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역까지 10분 컷, 이 정도면 네덜란드에서 초역세권이다. 로테르담 역에서 기차를 타고 스키폴 공항 역에 내린다. 직행열차 여서 25분 정도 걸린다. 스키폴 공항에서 기차를 한번 갈아타고 암스테르담 자우드 (남) 역에 내리면 15분 정도. 오피스는 역 바로 앞이라 채 5분을 안 걷는다. 전부 합치면 대략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꽤 괜찮은 통근길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은 이 루트는 바로 최적화된 값이란 것이다. 이렇게 술술 흘러갈 때도 있지만 보통은 중간에 최소 한 가지는 삐그덕 대서 일정이 꼬이기 시작한다.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다리를 하나 건너야 한다. 그런데 이 다리는 큰 배가 지나가면 견인되어 올라가는 그 다리다! 그러면 다리를 건너야 하는 차, 트램, 행인 모두 발이 묶인다. 아무리 급해도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사실 다리가 오르내리는 시간은 5분 정도라 배가 지나갈 상황을 미리 고려해 5분 여유 있게 나오면 되지만….. 말은 쉽다. 현실은 늘 허겁지겁 기차 시간 15분 전에 나와 자전거에 겨우 오른다.
다리를 무사히 통과하면 보통 별일 없다. 자전거를 타고 냅다 달리면 되니 급하면 숨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두 번째 변수는 자전거 주차다. 역에 도착하면 자전거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기차를 타는데… 출퇴근 러시아워에 주차장이 꽉 차 있을 때도 많다. 그래도 역 출입구와 먼 곳에는 자리가 그래도 넉넉한 편이지만 그러면 입구까지 또 걸어가야 하니 시간이 걸린다. 그마저도 없으면 빙빙 돌면서 자리를 찾는데 이러다가 기차를 놓친 적도 여러 번이다. 자전거의 나라답게 자전거 관련 규칙이 엄격하다. 자전거 주차장에서도 정해진 자리 외에 주차를 해놓으면 경고를 받거나 철거될 수 있다.
자전거 주차까지 하고 나면 그다음 변수는 악명 높은 기차다. 5-10분 지연은 예사고 기차 고장이나 사고로 갑자기 기차가 전부 취소될 때도 있다. 물로 그러면 오피스에 안 가도 되는 아주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는 기쁨에 집으로 달려간다. 생각만으로도 뜨악스러운 경험은 기차를 이미 탔는데 중간에 안 갈 때다. 방송이 나오긴 하는데 잘 알아듣지 못해 뭔 소린지, 언제 다시 갈 건지 휴대폰만 본다.
그리고 첫 번째 기차가 지연되면 두 번째 기차도 아슬아슬해진다. 최적의 환승을 계산하고 나왔는데 스키폴 공항 역에서 10-15분를 기다리게 되면 최악이다. 아니다, 스키폴 공항까지 왔는데 거기서부터 기차 문제가 생겨서 공항에서 발이 묶이면 그게 최악이다. 그러면 어쩔 줄 모르는 방금 비행기에서 내린 관광객들과 함께 상황 스크린을 보며 그저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면 공항에 스타벅스도 있고 (더치 화 된 건지 5유로 커피는 사치란 생각이 들지만 이쯤 되면 스타벅스 한 잔 정도는 나를 위해 마셔준다) 편의 시설들이 다 있어 나쁘진 않다.
여차여차해서 암스테르담 자우드 역에 도착하면 매번 안도감이 든다. 최적화된 루트에 성공하면 나도 모르는 새에 들었던 긴장감이 수그러들고, 여러 변수를 이겨내고 도착하면… 무사히 오긴 왔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한국 특히 수도권에서 한 시간 출퇴근은 아마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 것이다. 그리고 주 2-3회만 오피스에 나가고 나머지 날은 재택근무를 하니 큰 부담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고 귀여운 크기의 네덜란드에서는 한 시간 걸려서 출근한다고 하면 안쓰러운 눈길을 보낸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살고 있는 로테르담에도 회사, 학교도 많고 기회는 많은데 이직할 생각은 없냐고 묻는다. 가끔 집에 오느라 두 시간씩 걸린 날이면 (출근길에 문제가 생기면 중간에 포기하고 집에 가도 되는데.. 퇴근길에 생긴 문제는 답이 없다..) 못해먹겠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출퇴근을 하는 시간은 왠지 모르게 내 머리와 마음에 휴식 시간을 준다. 어디로 이동하며 다른 일을 하기엔 제한적인 이 시간에 나는 집에 있었으면 아마 안 했을 무언가를 한다. 그냥 멍 때리고 창 밖만 바라볼 때도 있고 이북을 미리 다운로드하여놓고 읽을 때도 있고, 브런치에 쓸 글을 끼적일 때도 있다. 기차에서 도시와 도시 사이를 지날 때마다 펼쳐지는 네덜란드의 끝없이 펼쳐진 초록색 평원을 보면 여기 산다는 게 실감이 난다. 별로 재미는 없는 풍경인데 보고 있으면 평화로운 인공적인 자연미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준다.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지인에게 밀린 안부를 보내 놓을 때도 있다. 집에 있으면 자꾸 청소할 게 눈에 보여 급 청소기를 돌린다거나 유튜브가 내 취향 저격의 영상을 피드에 띄어주어 안 볼 수 없게 만든다거나 이런 일이 다반사다. 그러니 이런 방해 요소 없이 그냥 이 순간에 집중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만원 기차만 아니라면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한껏 여유를 부리며 창밖을 본다. 그리고 이 생각 저 생각 떠오르는 대로 생각과 마음의 자유를 누린다.
저번 달엔 암스테르담 자우드 역 공사가 두 주간 있었다. 암스테르담 센트럴 역으로 가 지하철을 타고 자우드로 가면 총 30분은 더 걸린 거 같다. 피곤하고 불편했지만 예상치 못한 기쁨이 있었다. 평소에 암스테르담 시내에 자주 갈 일이 없다. 한국으로 치면 굳이 명동에 갈 일이 없는 느낌이랄까. 올해도 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그런데 강제로 센트럴 역까지 가야 해 지하철 역에 내렸을 때 거대한 크리스마스 조명이 날 반겨주었다. 익숙하게 지나가는 행인들 속에서 나 혼자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 사진을 찍었다.
어느새 12월, 크리스마스가 오고 있구나! 실감 나는, 예쁘게 불 켜진 조명과 암스테르담 밤거리에 내 30분을 기꺼이 양보했다. 뭐, 양보를 안 해도 역이 문 닫은 걸 어찌할 순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너그럽다. 코로나로 재택근무만 하던 작년 그 시절(!)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감을 잃었었는데, 세상 구경을 슬쩍하니 더 재밌나 보다. 기차에 사람이 별로 없어 여유를 부리며 호기롭게 적어본 출퇴근 이야기는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