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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Feb 14. 2022

꽃으로 아이를 울리고 말았네

작은 것들도 작은 마음도 함부로 여겨지 말아야지


연보라색  한 단을 샀다.

매일 줄기를 조금씩 잘라가며 꽤 오래 보았다.

지칠 때 꽃을 보고 향을 맡으면 힘이 조금 났다.

  안 되게 키가 작아지자 낮은 찻주전자에 꽂아두고 물 갈아주기를 그만두었다.

하루이틀 적당히 시들면 버리려 했는데

사나흘을 그 모습 그대로였다.


매일 아침, 잠이 덜 깬 송이를 안고 집을 한 바퀴 돌며

덩치 큰 인형들, 몇 안 되는 화분들과 인사를 시킨다.

  곰돌이도 잘 잤니? 나무야, 밤에 춥지 않았니?

꽃이 있으니 꽃에게빼놓지 않고 인사를 건넸다.

  오늘도 귀엽네. 오늘은 향기가 더 좋다.

그럼 송이는 무심한 얼굴로 꽃송이를 몇 개 쥐었다 놓을뿐, 별다른 흥미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설거지를 하려는데 유난히 보채길래 쥐어줄 놀거릴 찾다, 이제 색이 바래기 시작한 소국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버리자 싶어, 버리기 전에 맘껏 쥐고 뜯고 놀으라고 커다란 볼에 휙 쏟아 담아서 건네는데...

아기가 뒷걸음질을 친다. 표정이 굳는다.

  안 갖고 놀아? 이렇게 보니 무서워? 알았어.

울까봐 얼른 비닐봉투에 담아 쓰레기통에 넣는데, 갑자기 찢어지게 소릴 지른다.

쓰레기통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 뚜껑 열고 봉투를 다시 꺼내기까지 하며 어쩔줄을 몰라한다.

  갖고 놀 거야? 알았어알았어.

허둥지둥 봉투에서 구겨진 꽃들을 꺼내니 이번엔 대성통곡을 한다.

당황해 안으려는 내 어깨를 밀치고

가슴팍을 퍽퍽 두들긴다.


말 못하는 아이의 눈에 그렁그렁 말이 담겼다.


"엄만 너무해. 너무했어."


그제야 아차 싶었다.

할 일에 쫓기고 울리지 않기에만 급급해

아이 감정을 헤아리는  잊었다.

아마도 송이 눈엔 꽃을 함부로 다루는 내 행동이 굉장히 폭력적으로 느껴졌나 보다.

무심해 보였지만 며칠 눈에 담고 손으로 쓸며

그 작고 보드라운 꽃잎들에 마음을 줬었나보다. 

울음끝이 어느 때보다 길다.

상처받았구나, 엄마 때문에.

관심 돌릴 만한 거릴 겨우 찾아내 울음을 멈췄다.

진땀이 마르고 나니 한숨이 나왔다.

아이고. 어쩜 이리 무심한 엄마인지.

우는 아이 앞에선 늘 죄인이 되지만,

이번엔 미안함보다 부끄러움이 더 컸다.

말린 꽃을 집에 두긴 싫어 절화는 시들면 미련없이 버리곤 했지만, 버릴 때 버리더라도 이렇게 막, 함부로 할 건 아닌데...


송이를 가졌을 때 운동 삼아 집 뒷산 공원을 열심히 걸었었는데, 그때 참 신기한 경험을 했더랬다.

평소 별 관심 없던 산책하는 강아지들, 털이 거친 길고양이들, 아기 참새, 심지어 개미까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 귀여워보였던 것이다.

아이를 품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살아있는 것들이 모두 신기하고, 귀하고, 소중했다.


그때 그 기분을 다시 꺼내 봐야지.

아등바등 쫓기듯 보내는 하루하루지만,

뭐든 너무 함부로 대하거나 보내버리지는 말아야겠다.


아기에게 매번 좋은 걸 주진 못해도

실수로든 어쩔  없어서든 아이를 울리는 일은 여전히 매일 생겨도

무심히 상처주는 일은 다시 없도록.


아이가 마음 주는 곳을 나도 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더 다정한 손으로 매만져야겠다.

그럼 내 마음도 더 좋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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