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깔깔거리며 웃는 여자애들 사이에 미러볼처럼 반짝거리는 파우치가 눈에 띄었다. 이거 새로 나온 틴트여서 산 건데 어때, 나도 한 번 발라 볼래, 라고 말하는 호들갑스러운 입들 위로 다른 종류의 틴트가 덧입혀졌다.
자신의 침이 묻었을 틴트를 또 다른 침 묻은 입술 위에 얹게 해주는 아량이 놀라웠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건 돌아가면서 틴트는 바뀌는데 입술 색은 어슷비슷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어떤 색깔 차이가 있는 건지 찾아내기 어려웠지만 여자애들 입 밖으로는 폭죽 터지듯 ‘우와’와 ‘예쁘다’라는 말이 쏟아졌다. 저게 저렇게 웃긴가. 뭐, 색깔만 나오면 됐지. 판단이 서자 나는 그날 바로 학교 앞 올리브영으로 향했다.
“립밤 사려다가 원 플러스 원이라 길래.”
정말 진부하기 그지없는 말로 툭하고 책상 위에 던지듯 놓아준 립밤에 서연은 토끼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와, 나 이런 선물 처음 받아 봐.”
왠지 모르게 너의 ‘처음’에 내가 있다는 게 너무나도 뿌듯했다. 내 앞에서 보란 듯이 립밤을 쓱쓱 바르고 입술을 맞대고 떼며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자 나는 세상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서연이는 햇살이 쏟아져 내리듯 밝게 웃었다. 그날 내가 깨달은 건 선물은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선물을 받고 좋아할 너를 상상할 수 있는 기쁨과 주기 전까지의 떨림, 그리고 기분 좋아하는 너를 볼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가슴 벅찬 일인 줄 그전에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서연에게 더 많은 ‘처음’을 선물해 주고 싶다는 욕심도 슬며시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왔다.
조금씩 연락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아니, 어쩌면 급작스럽게 많아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눈을 뜨면 일어났냐고 문자를 보냈고, 새벽마다 같이 등교하려고 아파트 정문 앞에서 기다리며 문자를 보냈다. 교실에서는 팔만 뻗어도 잡힐 만큼 가까운 곳에 앉아 있었는데도 굳이 우리끼리만 알고 있어야 할 일처럼 문자로 감정을 공유했다. 오고가는 선물들, 문자와 통화들이 쌓여갈수록 우리의 관계가 단단해진다고 믿었던 것 같다. 나는 매일 서연에게 전화를 했다.
“뭐해?”
“어, 도윤아. 독서실 갔다가 지금 집 가고 있어.”
“어떻게 만날 새벽까지 공부만 하냐.”
“해야지, 뭐 어떻게. 하암...”
“헐. 하품하는 소리도 귀엽네.”
“늦었는데 너도 그만 자.”
“괜찮은데. 좀 더 통화해도 되는데.”
“나 이제 집 들어왔다. 그럼 내일 학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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