끝.





- '8월 15일 광복 그리고 건국?'  Editor. 소.소.

다음 주에는 중국과 대만, 양안관계에 대한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논문
  
백기완, 김명인, 「광복절과 건국절 – 보수권력의 역사인식과 식민주의 극복의 과제」, 『황해문화』 68. 2010. pp.193-227.
  
지수걸, 「건국절 논쟁의 지형 바꾸기」, 『내일을 여는 역사』 64. 2016. pp.15-25.
  
편집부, 「‘건국절’ 철회를 촉구하는 역사학계의 성명서」, 『역사비평』 84. 2008. p.14.
  
하상복, 「이명박 정부와‘8ㆍ15’기념일의 해석 - 보수의 위기의식과 담론정치」, 『현대정치연구』 10. 2012. pp.109-132.
  
기사

김민정, 〈[단독] 해방 후 첫 역사교과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명시〉, 《한국일보》, 2016.10.05.
  
김미향, 〈“전두환 정권도 1919년 임시정부 인정…독립공채 상환해줬다”〉, 《한겨례》, 2016.10.11.
  
김청환, 〈건국절 제정 ‘역사 전쟁’ 시작되나, 與 법안 발의 시동… 당론화 움직임〉, 《한국일보》, 2016.08.30.
  
심진용, 〈[전문]역사학계 원로 성명 “건국절 주장 본질은 ‘역사세탁’”〉, 《경향신문》, 2016.08.22.
  
장은교, 〈이승만 “1919년 대한민국 건국“ 친필 사인 문서 공개됐다〉, 《경향신문》, 2016.10.02.
  
조태성, 〈역사학계 “건국절은 광복 의미 반토막 내는 것… 정치적 편가르기” 논란 재점화에 싸늘한 시선〉,《한국일보》, 2016.08.17.
  
최창열, 〈오피니언: [아침을 열며] ‘건국절’과 프레임 정치〉, 《한국일보》, 2016.08.22.
  
황영식, 〈오피니언: [황영식의 세상만사] ‘건국절’ 논란의 한계〉, 《한국일보》, 2016.08.18.



8월 15일 광복 그리고 건국? - 에디터 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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