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실험실 기록 #0
(2021. 07. 31)
나를 꺼내줘. 나를 더 적극적으로 발현시켜줘.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 나를 어떻게 좀 해줘 봐.
인생에 어떤 재미도 없던 6월. 아티스트 자아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 친구를 찔끔찔끔 끌어오거나 묻어두지 않고 열심히 키워서 앞으로 내 삶의 가장 큰 미션에 합쳐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렇게 선명하게 감지할 수는 있어도 깨우기는 정말 어려웠다. 일단 방법을 잘 몰랐다. 어떻게 꺼내는 거지. 그때 윤슬이 <아티스트 웨이>를 추천해줬다. 음악 하는 친구의 말인 데다 창조성 회복이 목표인 책이라 바로 구매했다.
처음 2주 반은 설레는 마음으로 혼자 시도했다. 아침마다 적는 모닝 페이지는 어느 정도 지켜서 할 수 있었지만, 작가가 주 차별로 정해준 과제를 하는 건 정말 어려웠다. 잠깐의 짬만 내면 되는데 자꾸 미루고 핑계를 댔다. 홈트가 실패하는 이유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어려워서인 것처럼, <아티스트 웨이>를 뒷전으로 만들 이유는 무궁무진했다.
한편 잠이 덜 깬 반-의식 상태에서 줄줄 써 내려가는 모닝 페이지는 내가 두려워하는 마음이나 인정하기 싫은 마음을 자꾸 직면하게 했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노트에 쓰는 단순한 활동인데도 '내가 이런 말을 써도 되나?' 싶은 죄책감이 드는 날도 있었다. 회피하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티스트 자아를 정말 깨우고 싶었다. 멈칫거리다가도 다시 연필을 고쳐 쥘 때마다 강렬한 의지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이걸 꼭 해야겠다. 누가 봐주고 함께 해준다면 더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선 사람들을 모았다.
마음을 정하니 어떤 모임이 되어야 할지, 어떻게 운영할지가 단번에 정해졌다. 쏟아지는 생각을 정리하며 노션으로 소개 페이지를 공들여 만들었다. 썸네일에 있는 포스터를 만들 때에도 딱 맞는 폰트를 찾으려고 2시간을 썼다. 새벽의 중간에 뿌듯함과 함께 잠들었다. 무언가 시작된다는 기대감에 오랜만에 설렜다.
기본 구성은 이렇다:
- 창조성을 깨우고, 발견하고, 회복하고, 기르기 위해
- 매일 스스로 <아티스트 웨이>의 과제를 수행하고
- 매주 한 번, 두 시간 정도 줌으로 만나는
- 12주 모임
활동 인증을 어떻게 할지, 얼마나 느슨하게/타이트하게 모일지, 몇 명이나 함께 할지는 정말 빨리 정했지만 모임의 이름을 짓는 데는 많은 시간이 들었다. 밤새 자면서도 이름 고민을 하다가 일어났는데, 씨앗 실험실이라는 이름이 번뜩 떠올랐다. 잠자는 시간까지 더하면 거의 12시간 만이었다.
'씨앗... 씨앗.. 실험실...?'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딱 맞는 이름이 떠올랐나 생각해보니, 이미 그전에 무수한 생각들을 지나고 단어를 찾고 파고들고 연결점을 건너뛰어 다니면서 찾게 됐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뭐든지 한 번에 되는 건 없고 차곡차곡 쌓여있다가 그게 단숨에 튀어나오게 되는 거다. 그런데 뭐든지 한 번에 되는 것처럼, 되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니까 자꾸 괴롭고 못하는 거지. 이런 발견도!)
씨앗 실험실에서는 '창조성'이라는 씨앗을 탐구한다. 나의 창조성을 발견한다는 것은 나의 고유한 무언가를 찾는 것이고, 고유함은 원래부터 가지고 있어 특유하다는 뜻이니 창조성은 곧 나의 '씨앗'일 것이다. 내 씨앗이 어떤 모양으로 싹을 틔울지, 어떤 방식으로 기르면 잘 클지 이리저리 연구해보자는 의미에서 '실험실'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연구소'나 '연구실'도 붙여봤지만, 실험실만큼 자유로운 느낌이 아니어서 탈락했다. 실험실에서는 연구소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고, 망해도 되고, 이상해도 되니까. 물리적인 공간을 떠올리기에도 실험실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존재감을 빌어 나의 여정을 잘 끝내고 싶어 하듯이, 씨앗 실험실의 '연구원'으로 참여하는 분들 역시 각자의 여정을 떠나면서도 그 길을 함께 걷고 있다는 감각을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로에게 많이 관여하지 않아도 과제를 해내는 것은 조금 더 수월할 테고, 응원을 받으면 기분이 좋으니까.
내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을 뿐인데 하루 만에 13명이 모였다. 노션 페이지를 공들여 쓰기도 했고, 해리님의 리그램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처음에는 6명 정도가 모여 와글와글 이야기하는 모임을 구상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커져서 기쁘면서도 약간 난감했다. 내가 모르는 분들도 계신데 괜찮을까? 규모가 커진 만큼 내 역할이 더 커져야 하는 걸까?
어떤 모임을 꾸릴 때 퍼실리테이터 1명이 감당할 수 있는 구성원의 수는 최대 12명 이내라고 한다. 사실 나는 늘 모임을 만들어 왔고, 참여자로서의 경험도 많으니 크게 무리가 되는 모임은 아니었다. 다만 모임의 규모가 커질 때마다 구성원의 참여도는 뚝뚝 떨어지게 마련이라 다들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해줄지 걱정되었다. 12주에 가까워질수록 나만 이 모임에 참석하게 될까 봐 벌써 두렵고 외로운 마음도 들었다.
코치나 선생님 역할을 하지 않기로 했으면서도, 사람들이 모이니 나도 모르게 이분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주고/받는 상황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나치게 연구원들을 통제할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즐겁기 위해 씨앗 실험실을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로 했다. '모임'을 '잘' 하려고 씨앗 실험실을 만든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내가 즐겁고, 함께 즐겁기 위해 만든 모임이니 '스트레스야!'라는 생각이 들 때 얼른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기로 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 모임이 나의 지평을 넓혀줄 거라는 예감에 좀 더 설레기도 했다.
씨앗 실험실을 통해 처음 만나는 분들과 원래 내 친구들이 모여있어 다섯 살 시절이 생각났다. 하루 한 번이라도 놀이터에 가지 않으면 발바닥에 가시가 돋치던 우주 어린이는 놀이터에 가면 모르는 친구들이랑도 곧잘 놀았으니까. 나도, 연구원들도 그때처럼 늘 즐거웁기를 바란다. '함께'를 선택한 씨앗 실험실 연구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