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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우주나 Aug 06. 2019

개인과 시대정신

다큐 <김복동>

 헤겔은 전쟁에 나서는 나폴레옹을 보며 살아 있는 시대정신이라 칭했다. 여기서 시대정신이란 시대를 대표하는 정신적 태도 혹은 관념을 의미한다. 헤겔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열망을 유럽 전역에 펼치던 나폴레옹을 보고서 당대의 변화하는 역사를 짚어낸 것이다. - 물론 나폴레옹의 왕정 복귀는 자신의 시대정신을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 그러나 모순적으로, 이처럼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개인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시대정신의 보편적인 성질, 즉 널리 받아들여지는 관념이라는 성질에도 불구하고, 시대정신은 아직 오지 않은 시대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한 개인의 시대정신에 대해 다룬다. <김복동>이 경험한 역사, '생생한 증거', 그리고 그가 이루어낸 것에 대해 다룬다. 오랜 시간을 축약해놓은 일대기로써 <김복동>은 인물의 상황과 변화에 따라 곳곳에서 그의 모습을 찍어 낸다. 그 모습은 나에게 대답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수많은 영상에서 김복동은 자신의 이야기를 내뱉는다. 김복동은 언제나 질문을 받고, 이에 대해 '한 말씀'을 한다. 그러므로 이 다큐멘터리는 김복동 개인의 역사에 관한 기록이다. 그의 수기를 엿보듯, 이 영상은 김복동의 역사를 추적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인권 운동가로서 김복동의 삶을 기록한다.

 그러나 인간 김복동의 삶은 축소되고 때로 보이지 않는다. 이 영상은 오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 운동가인 김복동의 삶을 기록한다. 위안부 피해자 증언으로 시작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문제의식을 분산시키지 않고 하나로 집중한다. 그렇게 축약된 김복동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일종의 인간 승리를 맛본다. 그 냉담한 벽 앞에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그 용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피해자에게 자신의 상처를 복기하는 것만큼 피하고 싶은 일은 없을 것이다. 김복동은 수십 번, 혹은 수백 번으로 이어지는 증언을 끝없이 이루어 낸다. 그는 매번 고통에 직면하면서, 자신이 '생생한 증거'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김복동이 인권 운동가로서 활동하며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이후에 일어날 수 있는 부당한 억압을 근절하는 것이다. 누구도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김복동을 움직이게 했다. 부조리하여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린 꼬리표를 김복동은 받아들인다. 그는 이 꼬리표를 완수해야 할 자신의 과업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삶을 이루어 나가는 김복동의 행적은 아픈 현대사를 다시 고쳐 쓰고 있다. 김복동이 자신의 삶을 통해 시대정신을 이루어내고 있다. 

 악한 행동에 맞서는 것은 악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루어질 때 선함으로 나아간다. 복수에는 어떤 깊은 고민도 결도 없다. <김복동>이 나아가는 길은 고고하다. 위안부 피해자로서 겪은 고통을 직면하는 김복동은 그 고통을 극복하고 더욱 성장한다. 그렇게 인권 운동가 김복동이 탄생한다. 김복동은 자신의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자신과 같이 상처받은 모든 이들을 위한 치유를 이어 나간다. 정기 수요 집회에 이어 미국, 독일, 일본으로 이어지는 그의 의지는 어떤 걸림돌도 이겨낼 만큼 굳건해 보인다. 자신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는, 자신이 아니면 잊힐지도 모른다는 책임감은 수행되어야 할 시대정신으로서 주어진다. 김복동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거부할 수 없는 문제를 남긴다. '이 시대의 물결에 대해 동참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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