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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우주나 May 03. 2017

아직 어린 40대 남자의 전환기

영화 리뷰 [오버 더 펜스]

*해석은 개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불량한 학생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런데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펴보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아저씨와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교복이 아닌 작업복이다. 학교 종소리가 들린다. 쉬는 시간이 끝나가는 고등학생처럼,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방향을 찾아간다. 목수에 대한 수업이 진행된다. 모두가 같은 일을 하고 누군가는 감시하며 때론 구박한다. '직업훈련학교'라는 명패를 지나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나간다.

  앞의 문단은 영화 <오버 더 펜스>에서 앞부분의 장면들에 대한 글이다. 40대인 주인공 시라이와는 마치 고등학생 같다. 그가 다니고 있는 직업훈련학교에서 동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훈련을 받는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시답잖은 여자 이야기다. 그토록 사소한 '평범함'이 시라이와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시라이와는 아내와 이혼했다. 그리고 직업훈련학교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연히, 사토시를 만난다. 시라이와는 사토시와 점점 관계가 깊어진다. 영화는 이들의 관계의 흐름을 짚어나간다.

 '오버 더 펜스'가 의미하는 것은 명확하기도 하면서 다중적이다. 이는 마지막에 시라이와가 친(것 같은) 홈런을 의미한다. 동시에 홈런처럼 울타리 밖으로 넘어간 시라이와의 모습을 비유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영화의 중후반쯤, 감독은 꽤 직설적으로 시라이와의 모습을 비춘다. 철창 속에 갇힌 새와 시라이와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준다. 사토시의 눈에 비친 시라이와와 흰머리수리는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반면 사토시는 날아오르길 염원하는 새다.

 사토시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는 어디서나 타조 흉내를 내기도 하고 백조의 구애를 따라 하기도 한다. 또한 사토시는 적극적으로 시라이와에게 다가서기도 한다. 시라이와와 유원지를 거닐던 사토시는 흰머리수리의 구애를 환희에 가득 차서 설명한다. 그 구애의 방식이 마치 그의 꿈처럼 느껴질 만큼 말이다. 그리고 비현실적인 장면이 이어진다. 새하얀 깃털들이 사토시와 시라이와에게로 떨어진다. 둘은 모종의 축복에 휩싸인다. 그리고 사토시는 끊임없이 시라이와에게 구애의 '날갯짓'을 보낸다. 술집에서 두 사람은 수리의 구애를 따라 하는 듯한 춤을 춘다. 아름다운 구애의 장면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 장면은 어딘가 슬프다.

*주의 : 아래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이나 주요대사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슬픔의 이유는 특이점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는 종종 기괴한 특이점을 만들어 나간다. 이는 시라이와에게 고민이 던져질 때 나오는 굉음과 사토시의 '독특한' 행동들이다. 시라이와의 입장에서, 사토시의 행동들은 '상식 밖'이다. '평범'하게 살아온 그의 삶에서 보는 사토시의 삶은 온갖 '독특함'으로 가득 차 있다. 이 '평범함'은 시라이와의 울타리다. 그리고 사토시는 울타리 밖에서 시라이와에게 구애를 하며 나오라고 울부짖는 새다. 유원지에서 대부분의 동물이 도망치지만,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던 건 철창 속의 흰머리수리였다. 사토시는 그 새에게 나오라고 울부짖지만 새는 꿈적도 하지 않는다.

 새가 꿈적도 하지 않는 이유는 울타리 때문일까 아니면 새 자신 때문일까. 울타리가 너무도 거칠고 단단하여 그 주위로 '밀려난' 사람들을 상처주기 때문일까. 아니면 새 자신이 가진 익숙한 무력감과 자기 합리화 일까. 두 이유는 서로를 보완하며 사람들을 '평범함'의 늪으로 빠트린다. '평범함'은 '대다수가 그러함'이 되고 '대다수'를 무기로 아무렇게나 힘을 휘두른다. '평범함'의 기준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울타리로 내몰린다. 모리는 직업훈련학교의 교육 방식에 맞지 않는 사람이다. 교육관은 '평범하지' 않다는 이유로 모리를 멀리한다. 모리는 계속해서 상처받고 상처는 곪아서 터지고 만다.

 시라이와는 사토시의 구애를 통해 울타리를 발견하고, 상처받고, 울타리 너머를 보기 시작한다. 술, 술집, 전 아내, 가족, 학교까지 그를 둘러싼 환경을 새롭게 보고자 한다. 영화의 마지막, 소프트볼 경기에서 시라이와는 힘껏 방망이를 휘두른다. 그러나 과하게 힘만 들어간 방망이는 자신의 몸을 꼬아버린다. 마침 사토시가 경기장으로 들어선다. 시라이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방망이를 짧게 잡는다. 그가 친 공이 울타리 위를 훌쩍 넘어간다. 

 시라이와가 이제 막 넘기 시작한 울타리는 여러 측면을 담고 있다. 울타리 안에 담긴 '평범함'은 남성적일 수도, 권력적일 수도, 관습적일 수도 있다. 어떤 관점을 지향하는 것도 주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오버 더 펜스>가 보여주는 것은 울타리를 인지하고 넘어서는 노력이다. 시라이와는 홈런을 치고 이제 겨우 울타리 밖의 세상을 보았다. 앞으로 그가 울타리 밖으로 나가서 겪을 경험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시라이와와 울타리를 넘어서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울타리 안의 거대한 도약이 울타리 밖의 한낱 점이 되지는 않기를 바라며.




본 리뷰는 아트나인 카페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cafe.naver.com/minitheaterartnine/5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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