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네덜란드에서 일하며 반복해서 느끼는 점이 하나 있다. 필요하면 망설임 없이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겼거나 막히는 일이 있을 때 혼자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면 나만 손해다. 일단 내가 먼저 나서서 도와달라고 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준다. 나의 고민과 역경, 힘듦은 내가 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잘 몰라준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길게 경험해보지 않아서 한국에서의 정서는 잘 모르겠다. 아마 다르겠지만) 여기서는 도와달라는 요청이 내가 무능하다거나 책임이 없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그러니 필요하면 도와달라는 말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나는 문제에 부딪치면 어떻게든 해결을 해보려 혼자 고군분투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매사 제쳐두고 한 가지에 매달려 있던 적도 많았고, 일 끝나고도 그 생각을 놓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일부는 내 성격 탓이다. 자존심 때문인지 도와달라는 말이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편이다. 정말 어쩔 수 없고, 피치 못할 때가 되면, 그제야 힘들게 짜내서 나 좀 도와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진작 소통을 했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이 문제가 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같은 팀 소속에 매일 마주 보고 일하는 사이인데 어떻게 모를까 싶었지만 실제로 그랬다. 간혹 문제가 있는 걸 알아도 그게 어떤 문제인지, 얼마나 심각한지, 누군가 나서야 하는지까지는 알기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말하지 않아도 주위를 살피고 파악해주는 ‘눈치와 센스'가 없는 분위기에서는 특히 더 그랬다. 혼자 고민하고 고생한 게 억울할 정도로 몰라준다. 그러니 일단 문제에 부딪치면 빨리 주변에 알리는 것이 좋다.
두 번째 이유는 누군가 그 답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내가 겪는 이 상황은 아마 회사 입장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분명 누군가는 비슷한 내용이나 맥락의 업무를 해보았을 것이며 그렇기에 경험에서 우러난 답을 갖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내 시야에서는 복잡하게 보이던 문제가 다른 업무나 직책을 맡은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문제일 수도 있다. 나 혼자만 끙끙 앓으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일이다. 더 나아가 애초에 내 수준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주변에 알리고 피드백을 요청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내가 아니라면, 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포지션에 있는 사람을 얼른 찾을 수 있다..
세 번째, 팀이나 회사의 입장에서는 나라는 개인이 그 문제를 얼마나 고민하고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공동의 목표를 달성했는지, 결과물이 있는지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내 개인이 끌어안고 있는 것보다 접근 가능한 리소스들은 모두 확보하고, 필요한 도움은 받아가며 효율적으로 일해야 한다. 뒤늦게 문제 상황을 공유하면 그거야말로 날 무능하게 보이게 한다. 더 쉽게 해결할 수 방법이 있는데 혹은 00에게 물어보면 되는데....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는 질책을 받기 딱이다. 그리고 문제 해결이 되지 못한 경우에도 그렇다. 그럴듯한 결과물로 보여줄 수 없다면 나의 고민과 고생이라도 대외적으로 잘 보이게 해야 뭐라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일찌감치 공유를 하고 내가 이런 노력을 하고 있음을 널리 널리 알려야 한다.
하지만 실천에 옮기기에는 아직도 어렵다.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혼자 잘 해내고 싶어 괜한 자존심을 세운다. 방법은 둘 중 하나다. 눈 딱 감고 도와달라고 하거나, 내 실력을 훌쩍 키우거나. 뭐가 더 쉬울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