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무려 4개월 만에 쓰는 브런치 글이라니.... 정신 없이 졸업 논문을 썼고, 디펜스를 통과했고, 졸업을 했으며, 한국에 왔다. 정해진 것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래서 사실 주위 사람들은 미국에서 OPT라도 받아서 남아 있다가 한국에 취직이 되면 귀국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이야기해 주었지만..... 지난 1년여간 논문에만 몰두하느라 정신적으로 많이 약해져 있었던 내게는 그 말이 고문처럼 들렸다. 연구만 생각하면 미국이 당연히 좋지만 (게다가 모든 게 점수로 환산되어 논문 수가 많지 않으면 지원조차 되지 않는 한국 학계 상황을 생각했을 때 미국에서 연구원이라도 하다가 업적을 좀 쌓고 귀국하는 편이 미래를 위해서는 좋아 보였지만) 졸업 당시의 나는 이미 너무나 쇠약해져 있었고 지쳐 있어서, 커리어고 뭐고 미국에 좀만 더 오래 있다가는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돌아왔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채 무턱대고 귀국한 나는 지금, 다른 이유로 힘들어하고 있다.
강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이미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상당수는 왜 힘든지 짐작이 될 것이다. 계약직 근로자 신세가 된 것이다. 힘들 것이라 예상했다. 그렇지만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
일단 주위에 나랑 같이 졸업해서 귀국한 다른 한국인 친구들이 귀국과 동시에 다 전임 교원으로 임용됐다. 물론 나와 전공도 다르고 연구 분야도 다르니 비교하기 어려운 면은 있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바로 교수가 되어 연구실도 있고 학회에 키노트 스피커로 불려다니고 있다. 그런데 나는... 강사로 임용되어 강의를 나가지만, 내 연구실도 없고, 수입도 당연히 적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이 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막 해외 저널에 논문을 내고 있고 리뷰가 시작되었으니 빨라도 1년 정도는 당장 손에 쥐는 결과물이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온라인 출간도 쳐주지 않으므로 오프라인 출간되어 페이지 넘버가 매겨질 때까지는 어디 가서 논문 퍼블리시 됐다고 말할 수도 없는 처지다.
게다가 오늘은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강사로 근무 중인 학교 중 한 곳이 모교인데, 그곳에 계신 교수님과 식사를 하다가 내 한국 지도교수님이 마지막에 퇴임하시면서 안 좋게 하고 나가시는 바람에 악의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나? 그래서 그 분의 제자인 나를 이번에 뽑을 때도 반대한 분이 있었다고 하셨다. 세상에, 내 가족도 아니고 지도교수님인데 요즘 세상에 연좌제라니.... 모교에서도 이렇게 환영 받지 못한다면 내가 대체 어느 학교에 가서 임용될 수 있단 말인가? 너무 충격 받고 기가 죽어서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정말 넋이 나간 사람처럼 터덜터덜 왔다.
약간의 환멸도 느껴진다. 내 지도교수님이 퇴임하신 지가 언제인데 (내가 유학 가기도 전에 퇴임하셨으니 벌써 근 10년은 됐을 것이다) 그 제자인 나를 뽑네 마네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얘기 들으며 살았다. 유학 가서도 정말 열심히 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왔는지 모르겠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한국에 귀국한 내게 돌아온 건 이런 얘기들 뿐이라니....
"어디 가서 지도교수 이름 얘기하지 마요. 임용되기 힘들어요"
가족이 너무 보고 싶었고, 점점 더 늙어 가시는 부모님과 더는 떨어져 사는 게 아니라는 판단이 섰을 때, 내 커리어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에 가야겠다고 결심했고, 당연히 그로 인해 내 커리어에 어느 정도 흠이 생길 거라는 건 예상했다. 그렇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OPT를 받아서라도 미국에 어떻게든 남아서 강사직이라도 할 걸 그랬나 싶다. 다른 곳에 지원한다 해도 reference check에서 모교로 연락이 갈 텐데, 지금 이 상황에서 한국에서 교수가 될 수 있겠냔 말이다. 이게 내가 동경하고 꿈꾸었던 학계란 말인가? 한국 학계는 다 이런가? 갑자기 모든 게 환멸이 느껴지고 허무하게 느껴져서 의욕이 사라진다. 열심히 살았는데 그 대가가 이거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