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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와이안 May 29. 2024

다시 취향을 찾아서

소비의 즐거움보다 귀찮음을 느끼게 된 건 대체 언제부터일까. 가끔 옷을 사서 돌아와도 며칠을 그대로 둔 채 그 옷이 필요할 때에야 가까스로 꺼내 입는다. 검은옷, 흰옷, 카키색옷, 데님들. 옷은 점점 한정적이고, 화장품도 두세 가지를 충실히 바를 뿐 그 이상은 귀찮다. 집은 흰 바탕에 원목, 베이지, 주황 조명. 이제 더 사들이지 않아도 된다. 빈티지를 좋아했던 과거에 사들인 알록달록한 옷들은 다 조카에게 넘겨버렸다. 냉장고에는 몇 가지 과일과 양념 등이 전부다. 책장에 책은 더 늘지 않는다. 책을 읽는 날들도, 고르는 날들도 줄었다. 영화는 어떤가. 하루 두세 편씩 보다 못해 밤새 영화를 다섯 편이나 돌파했던 과거는 정말 먼 과거다. 이제 누가 그 영화를 봤냐 물으면 나왔었는지도 모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음악은 애플뮤직에 의존한다. 다행히 좋은 걸 잘 틀어준다. 주말에는 대부분 집 근처에 있다. 서울을 떠나 근교로 이사한 후 도시 산책이 줄었다. 사무실이 있는 망원동 주변이나 어슬렁댈 뿐 그마저도 가는 곳만 간다. 만나던 사람만 만난다. 안정에 갇혀 있다.


다시 취향을 찾기로 했다. 물론 기본 취향은 있다. 산 세월이 짧지 않다. 우선 책을 읽기로 했다. 일상적으로 글을 다루는 직업이라 텍스트에 질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책은 신선하다. 사람의 보편적 속마음, 그 섬세한 묘사들이 마음을 위로한다. 주말에는 귀찮아도 어딘가 길을 나선다. 물론 혼자는 아니다. 이리저리 혼자 다니던 때의 감성을 찾고 싶지만 운전이 어렵다. 무엇보다 이제 혼자가 그리 좋지만은 않다. 영화도 일주일에 한 편이면 될까. 사실 이제 영화 보기를 선뜻 선택하기가 힘들다. 온전히 집중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하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난 영영 영화로부터 도태되겠지. 옷도 다른 스타일을 사보자. 옷장에 이미 있을 것 같은 옷들은 가급적 손을 대지 말자고 결심한다. 그리고 사람. 사람이 문제다. 이전에는 가만히 있어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이제는 어디서 누구를 만나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독서모임에 나가야 하나. 독서모임은 어디로 가야 하나. 찾아보니 많은 것이 유료화 됐고, 접근이 쉽지 않다. 그렇게 해서까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인가 나란 사람. 다년간의 프리랜서 생활이 가져다 준 결과인가.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아무튼 나는 다시 취향을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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