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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May 07. 2023

민주주의와 1분

그렇게 했다고 해서 너는 잘 될 줄 아니?

DK4.0 한 알을 입안에 털어놓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집에서 그곳까지는 2시간이 되지 않는 거리이다. 교통상황을 고려해도 3시간 안에는 도착하겠지. 나의 미련한 판단의 실수는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천안을 지나야 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도로의 정체는 더욱 심해졌다. 면접에 늦지 않기 위해 10시부터 출발했다. 자료는 도착해서 볼 심산이었으나 이런 상황이라면 제때 도착한다는 것은 장담할 수도 없다.


더듬더듬 가방 속의 서류를 찾아 그곳의 인사담당자 연락처를 찾는다. 운전하며 딴청을 한다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흘끔흘끔 겨우 번호를 찾았다. 면접 시간 전 미리 도착해서 대기하라는 문구 아래 그곳의 전화번호가 있다.      

대충 상황을 설명하고 도착시간이 7분 정도 지연될 수 있다고 양해를 구했다. 도로포장 공사를 연휴 전날, 왜 이렇게 정체가 심한 시간에 하는 것인지. 모두가 사연이 있겠지만 나는 모든 것을 감안하고 출발했음에도 공사를 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담당자는 다행히 번호가 뒷번호이니 조심히 오라는 것이다.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그런데 2분이나 지났을까? 휴대전화기가 온몸을 떤다. 조금 전의 담당자였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러나 심장박동은 진중하다. 급히 회의했는데 면접 공지에 2시 이후의 면접자는 입실할 수 없다고 안내했기 때문에 지연시간을 봐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도 맞는 말이기에 2시 전에 도착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하고는 끊었다. 화가 날 상황이기도 불안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차량을 덜렁 들고 뛸 수도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현실에서 팔짱을 끼고 앞만 노리고 본다.     

덥다. 애꿎은 스피커 음량만 높여 본다. 얼마쯤 가다 서기를 천 번쯤 반복하다 보니 그렇게 줄지어 있던 차들이 사라졌다. 신기하다. 줄어드는 분 단위 시간을 보면서 속도를 내본다. 속도위반 단속 카메라는 왜 이리 많은지. 밟기만 하면 500m 앞에 카메라가 있어 속도를 내지도 못한다. 그래도 심장박동은 일정하게 진중하다. 웬만하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약이 효능을 발휘하는 중인가 보다.     

고속도로에서 초행길을 7분이나 줄였다. 운 좋게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주차할 자리도 남아있었고. 입구에서 달음박질하여 문 닫히기 일보 직전인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기도 했다. 면접 장소에 당도했을 때는 1분이 지나고 있었다. 담당자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무사히 도착함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는 안도의 표정이다. 제시간에 어쨌든 도착한 셈이라며.    

그런데 그는 면접자들의 의향을 물어봐야 한다고 잠시 대기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2분이 지났을까? 면접자 중 1명이 나의 입실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일찍 나와서 대기하고 있었던 면접자의 처지에서 형평성을 지적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해한다고 답하고는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자유·평등·박애’에 근본을 두고 민주주의 가치를 논한다면 개인의 사정은 개인의 일일뿐. 놓친 시간을 이제 탓하면 무엇하랴. 화가 날 만도 한데 화가 나지 않는다. 나의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나의 무력함과 취약한 나태함, 무언가 잘못되었지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분노가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는다. 히실 히실 웃음만 난다. 그래도 이 말은 해야겠다. 그렇게 해서 넌 잘 될줄 아니? 맥박수 66 b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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