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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히치하이커 May 17. 2022

Pierre Blanche - Ego (22.5.4)

인디음악 쌈마이 리뷰


 이정현과 채정안이 들고 나왔던 테크노라는 음악은 세기말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 라면스프마냥 자극적인 소스가 되어주었고 대중들은 그것이 테크노의 전부라 인식하며 요란스레 향유했지만 얼마 안 가 짧은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겉핥기식의 말초적인 대유행 이후로 을씨년스럽게 낙진만 날리는 이곳에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콘솔 깎는 노인의 마음으로 테크노 씬을 지탱하는 이들이 있다. 그 장인들의 이름을 대보라면 아마 세 손가락 안에 피에르 블랑쉐의 이름이 나올 것이다.


 앨범은 콘크리트 위에 우직하게 자란 나무의 뿌리처럼 테크노를 향해 직선으로 나아가며 주변 구조물들에 탐욕스럽게 뿌리를 펼치고 점차 융화되어 하나의 오브제로 완성된다. 먼저 하드코어, 미니멀, 유로, 테크하우스 등 테크노의 하위 장르들을 모두 꿰뚫는다. 'Build A Fire Inside' 나 'Infinite Circle' 에선 원래부터의 장기였던 유려한 코드 진행과 멜로디라인을 극대화하고 보컬까지 투입해 팝의 토양을 파고들며 'D'나 'Log'에선 피아노가 무대 중앙에서 핀 조명을 받고 있는 앰비언트의 공터마저 집어삼킨다.


 심지어 'Prime Step'과 'Commencement'에서는 테크노의 상징과도 같은 4/4박 비트를 잠시 내려놓고 브레이크 비트까지 낚아채오며 테크노에만 갇혀있는 것조차 거부한다. 하지만 장인은 장비 탓을 하지 않듯, 이모든 시도들이 있음에도 최후에 보이는 것은 한 단계 진화한 테크노를 만들어낸, 경지에 이른 장인의 모습이다. 장르의 정통성도, 대중과의 접점도, 그리고 그 이상의 확장까지 모두 품겠다는 그들의 야망은 촘촘한 불법 어망처럼 탐욕스럽게 펼쳐졌고 만선을 이뤘다.


 피에르블랑쉐의 자아는 이번 앨범을 통해서 확고해짐과 동시에 광대하게 폭발하는 빅뱅이 되어 무한히 확장을 시작했다. 그들의 빅뱅 후 생겨난 창백한 청록빛 우주에서도 여전히 4/4박자 중심의 비트는 쿵쿵 울려퍼지며 우리를 무아지경으로 이끌 것이다.


↓↓↓ Pierre Blanche - Ego ↓↓↓

https://youtu.be/uO4f-0YlZ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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