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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출산율과 교복 소매

by lala

청소년 우울이라는 말을 뉴스로만 전해 들었을 때는 실감하지 못했던 나는 카페에서 대화하는 모녀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아들을 연신 토닥이며 말했다. “지금이 정말 중요할 때야. 상담 센터 다니면서 버텨보자. 정 안되면 정신과에서 약물만 처방받고. 등수 떨어지면 끝이야. 너도 알지?” 아들은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그저 초점 없는 눈으로 벽 어딘가를 응시하며 교복 소매를 어루만질 뿐이었다.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약물로 수능 때까지만 버티자고 하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절박함은 아들의 건강 때문이라기보다 점수와 등수, 결국 대학이라는 관문 때문인 듯 보였다. ‘떨어진다’는 말이 이토록 공포로 각인된 사회에서 어쩌면 그녀도 그저 시스템의 희생자일지 모른다. 그 공포는 이상하게도 이상(李箱)의「오감도」속, 어디로 달려야 하는지 모른 채 무리에 휩쓸려 달리는 아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짓밟히지 않으려면 달릴 수밖에 없는 아이들. 1930년대의 절망과 지금의 절망이 이렇게 닮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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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가로서 첫 에세이 <사랑에 빚진 자가 부치는 편지>, 장편소설 <러브 알러지>,<레드 플래그>를 집필 했습니다. 《보기 좋은가 바오》2025 대산창작기금 소설 부문 본심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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