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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Nov 25. 2021

내 드립에 억지로 웃지 말아 줄래?

네덜란드 동료의 부탁

네덜란드인 동료가 말했다. 개인적으로 재미없는 농담을 듣고 억지로 웃어주는 사람이 극혐이라고 했다. 아니, 그렇게까지 싫은가.. 했는데 정말이지 극도로 싫고 그런 사람은 참아주기 힘들다고 했다. 자신의 농담이어도 그렇고, 특히 상대방에게 호감이 있다는 이유로 시답잖은 농담에 웃어주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때마침, 아님 나를 저격한 발언인지, 그런 사람이 바로 나다. 재미없는 드립에도 애써 웃어주는 사람, 어떻게든 어색함을 풀어보려 허허 의미 없는 웃음을 남발하는 사람. 바로 나다! 그래서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 들을 대변 해 나름대로 목소리를 냈다.


일단 네가 생각하기에 노잼에 이해할 수 없는 농담도 누군가에게는 웃길 수 있다. 사람마다 재미의 기준이 다르니까. 나는 기준이 낮아서 원래 잘 웃는다.

그리고 억지웃음을 짓는 다고 해서 꼭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속 보이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 아부성의 굴욕적인 웃음이라고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의식하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농담을 한 사람의 의도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 누군가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혹은 그냥 함께 즐겁자고 던진 말일 테니, 그 의도에 자동적으로 반응한다. 꼭 그 멘트가 엄청 웃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자 네덜란드 동료가 펼친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만약 웃긴 농담과 웃기지 않은 농담에 전부 웃어준다면 그 사람은 옳은 피드백을 받을 수 없다. 재미없는 농담이 어떤 것인지 파악을 해야 앞으로 발전할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본인의 경우에는 자신의 유머 감각에 꽤 자신 있기 때문에 혹시 누군가 자신의 드립에 웃지 않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아, 이 농담은 먹히지 않는구나 혹은 저 사람과 유머 코드가 안 맞는구나 하고 깨닫는 계기로 삼을 뿐 그 이상의 타격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농담에 하하호호 웃음을 남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말리는 기분이 들었다. 듣고 있던 다른 동료가 거들어 주었다. 진짜 웃겨서 깔깔거리고 웃는 거랑 예의상 하하 그렇군요 웃는 것은 차이가 난다. 그러니 보통 상대방도 상식이 통하는 선에서 그런 반응의 차이를 알고 있다. 완전 빵 터지는 웃음을 주었다면 다르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얼굴 붉히는 어색한 상황보다는 약간의 웃음을 더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그러자 네덜란드 동료는 흥미로운 답을 내놓았다.

만약 자신이 이런 사소한 일로 기분이 상할까 봐 누군가 억지로 웃어준다면 오히려 자신의 자존심이 상한다고. 이런 일을 마음속에 쌓아두고 상처 받고 그 사람에 대해 기분 나빠할 일 없다고.


순간 떠올랐다. 상대방의 기분이 상할까 해 솔직하지 못한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억지로 허허 웃는 것은 내 수고가 그나마 적게 든다. 하지만 이 동료의 (극단적인) 말도 나름 일리가 있다. 아무리 내가 억지로 웃어준들 상대방은 그게 내 배려인지도 모를 수 있다. 혹은 내가 안 웃어줘도 이 사람처럼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도 있는데 내가 원치 않는 배려를 해준 걸 수도 있다. 농담에 웃는 것 정도는 뭐 할 수 있지만, 하기 싫은 일을 맡아하거나 보기 싫은 사람을 애써 마주 하던 날들이 떠오른다.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그 사람의 독립된 인격과 자존감을 인정한다면,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 사람도 나도 행복하다. 반대로 생각해봐도 그렇다. 상대방이 아니면 아니다, 싫으면 싫다는 말해주지 않아서 (그 사람 눈에는 눈치 없이) 행동하고 나중에야 진작 말을 하던가, 저 사람은 왜 저러지. 내가 독심술 가인가!!라고 답답해한 적도 얼마나 많았는지.


결론은 이렇다. 네덜란드 동료가 원하는 만큼 앞으로 그의 농담에는 솔직한 피드백을 해주겠다, 아주 확실하게! 그렇게 약속했다. 그러자 동료는 흡족해하며 알겠다고 했다.  사람은 더치 중에서도 직설적에 아주 뻔뻔한 편에 속하기에 아주 바람직한 예는 아니다. 하지만  반대편에  있는 나는  사람을 조금은 닮을 필요가 있다. 오늘도 소소히 얻어가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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