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구멍이 메이는 사람들

『이처럼 사소한 것들』(클레어 키건, 다산책방, 2024)

by 남쪽맑은물

킬리언 머피(영화배우, 아일랜드)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에 대한 감상을 “1980년 아일랜드를 훌륭하게 그려냈다. 간결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삶을 이룬다’는 느낌이 충분한 책이라고 표현했다. 이 문구 앞에서 간결하고 아름다운 삶이 무엇일지 생각한다.

삶에서 사소한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사소해 보이지만, 지나칠 수 없는 것들,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말일까.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어두운 광장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빛이나, 비관주의자에게 찾아온 겨자씨만 한 낙관 같은 것일까. 썩어가는 검은 물속에서 언뜻 보이는 잉어의 아름다운 비늘일까. 멈출 수 없는 악다구니 속에서 잠시 귀를 틀어막는 것일까. 더구나 사소한 것들이 아름답기까지 하다면, 행동하지만 말이 되지 않고, 말을 하지만 행동이 되지 않는 이 모든 것들 조차 삶을 엮어간다는 의미일까. 이처럼 사소하지만 의미가 있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세상은 사소한 것들이 만들어 간다는 담론에 천착하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천천히 펼쳐본다.

1980년대 아일랜드는 어떤 나라였을까. 역사는 있었던 일이고 있었던 일이 현재에 영향을 준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연속한 정치, 사회, 문화 결정체가 개인의 삶에 깊숙이 개입한다. 삶은 끊어질 수 없기에 총체적 난관이 찾아오더라도 그만둘 수 없다. 어수선하고 혼란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의도한 바 없이 견디기만 해도 살아지는 삶이 있다. 이 작품에서 그런 인물이 주인공 펄롱이다.

혹독한 시기를 조용히 버티고 이겨내는 주인공 펄롱. 소시민의 삶을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소시민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뇌에 찬 결정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상황과 상황이 연결하면서 외부의 작은 영향으로도 휘정거리는 것이 소시민이다. 삶은 침묵과 용기 그 어디쯤에서 망설이는 과정이 아닐까. 마을 주민과 갈등이 생기지 않으면서 딸들이 잘 커서 도시에서 유일한 여학교인 수녀원 졸업을 바라는 부모. 그 뒷바라지를 위해 석탄 배달을 열심히 하는 아버지, 아내가 믿을 수 있는 남편, 타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어디까지 행동해야 하나를 고민하는 개인, 펄롱은 우리의 삶을 투영한 인물이다.

빈 펄롱은 빈주먹으로 태어났다. (15쪽) 펄롱의 엄마는 남의 집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중 임신을 했다. 어머니가 죽고 난 후 펄롱은 출생증명서를 보게 되는데 아버지 난에 ‘미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펄롱은 과거에 머물지 않기로 했다. (19쪽) 아내와 다섯 명의 고운 딸을 부양하는 데 집중했다. 가끔 딸들이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을 하는 걸 보며 기뻤다. (20쪽) 예를 들면, 예배당에서 무릎 절을 하거나 상점에서 거스름을 받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것 볼 때,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부자는 아니지만, 수녀원 학교에 다니는 딸과 깊은 잠에 빠진 아내를 보며 세상에서 작은 일들이 얼마나 위안이 되지를 생각했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22쪽)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줄,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추운 집에서 지내는 사람들, 젖소를 돌보다 다 때려치우고 영국이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사람들. 이때는 1985년이었고 대처 수상과 북아일랜드 관련 협정을 맺었고 더불린의 문제에 대한 독립성을 더불린 사람들은 주장했다. 조선소가 문을 닫았고 공장에서는 해고가 단행되었고 오래된 회사가 문을 닫았다. 혹독한 시기였지만 그럴수록 펄롱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냈다.( 24쪽)

어려운 시기를 어려운 이웃은 어떻게 버틸까. 금쪽같은 다섯 딸이 용감하게 이 세상에 맞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컸다. 세상이 그리 무서울 것 없다고 딸들을 달래지만, 그런다고 걱정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서 종종 내 아버지는 어디에 있을까? (31쪽) 생각했다.

딸이 다니는 학교 수녀원은 위풍당당함을 뿜어낸다. 원장인 카멜 수녀는 최고의 권력자다. 신을 배경 삼아 무소불위 인물이다. 수녀원은 직업학교이면서 세탁소를 운영한다. 주변 상점에서 나오는 빨래를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어린 여자들이다. 그들은 손수건 한 장이라도 새것처럼 만든다.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타락한 여자들이 교화를 받는 중이라는 소문이 있다. 혼외 임신을 한 여자들이 그곳에서 출산하고 그 아이를 미국으로 입양시키면서 수녀들이 상당히 돈을 챙긴다는, 그게 수녀원에서 하는 사업이라는 소문이 아닌 사실이 난무해도 그 누구도 사실을 확인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힘이 없기 때문이다.

펄롱은 그런 말을 전혀 믿고 싶지 않았지만, (50쪽) 믿을 수밖에 없었다. 펄롱은 추운 겨울에 예배당 바닥을 여남은 명이 엎드려 걸레로 죽어라고 바닥을 문지르는 것을 보았다. 신발을 신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눈에 흉측한 다래끼가 난 아이도 있었고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깎인 눈먼 이도 있었다. 그중 어떤 아이가 펄롱에게 도와달라고 진지하게 매달렸지만, 펄롱을 뒤로 물러섰다. 펄롱은 여자아이의 일을 머리에서 지우려고 애썼다. 여자아이에 관해 수녀에게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딸이 수녀원에서 아무 탈 없이 졸업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 딸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잖아?”

생각할수록 울적한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우리랑 상관없는 일일까. 생각해 봐야 소용없는 일일까. 그런데 왜 화가 날까. 우리가 가진 것을 잘 지키는 일은 무엇일까. 고요 속에서 평화로움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일까. 불안은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악의 그림자와 선의 그림자는 상황에서 대치하지 않은가. 어느 쪽이 이길까. 어느 쪽을 응원할까.

펄롱은 일하러 나가고 싶지 않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100쪽) 게으름을 피우거나 불평하지 않았지만, 뭔가 가슴에 얹힌 것 같았다. 세탁소에서 일하는 여자와 아이들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거나 노역을 인정받지 못한다. 많은 여자가 아이를 잃고 목숨을 잃는다. 모자 보호소에서 죽거나 다른 곳으로 입양된 아기가 몇천 명이 되는지 알 수 없다. 애들 부모는 어떻게 애들에게 문제가 생기니까 버릴 수 있을까. 어떻게 순진한 마음으로 이 세상에서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하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을 수 있을까. (121쪽)

기계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도는 일상에서 우리는 가끔 어디에서 멈추어 어디를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어디에서 인생을 뒤돌아보아야 할까. 혹시 견고한 일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타인에 대한 관심을 어디까지 두어야 하며,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란 무엇일까. 작고 작은 순간이 모여 삶을 이루듯이 작고 작은 행동이나 말이 삶을 이룬다는 것을 알지만, 작고 작은 것이 정작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면, 그렇게 사라진다면, 과연 작은 것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 책은 삶의 결핍이나 불편한 상황으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자세하게 묘사하거나 점층적인 설명이 아닌데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 것 같은 문장이 더욱 책 속에 빠져들게 한다. 결단을 내리기에 저어하는 행동에서 느껴지는 아련함이 어쩌면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특성으로 이해하게 한다. 말로 힘을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 표정으로도 불안함을 들킬 수 있는 사람들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자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지지만, 최악의 일은 지났다고 생각하면서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이미 겪은 것, 앞으로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121쪽)을 주문으로 읊조리는 사람들 이야기.

펄롱처럼 하지 못한 말이나 행동으로 목구멍이 메이는 사람들이 있다. 작은 존재이지만, 살아야 하기에 메이는 목구멍으로 작은 숨을 쉰다. 그러나 그 숨을 쉬게 하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크다는 것을 알 때, 숨은 매우 간결하고 아름답게 운율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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