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서연이가 자살 시도를 한 게 사실이라면, 나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숨이 턱 막혀왔다.
그때 윤희가 튕겨나가듯 소파에서 일어섰다. 뭔가를 찾으려는 듯 고개를 양옆으로 휘젓던 아내가 이내 결심이 선 듯 안방으로 뛰어가더니 지갑을 들고 나왔다.
“어디 가?”
신발장에 손바닥을 지지하고 샌들을 구겨 신는 윤희를 쳐다보며 내가 물었다. 윤희는 내 말을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대답이 없었다. 벌떡 일어선 내가 윤희 팔을 붙들었다.
“어디 가려는 거야, 지금.”
“이거 놔 봐. 최도윤 좀 만나봐야 겠어.”
뛰쳐나가는 윤희를 가로막자 바로 등 뒤에서 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도윤 학생한테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입니다. 방어권 보장으로 기각될 수도 있지만 일단은 믿고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
따라 일어선 형사가 수첩을 뒷주머니에 꽂으며 나직이 말했다.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거면 어떡해. 내 책임이야.”
형사가 돌아간 뒤 소파 위에 걸터앉아 있던 윤희는 한참 만에 입을 떼며 말했다. 여전히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무슨 소리야.”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나온 나는 쉬어빠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어쩌면 그때 아내에게 다가가 안아줬어야 할지도 모른다. 당신 탓하지 말라고, 지금은 함부로 누구 탓도 해서는 안 된다고 토닥여 줬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터덜터덜 부엌으로 들어가서 정수기 밑에 컵을 대고 냉수 버튼을 눌렀다. 위잉, 하고 돌아가는 정수기 소음에 내 짙은 한숨 소리가 묻혔다. 요즈음 들었던 소리 중에 가장 편안함을 주는 소리였다.
“자살 시도였든 실족 사고였든 살인 미수였든 애가 저렇게 된 건 내 책임이야. 엄마가 돼가지고 지켜주지도 못하고.”
다시 거실로 돌아와 물 컵을 건넬 때도 윤희는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말했다. 눈 밑으로는 그림자처럼 짙은 다크 서클이 내려와 있었고 머리칼은 제멋대로 엉켜있었다. 파리한 형광등 아래 윤희는 한층 더 초췌해 보였다. 나는 탁자 위에 물 컵을 내려놓고는 아내 옆에 털썩 앉았다. 정면에 붙어 있는 티비 브라운관이 보였다. 그 속에 비친 우리 둘의 모습은 생각보다 더 처연했다.
“서연이 일기장을 봤어. 그동안 힘들어했더라고. 내가 너무 다그쳤나봐.”
무릎 위에 팔꿈치를 얹은 윤희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몸을 지탱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잠시 뒤 윤희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윤희는 실성한 듯 웃으면서도 울고 있었다. 볼 줄기를 타고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지만 윤희의 입에서는 자조가 섞여 나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 윤희와 서연이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사진 찍히듯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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