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쯤 학교 체육대회가 다가오고 있었고 덩달아 바빠진 학생회는 조례 시간 전과 점심시간 그리고 방과 후에도 회의를 하면서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연이는 선생님의 허락 하에 당분간 선도부보다 학생회 활동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나는 서연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나랑 등교하자.”
서연이가 최도윤하고 같이 등교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저렇게 말했다. 서연한테 최도윤이 ‘별일’이 되는 게 싫었다. 내 말에 서연이는 난감해하는 낯빛이었다.
“어차피 당분간 학생회 회의 때문에 선도부 활동 못 나가잖아. 최도윤한테도 그렇게 말해. 남자 친구랑 같이 등교하게 됐다고.”
심지어 나는 서연이가 최도윤한테 보낼 문자까지 직접 친절하게 작성해 주고는 이대로 보내라고 알려주었다. 마음 여린 서연이가 문자를 썼다 지우길 수차례 반복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싫었으니까. 조금씩 서연이의 시간에서 최도윤이라는 사람을 지워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도윤의 삶에서 서연이를 떼어낼 수 있다고 믿었던 건 내 오만이고 착각이었다.
5월 중순으로 들어 선 어느 날이었다. 나와 서연은 자주 가던 스터디카페에 가서 나란히 앉아 공부를 하고 있는데 연신 휴대폰이 진동했다. 참다못한 내가 누구냐고 눈짓하자 서연은 한숨을 내쉬면서 이마를 짚었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내밀고 서연이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이게 다... 뭐야?”
순간 둔기로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수십 줄이 넘어가서 전체 보기를 해야만 하는 문자가 연이어서 오고 있었다. 왼쪽 화면을 가득 채운 글들은 엄지로 스크롤을 계속 내려도 끝나지 않았다. 반면 서연의 답변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죽을 것 같아, 나랑 절교, 왜 우리만 아는 카페에 다른 놈이랑, 프로필 사진 내려, 씹냐]
몇몇 개의 단어들이 도장 찍히듯 눈에 들어왔다. 읽어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손이 덜덜 떨려왔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애정을 쏟아서 우정을 키워왔는지, 선물 하나도 어떤 마음으로 골라서 샀던 건지, 임서연이 뭘 잘못했는지, 어떤 점이 서운했던 건지에 관해서 아주 장황하고 두서없는 글들이 면밀하게도 작성되어 있었다. 무슨 이런 또라이가 다 있나 싶었다. 그리고 임서연은 왜 이런 미친놈을 옆에 두고 끊어내지 못하는 건지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동안 누누이 최도윤을 멀리하라고 말해왔음에도 서연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속앓이만 했다.
설마 협박을 당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서연이는 진심으로 최도윤을 걱정하고 있었고 마음 아파했으며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에는 자신의 탓도 있다면서 자책했다. 남이 보면 아주 절절한 이별 당사자들이었다.
“차단해.”
나는 두말하지 않고 바로 차단하기를 눌렀다. 그동안 묵인해 왔던 친구라는 관계와 우정이라는 말이 더 이상 귀엽게 느껴지지 않았다. 선을 넘어버린 이런 기괴하고 이상한 관계에서 서연이를 보호하고 격리해야 했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서연이 옆에 더 꼭 붙어서 최도윤을 감시했다. 등교 시간, 쉬는 시간, 하교 시간도 늘 함께 있었고 밤늦게 학원 끝나고 집에 데려다주는 것도 내 몫이었다. 사실 학폭위에 고발해서 당장 최도윤을 격리 시키고 싶었지만 서연이가 그러길 원치 않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서연을 보호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 테러 대상이 내가 될 줄도 모르고.
“유재현! 이거 봤어? 미친.”
방송 반에 나 몰래 고백 사연을 보냈던 덧니가 내 눈앞에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또 뭔 시답잖은 거나 보여주겠지, 하며 흘깃 쳐다보던 나는 이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휴대폰을 뺏어 들고 자세히 살펴보니 최근 게시한 내 인스타 사진 아래에 수십 개의 악성 댓글이 달려 있었다.
“야, 너 임서연한테 탈의 사진 보냈냐?”
덧니의 말에 옆에 있던 친구들이 발작하듯 킥킥거리며 웃어댔다. 나는 얼굴이 홧홧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얼어붙은 듯 온몸이 경직되었다. 이 모든 게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왜 내가 서연한테 한번 보기로 보냈던 사진이 공공연하게 댓글에 걸려 있는 건지, 내 스토리마다 적혀 있는 수십 개의 악성 댓글은 어떤 새끼가 달아놓은 건지 머릿속이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아갔다.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에 입안이 쩍쩍 말라왔다. 스크롤을 내리며 정신없이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이내 하나의 댓글에 시선이 못 박혔다.
개수작 부리지 말고 임서연한테서 떨어져.
순간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어둡고, 칙칙하고, 소름 끼치는 자식. 이 와중에 그 새끼 이름밖에 떠오르지 않는 게 너무 짜증났다.
“네가 이랬어?”
방과 후에 학교 뒷골목으로 최도윤을 불러냈다. 나와 최도윤 사이에 선 서연이는 가방끈만 매만진 채 겁에 질린 얼굴이다. 최도윤은 소리도 없이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긴 앞머리에 눈이 가려져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들이민 휴대폰 인스타를 보고는 저렇게 웃는다는 게 무언의 동의처럼 받아들여졌다. 남자 새끼였으면 저 따위로 웃기도 전에 죽방을 날렸을 거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보다 못한 서연이가 최도윤 앞을 가로막으며 휴대폰을 가져갔다.
“네 절친이란 놈이 내 인스타 테러했어.”
휴대폰을 내려다보는 서연이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니까 왜 서연이 괴롭혀.”
최도윤이 빈정거리며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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