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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

by lala

서연이를 좋아하기 시작한 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문득 옆에 앉아서 공부하던 서연이의 옆얼굴이 유난히 하얗다고 느꼈던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때가 중학생 때였으니까 짝사랑만 햇수로 3년째다.

서연이는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늦게 학원에 들어왔는데 그래서 맨 뒤에 앉았던 내 자리 옆에 앉게 되었다. 처음 반에 들어왔을 때 애들 시선이 곱지는 않았던 것 같다. 워낙 성적이 높은 상위 클래스였고 추가로 합류된 터라 껄끄러워하는 애들이 더 많았으니까. 그리고 그중에 제일 거슬려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제일 뒷자리에서 편하게 두 자리 다 쓸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떡하니 옆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게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임서연은 말수가 없는 편이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지 반년이 지났을 때까지도 나와 단 한 마디도 섞지 않았다. 귀찮게 말 걸어오는 여자애들이랑은 다른 게 편하다가도 사람이 저렇게 말을 안 할 수도 있나 신기하기도 했다. 낯을 많이 가려서 그런 건가 생각해 보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임서연은 딱히 같이 다니는 친구도 없어 보였고 무엇보다 본인도 그럴 의지가 아예 없어 보였다. 그저 스스로가 다른 애들을 전부 왕따 시켜버리는 느낌이랄까.

하여간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던 중에 학원에 영어 문제집을 못 챙겨 간 날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50분 내내 문제집을 책상 가운데에 두고 딱 붙어서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처음 임서연을 제대로 쳐다봤던 것 같다. 갈색 생머리가 원래 저렇게 길었었던가. 얼굴은 딱히 화장을 한 것 같지도 않았는데 찹쌀떡처럼 하얗고 말랑말랑해 보였다. 눈매는 생각보다 길고 뾰족하게 트여 있었고 도톰한 입술은 잇따라 자꾸 우물쭈물했다. 나는 어느새 턱까지 괴고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임서연이 피식하고 웃었다. 선생님이 뭔가 농담을 하신 것 같은데 그게 웃겼나 보다. 휘어지는 눈매를 보자 나도 모르게 등신처럼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야, 너 임서연 좋아하냐?”

처음 속마음을 들킨 건 임서연이 아니라 같은 반 남자애들이었다. 화이트데이 때 고백하려고 넣어두었던 사탕하고 편지를 들킨 게 화근이었다. 애들 머리 위로 사탕이 공처럼 날아다녔고 무리 중 한 명이 덧니를 드러내며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겨우 뺏어 든 편지로 상황이 종료될 줄 알았던 나는 점심시간 방송을 듣다가 사레들렸다.

“오늘의 마지막 사연과 신청곡입니다. 1학년 덕 반 유재현 학우님께서 처음으로 사연을 주셨네요. 서연아, 맘 졸이며 널 짝사랑한 지도 벌써 3년이야. 임서연! 내 맘 받아주라, 라며 ‘바라보다’라는 곡을 신청해 주셨습니다.”

내 앞에서 남자 새끼들이 시시덕거리며 웃어재꼈다. 나 몰래 방송 반에 사연이랍시고 넘겼을 것을 생각하자 화가 치밀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가슴이며 팔을 주먹질 해대는데도 새끼들은 뭐가 그리 웃기는지 눈물까지 흘리면서 고꾸라졌다. 하아... 전교생 천 명 앞에서 생중계 고백을 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쨌든 난 그중 하나였고 방송이 나간 뒤에는 다른 반 학생들이 내 반으로 찾아와서 얼굴 구경하는 것을 참고 봐야 했다. 더 큰 문제는 학원에서 서연을 마주쳐야 하는 일이었다. 오늘만 학원 빠질까. 문을 앞에 두고서도 몸을 돌이키기를 열댓 번을 반복한 끝에 결국 나는 선생님 손에 붙들려서 수업에 들어갔다.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이었다. 그때 들어가자마자 마주친 서연이의 눈은 지금까지도 잊혀 지지가 않다.

“저기, 이거 네 친구가 준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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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가로서 첫 에세이 <사랑에 빚진 자가 부치는 편지>, 장편소설 <러브 알러지>,<레드 플래그>를 집필 했습니다. 《보기 좋은가 바오》2025 대산창작기금 소설 부문 본심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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