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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호현 Mar 17. 2020

'종이의 신' 서평

사람들은 왜 ASMR, 먹방, 실험 영상, 액괴 등의 영상을 찾아보는 걸까? 사람은 물질 속에서 사는 감각의 동물이므로 태생적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감각적 물질 경험이 있을 텐데, 점점 스크린과 도시에 갇혀 충분히 접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그 지점을 대리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일종의 ‘요즘 먹히는 콘텐츠’ 이지 않을까 싶다. 앞서 말한 먹방, ASMR은 물론 Satisfying, 공장 제조 영상 같은 매우 감각적인 영상들 포함해서. 특히 1인 미디어의 엄청난 발달로 내가 해보지 못한 것,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알게 될 때 생기는 상대적인 결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러한 결여는 대리만족이라는 키워드로 표현되는데, 몰래카메라 영상, 반응 보기, 관찰 카메라 같은 심리적인 것부터 채집, 수렵, 제작 같은 물질적인 것을 가리지 않는다. 


다시 물질로 범위를 좀 좁혀서 시각이나 청각으로 대리 만족하고 있는 ‘재질 감수성’의 부족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그리고 이게 충족됐을 때 사람들은 어떤 만족감을 느낄까? 감수성이 ‘차이를 구분하는 능력’이라고 지원님이 말했었고, 나는 특히 와 닿았는데, 마찬가지로 재질 감수성은 재질 간의 차이를 구분하는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직접 겪어보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이 겪어본 것들의 조합으로 상상하고 유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험해보지 못한, 겪어보지 못한 재질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상상력을 만드는 토대가 부족해진다. 


여러 가지 상상력 중에서도 재질 상상력이 주는 특이한 효과는 단연코 따스한 감성이 아닐까 싶다. 촉감은 마음에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재질을 경험해보는 것의 이점은 특유의 해상도에 있다. 아무리 스크린이 발전하여 밝고 선명하게 표현한다고 해도, 종이에 직접 잉크가 물든, 그 펄프 하나하나 결이 보일듯한 거친 종이의 정확함과 선명도에는 절대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질감을 손으로 직접 만지고 체험해본다는 건 머리로 상상하는 재질과는 천지차이다. 내가 따스함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의 발달과 맞물려 생각해보건대, 우리가 스마트폰을 처음 접했을 때 아이콘이나 버튼의 디자인은 현실에 있는 것을 그대로 베껴온 듯한 구체적이고 실감 나는 것들이었다.(아이폰 3의 앱 아이콘 디자인을 생각해보자) 스크린이라는 인터페이스를 손으로 터치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질감을 많이 녹여냈다. 우리가 스크린 환경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그리고 기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표준 모델을 만들기 위해 이러한 질감을 하나둘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미니멀한 요즘의 UI로 정착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효율과 시장 확장 측면에서 굉장히 유리했다. 


하지만 장점만 있을까? 단점..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포던스(행동 유도), 넛지(실수 방지)가 더 어려워졌다. 맥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잘못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막고 고민 없이 선택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인데 최대한 간결하게, 그리고 단 하나만의 여지를 만들려고 한다. 반면 재질 같은 물질 감각을 더 많이 활용하는 경우 우리는 맥락 파악이 더 쉽고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도 처음부터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장점을 적절히 잘 섞어 활용하는 것이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와 사용자 경험의 숙제다.


종이의 신을 읽다가 이런 생각까지 펼쳐졌는지 웃기다가도, 이러한 점이 바로 질감의 잠재력이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메모할 거리가 떠올랐는데, 질감 상상력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감각적인 텍스트는 ‘왜 그렇게 했을까’를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만든다. 다양한 종이의 질감을 사랑하는 저자와 인터뷰이들은 하나같이 그들만의 스토리와 사연이 있었다. 재질 속에는 유추할 수 있는 틈이 있고 그 틈에 사연이 녹아들며, 받아보는 사람은 그 여지를 통해 귀여운 상상력을 더할 수 있다. 받아보는 순간 ‘그랬겠구나’ 하는 마음이 함께 전달된다는 것. ‘말로 하면 될걸 굳이’라는 지점도 참 매력적이다. 당연히 효율적으로 전화나 이메일로 말할 수 있지. 우리가 손편지를 왜 쓰는가? 좋은 종이를 골라 틀릴까 고심하며 눌러쓴 편지가 주는 귀엽고 사랑스러움을 생각해본다. 


재질 감수성이 주는 따스한 틈은 인간적인 상상력을 분명히 불러일으킨다. 반면 이러한 감촉의 틈이 사라질수록 우리는 떨어져 있는 타인에 대해 또렷한 음성과 선명한 인상을 얻겠지만 결국은 차가운 유리벽을 느낄 것이다. 어쩌면 쉽게 끊어내는,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IT 작업자로서 디지털 작업이 눈과 머리로 멀리서 매끈하게, 쿨한 방식이라면 아날로그 작업은 손과 마음으로 가까이서 하는 뜨거운 작업이다. 뭐가 더 낫다곤 할 수 없고 결국 넘나드는 유연함이야 말로 현명함이다. 글을 마무리 짓기 위해 끊었지만, 여전히 질감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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