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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

by lala

윤희를 포박하다시피 안아서 집으로 들어온 뒤 몇 분 지나지 않아 초인종이 울렸다.

“류승민 형삽니다.”

인터폰을 보니 류 형사가 눈썹을 긁으며 서 있었다. 소파로 자리를 안내해 드린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 놓인 탁상시계는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류 형사님, 커피 괜찮으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전기포트에 물을 올리던 나는 흘깃 뒤돌아 형사를 쳐다보았다. 함께 앉아 있는 아내와 형사가 엄숙한 표정으로 어색하게도 앉아 있었다. 흡사 애도를 표하는 장례식장 분위기 같았다.

물이 끓는 몇 초 동안 잠시 개수대에 손바닥을 얹은 나는 혼돈에 사로잡혔다. 좀 전에 들었던 영상이 상상 속의 서연을 빚어냈다. 최도윤이라는 놈하고 얼마나 심각하게 몸싸움을 했던 건지는 비명과 고성을 통해서 충분히 전해졌다. 내 딸아이가 짐승에 가까운 포효를 내질렀을 때는 온 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학업 외에는 관심도 없는 서연이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친구와 그렇게 다투게 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가 죽고 싶다고 생각을 할 만큼 힘들었다는 걸 그동안 몰랐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밀려왔다.

탁, 하고 전기 포트의 전원이 차단되는 소리에 내 고개가 홱 돌아갔다. 거실로 나온 나는 테이블 위에 커피를 내려놓으며 윤희 눈치를 살폈다.

“서연이 상태는 좀 어떤가요?”

내게 얼굴을 돌린 형사가 차분한 어투로 물었다. 나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병실에 누워 있는 서연의 모습이 눈에 스쳤다. 서연은 얼굴과 팔 다리에 골절과 찰과상을 입은 것 빼고는 마치 긴 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다. 오전 7시가 되자 회진을 돌던 주치의가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손에 쥔 차트를 휙휙 넘겨보던 의사는 서연을 내려다보더니 6층에서 떨어졌는데 현장에서 즉사하지 않은 게 기적입니다, 라고 아주 무미건조하게 말을 꺼냈다. 이어 그는 타박상과 경미한 뇌진탕이 있지만 생명에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며 일단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말을 남겼다. 나는 몇 가지 안내 사항을 간호사에게 지시하는 그의 소매를 붙들고 도대체 애가 언제쯤 깨어날 수 있는 거냐며 윽박질렀다. 목소리를 그렇게까지 크게 할 필요는 없었는데 깨어나지 못할 수 있을 거라는 불안감이 그대로 목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의사는 으레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준비된 말들을 늘어지게 꺼내 놓았다. 의식이 깨어나는 것은 환자마다 달라서 특정 시점을 콕 집어 말씀 드릴 수 없다는 것, 지금으로서는 뇌의 부종을 완화하기 위한 약물과 영양 주사가 투입될 거라는 것, 상태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고 최선을 다해 필요한 치료를 병행하겠다는 말 따위였다.

“의사 말로는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하는데, 아직 의식은 없습니다.”

기도하듯 두 손을 깍지 낀 내가 덤덤하게 말했다.

“흐음, 의식이 돌아오는 건 좀 지켜봐야 되겠군요. 꼭 깨어날 겁니다.”

형사의 말에 나와 아내는 대답이 없었다. 거의 탈진하다시피 한 윤희는 머리를 오른쪽으로 힘없이 떨어트리고는 베란다만 응시하고 있었다.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형사는 입술을 입안으로 말아 넣고 코 밑을 쓱 닦았다.

“제가 이렇게 댁을 찾아오게 된 건 지금까지 진행해온 기초 조사와 현장 감식 내용을 전반적으로 말씀 드리고자 함입니다.”

“결과가 나왔습니까?”

내 눈이 크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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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가로서 첫 에세이 <사랑에 빚진 자가 부치는 편지>, 장편소설 <러브 알러지>,<레드 플래그>를 집필 했습니다. 《보기 좋은가 바오》2025 대산창작기금 소설 부문 본심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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