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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Feb 21. 2021

가을 하늘 높을 때, 얼큰 갈치조림과 노릇한 갈치구이

목포 선미식당

      

   저만치 보이는 크고 작은 섬들은 오래된 보석이 되었다. 목포의 바다는 근대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채 밀려가고 밀려온다. 목포는 1897년 개항 이후 근대사의 중심에 있던 항구도시였다. 부산 다음가는 항구도시로 성장한 적도 있었다. 

  덕분에 계절별로 다양한 수산물을 맛볼 수 있지만 가을을 대표하는 어종은 당연히 갈치이다. 목포에서 잡힌 갈치는 제주도의 은갈치와 달리 먹갈치라고 부른다. 안강망이나 유자망으로 갈치를 대량으로 잡기 때문에 갈치가 서로 부딪혀 은비늘이 벗겨진다. 배에서 갈치를 잡자마자 냉동실로 옮긴다 하더라도 신선도는 은갈치만 못하다. 이것이 낚시로 잡는 제주 은갈치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이유이다.  


          


  하늘이 높아지면 갈치의 맛은 좋아진다. 주거인구 중 노인들이 대부분이라는 한적한 골목에 갈치찜과 구이로 유명한 식당이 있다. 주택가에 자리 잡은 이곳은 장소가 아닌 맛으로 승부를 보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식당 앞에는 울긋불긋한 꽃들이 화분에 가득이다. 문 앞의 아기자기함에 이끌려 슬며시 부엌으로 들어가 본다. 한쪽에서는 두툼한 갈치가 탁탁 소금 튀는 소리를 내며 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다. 머리에 수건을 질끈 두른 윤영칠(남, 53세)씨가 선미식당의 주인장이다. 주문을 받는 즉시 요리를 시작하므로 시간은 좀 걸린다. 게다가 식사시간에는 손님들이 많아 자리 잡기도 힘들다.     

  

  한참을 기다려 갈치조림과 구이를 맛볼 수 있었다. 갈치조림의 국물은 은근하게 졸여서인지 끈끈하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다. 이렇게 매콤한 맛이 부드러울 수 있다니! 통통한 살을 국물과 함께 숟가락으로 떠먹다가 입안이 얼얼할 때 즈음에는 반찬으로 나온 콩나물과 비벼먹으면 속을 달랠 수 있다. 힐끗 건너편 손님들의 상을 보니 그들도 나처럼 접시를 싹 비웠다. 



  갈치구이는 조림용 갈치보다 더 굵다. 몸통이 크고 굵은 것은 간이 덜 배이기 때문에 구이에 적합하다고 한다. 드르륵 몸통 옆의 가시를 뽑아내고 살살 살을 바른다. 어찌나 갈치가 찰지고 큰지 부서지지도 않는다. 간혹 소금 알이 씹혀도 두꺼운 살이 달고 담백하여 밥 없이도 다 먹겠다는 생각이 든다.


갈치구이


  “새벽 6시면 일어나서 좋은 갈치를 사러 어판장에 나갑니다. 조림을 할 때 쌀뜨물에 갈치를 넣어요. 김치는 숙성된 김장 김치를 넣죠. 김치는 씻어낸 짠물을 3일 동안 하루 서너 번 갈아줘요. 김치의 짠맛을 빼려고요. 묵은지를 그대로 넣으면 김치 짠맛이 강해서 안돼요. 섬섬하게 물고추를 갈아서 양념을 하죠. 물고추, 마늘, 양파를 갈아서 숙성을 일주일 하죠. 고추장은 너무 달고 고춧가루는 텁텁해서 물고추를 갈면 더 맛있죠. 쌀뜨물은 비린 냄새를 잡아주고요. 월동무가 제일 맛있고 봄부터 여름까지 나온 무는 뻐식해요.”      


  1974년부터 생선을 다뤄온 어머니의 뒤를 이은 그는 부지런했다. 처음 갈치를 다룰 때는 냉장고에 보관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3일이 지나자 갈치의 기름기가 빠지고 맛이 변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갈치 손질을 당일에 하여 영하 1-2도에 보관하면 맛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번에 280여 마리를 손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느러미를 긁어 떼어내고 머리를 잘라낸다. 머리는 젓갈용으로 소금에 버무려야 하고 내장은 갈치속젓을 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오전 시간이 다 지나고 점심식사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갈치가 사계절 나는 것은 아니다. 8월이 되면 낚시꾼들이 갈치를 잡으러 목포에 몰리는 것처럼 8월부터 12월이 갈치의 철이다. 그리고 한 달에 두 번 5일씩, 열흘은 갈치가 나오지 않는다. 조금(조수(潮水)가 가장 낮은 때)에는 갈치잡이 배가 조업을 못하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식당 앞에 ‘갈치가 없습니다.’하고 써 놓는다. 그리고 병어(4-6월)나 서대(3-10월)를 권한다. 혹시 이곳에 들리는 나그네가 있다면 갈치가 없다고 서운해하지 말고 주인장의 권유를 믿었으면 한다. 그의 손맛과 부지런함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으니 말이다.        


[도움 주신 분]          


선미식당 윤영칠(남, 53세)씨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갈치요리에 전념하고 있다.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도와주셨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ncms.nculture.org/food/story/1919?_ga=2.74527186.1559705289.1613814797-477163452.1613098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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