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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Feb 26. 2022

무력감과 기도

전쟁이라는 큰 파도 앞에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다

우리 회사 개발 팀에 우크라이나 출신 동료가 7명이다. 두 명은 네덜란드에 있고, 세명은 우크라이나 지사에 근무한다. 그리고 두 명은 3월 1일에 합류하게 되어 막 인사를 한 참이었다.


목요일 새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나는 회사에 가는 기차 안에서야 뉴스를 보았다. 무슨 일인지 바로 파악이 되지 않았고 어느 정도로 심각한 사안인지 모르겠어 뉴스를 읽다가 회사에 도착했다. 우크라이나 출신과 러시아 출신 동료들이 모여 심각한 분위기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들 새벽부터 깨어 있었다고 한다. 몹시도 피곤하고 지쳐 보였다.


다행인 건 모두들 가족은 무사히 있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더욱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거나 이동 중이어서 소식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있는 동료들도 오후쯤 연락이 닿았다. 전기가 끊긴 동료도 있었고 인터넷이 되지 않는 동료도 있었다. 다섯 명 중 세명은 키에브에서 다른 곳으로 대피했고 한 명은 아직 키에브에서 이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한 명은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 도착했다니 천만다행이었다. 키에브에 있는 동료는 일곱 살 아이와 아내와 함께였는데 만 하루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아 모두 마음을 졸였다.


점심시간쯤 우크라이나 동료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일이 손에 잡힐 리도 없고, 식욕도 없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출근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왔지만 집에 가서 배우자와 함께 있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몇 시간마다 연락이 닿지 않는 동료가 걱정이 되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위로를 해야 할지 응원을 해야 할지 도움이 될 일이 뭐가 있을지 나도 모르겠는 상태였다. 러시아 동료들도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눈치가 보였다). 한 명은 공개적으로 러시아 정부와 푸틴을 비판하고 자신은 러시아 국민으로서 부끄럽다고 했다. 반면 다른 한 명은 아무 말이 없었는데, 그 사람 개인의 잘못도 아니고 그 사람이 정부를 대변할 필요도 없으며 정치적 견해를 밝힐 필요는 더더욱 없기 때문에 그 자체는 괜찮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동료들과 그들의 가족을 걱정하고 응원하고 있는 우리 팀 사람들은 혹시나 이런 언사가 러시아 동료들에게는 또 다른 차별이나 불편함을 일으키는 계기가 될까 봐 조심스러웠다.


현지에 있는 동료들에게 괜찮냐는 메시지를 보냈다. 보내기 전까지 많이 망설였다. 괜찮은지 아닌지를 안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며 도움도 못되면서 호들갑만 떠는 건 아닐까.. 동료들은 괜찮다는 메시지를 주기적으로 보내며 안심을 시켜주었다.


어제 오후 느지막이 긴급 미팅이 소집되었다. 사장님은 말했다. 물론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그들의 빈자리를 다 메꿀 순 없지만 우리는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회사를 잘 이끌어나가고 이후에 최대한 차질 없이 복귀할 수 있도록 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하자고 했다.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출신이 아니어도 동요된 사람들이 많았기에, 시기적절한 말이었다.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심한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거대한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우리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우리 팀원들이 같은 대륙 안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세대지만 난 그들의 소식을 들으며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했다.


그리고 삼일째 처음의 충격도 조금은 익숙해져 버렸다. 내가 회사를 가고 커피를 마시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를 하는 그저 일상을 보내는 동안… 같은 대륙 어딘가에선 공포에 떨며 지하철역에 대피하고 있는 사람들, 목숨을 걸고 경계를 살피고 있을 사람들이 있는데 말이다.. 불쑥 차오르는 이 생각들을 억누르며 난 내 일상을 지속한다.


그리고 팀원들에게 말했다. 어느 쪽의 편을 들겠다는 건 아니지만 (물론 우크라이나 편이지만) 기도하겠다고, 최대한 모두 안전하고 건강하게 그리고 마음을 굳건히 먹고 이 상황을 이겨내기를 아무 일 없이 이 사태가 어서 끝나기를 기도한다고.


무신론자인 내가 기도를 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말 간절한 마음이 드니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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