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날들
2023 [수필과비평] 12월호 원고
날씨 변화는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갑자기 다가온 겨울 같은 초가을 추위로 얼어버린 은행나무는 샛노란 은행잎이 되기도 전에 누런 잎이 되었다. 자연스러울 수 없는 자연을 목격하면서 변해가는 세상 이치를 헤아리기도 벅차다. 너무 쉽게 변하기도 하고 너무 빨리 변하기도 하지만 그 신호를 감지하는 일이 속절없이 느려 속이 탈 때가 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이 적당한 순간이라 위무하며 지나온 삶이지만, 가끔은 변화하는 속도나 내용이 인정머리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과 가까워 철조망을 자주 만나게 되는 곳이 연천이다. 구석기 시대를 품고 있는 지역에서 철조망이라니. 철로 만든 가시를 바라보며 애석한 마음을 다독인다. 그럼에도 전곡리 유적은 시대 변화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이른 추위로 누렇게 떠버린 은행나무가 겪는 곤혹스러운 현실도 구석기와 이어진 삶이다. 구석기에는 없었을 이 나무가 시대를 말한다. 철조망이 시대를 말하듯이. 그러나 언젠가는 철조망에 얽힌 역사를 회억하면서 철조망 없는 시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은행나무도 그날을 함께 하면 좋으련만…. 이상기온으로 얼어버렸던 은행잎 사연을 추억하면서.
추운 날씨가 한바탕 지나더니 걷기 좋은 가을날이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영하 추위로 힘을 잃은 은행잎이 거리에 죽음처럼 흩어져 있다. 하늘도 청명하고 바람도 산뜻하지만, 노란색을 잃어버린 은행잎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많은 잎을 떨군 은행나무도 어김없이 떠오른 해의 따뜻함을 받는다. 가끔은 당연한 일이 기특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매일 떠오르는 해가 이리 고마울 수가. 걷는 일이 감사한 것처럼 떨어진 은행잎으로 무질서해 보이는 거리도 아직 나뭇가지에 남아 있는 은행잎도 감사하다.
일정한 형식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요소가 가득한 예술처럼, 절대로 자연 모습은 인공적일 수 없다. 인간 공식이 아닌 자연 공식으로 나타나는 이치에 놀랄 뿐이다. 이른 추위로 젖은 종이처럼 널브러져 있는 은행잎도 그들만의 공식이 있었으리라. 다시 살아나기 위한 자연 공식. 인간 의지가 아니라 나무 의지로, 대낮 햇살과 밤의 총총한 별 그리고 새벽 구름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은행나무 일일 것이다.
은행나무 길을 지나 댑싸리 공원에 와보니, 에구머니, 가을을 잃어버린 풍경이다. 갑자기 몰아친 추위를 이기지 못해 생기 있는 댑싸리는 온데간데없다. 얼었다가 녹은 식물은 힘이 없고 색깔도 선명하지 않다. 붉은색으로 펼쳐졌을 가을 풍경이 작년에 찍은 홍보용 사진이 대신한다. 공원 입구에 만들어진 행사용 부스도 스산하다. 그런데 부스 한쪽에 걸려 있는 빗자루가 내 시선을 끈다. 예쁘고 앙증맞은 소품과 실용성이 튼실하게 보이는 생활용품. 물건을 보니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날씨로 인해 행사가 엉망이 되었다고 관계자는 말한다. 때 이르게 떨어진 낙엽처럼 관계자 말도 힘이 쭉, 빠져있다. 관계자는 안내할 내용이 별로 없어 말이 궁색한지, 왕성했던 지난 축제 이야기를 한다. 작년에 만들었던 싸리 빗자루를 만지작거리며 얼어버린 댑싸리로 빗자루를 만들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자연을 소재로 한 물건이 주는 아늑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욕심이 날 물건이다. 소품으로도 가치가 충분하다. 물건이 공간을 형성하면 그 공간과 물건은 예술이 된다. 그 장소에 머무는 이들의 아슴아슴한 감성이 물건에 물들어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관계는 자연스럽고 따뜻할 수밖에. 게다가 그 공간이 사람을 품는다면, 공간 예술 가치는 더욱 고조된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가 주는 사물은 어떤 강력한 통제력으로도 자유로운 감성을 억제하지 못한다. 이것이 댑싸리 빗자루 느낌이 인공적일 수 없는 이유다.
싸리 빗자루는 마트에서 살 수 없는 물건이다. 사람 손길이 닿아 만들어진 물건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그 자체가 특별하다. 형태나 색깔, 문양을 고민하지 않아도 자체가 아름답다. 자연의 실용적인 아름다움은 자연의 열정을 부추긴다. 열정은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게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성찰을 만나게 해 준다. 결과 선으로 이루어진 싸리 모양은 곱게 빗은 아이들 머리 같다. 손길이 닿을 때마다 쓰다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마법 같은 거 말이다. 혹시 마녀가 타고 다녔던 빗자루였는지도. 사실, 동화 속 마녀들은 아이들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결국에는 마녀도 아이들의 조력자가 되지 않던가. 아주 자연스럽게.
가을이면 댑싸리는 붉은색으로 물들어 주변 분위기를 달콤하게 한다. 빛 농도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며 태양 위치에 따라 색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아름다운 댑싸리를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죽은 것은 아니기에 다음을 응원한다. 자연은 성공과 실패 사이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그 변화를 느끼고 소통하는 것이 미래로 향하는 발걸음이리라. 댑싸리 뿌리는 이번 추위를 기억하면서 예상치 못한 추위를 이겨낼 힘을 키울 것이다. 변화에 반응하는 상상력으로.
댑싸리를 보았는가. 핑크 뮬리 그라스(Pink Muhly)는 알아도 댑싸리는 생소한가. 비슷하다는 말은 들어보았는가. 어쩌면 댑싸리와 혼동했는지도 모른다. 이른 추위로, 이 가을날, 얼어버린 은행잎처럼 댑싸리의 시든 잎이 애달프다. 그러나 내년 이맘때면, 어떤 상황이 온다고 해도 초록빛 댑싸리가 핏빛으로 물들 것이다. 피처럼 토했던 지난 시절 이야기를 피 같은 색. 피 같은 눈물, 피 같은 인연으로 댑싸리는 환하게 필 것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는 벼락같이 몰아치는 인생 같다. 예상하지 못한 가을 추위를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 자연을 방해하지 않는 자연을 생각한다. 임진강은 철조망과 구석기 유적을 휘돌아 자연과 운율을 맞추어 흐른다. 철조망 사이를 넘나드는 바람도, 그 바람에 흔들리는 풀도, 길가에 떨어진 은행잎도, 아름다운 색을 잃어버린 댑싸리도 강물과 함께 시대를 넘어간다.
변화하는 물결은 다가오는 날들의 환영이다. 세상은 변화를 추적하면서도 변화와 놀이한다. 그러다 서로 공명(共鳴)하면서 반영(反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