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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ar and dear Apr 16. 2024

동네친구

고향을 떠나 타지에 생활하면서 엄청난 향수병에 시달렸다. 

그래서 항상 맘 잘 맞는 동네 친구가 생기면 좋겠다, 싶었다.

내가 이 동네에 정을 좀 붙이고 살면 좋겠다, 싶어서 -

신혼집이 있던 인천은 남편이 출퇴근만 왕복 3시간이 걸려서 

칼 같은 퇴근을 해도 아이가 잠드는 8시쯤이 되어서야 남편이 돌아오곤 했다.

연고도 없고 친구도 없는 외롭고 낯선 곳에서의 육아는 정말 녹록지 않았다.

5층짜리 빌라였는데 우리 집은 딱 3층, 생활하기엔 괜찮았지만 

유모차를 필로티 구조의 주차장 자동차 트렁크에 보관해야 했다.

주 1-2회 지하철과 유모차를 태우고 문화센터를 다녀오긴 했지만

아이는 적극적이고 화려한 퍼포먼스의 문화센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밖에선 잘 먹지도 자지도 않는 아이를 아기띠에 데리고 다니며

친구를 사귀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둘째 아이가 생기고 배가 나오면서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가 곤욕이었다.

어떻게든 출산 전에 아파트로, 남편 회사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친정인 광주에 바로 갈 수 있는 ktx가 다니고 있는 지하철역도 큰 장점이었고,

구옥인 아파트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매물도 많고 가격도 적당했다. 

역과 최대한 가까운 단지에서 조건을 맞춰 몇 집을 봤는데 2번째였나, 3번째였나

마음에 꼭 드는 집이 있었다. 일단 깨끗하고 밝아서, 첫눈에 반했다. 

인기가 많은 매물이라 며칠 안에 확답을 줘야 한다고 해서 포기를 해야 하나, 했는데 

다행히 우리의 신혼집도 덜컥 계약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남편과 뚝딱뚝딱 고치고 꾸미고 추억도 많은 신혼집이었는데, 비하인드 스토리가 길었지만,

그렇게 둘째 아이 만삭에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했다. 

단지는 많지만, 어디 가도 북적이지 않고 도로도 한적하다. 

오래된 동네라 어르신들도 많으시고, 유해시설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아이 키우는 가족들이 많이 살고, 친구가 없어도 

여기저기 유모차를 끌고, 아기띠를 한 나와 같은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혼자이지만 혼자이지 않은 기분이 위로가 됐다. 

아이들이 기관에 가면서, 

하나 둘 인사하는 친구들이 생기고 

내가 나서지 않아도 아이들의 친구들이 생기면 엄마인 친구들도 생겼다. 

처음엔 함께 커피만 마셔주어도, 인사만 나눠 주어도 좋았는데 

나는 아이들이 기관에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수다를 많이 떨기엔 조금 피곤했고, 정보 공유를 하기엔 코드가 맞지 않았다. 

아이가 둘이다 보니 하나인 가족들과 친해지는데 애로사항도 꽤 있었다. 

세상이 내 맘 같지 않다는 건 매일 깨닫고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쉽지가 않았다. 

내가 적극적이지 못해 내 아이도 친구 사귈 기회가 줄어드나 싶지만,

아닌 척해서 노력해서 얻는 관계도 장담할 수 없고,

에너지를 조금 아끼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써야겠다는 결론이었다. 

함께 육아를 하는 친구들의 공감대가 소중하고 또 소중했지만,

나는 우리의 얘기도 하고 싶었다.

아이 음식, 아이 옷, 아이 교육도 중요하지만 

우린 뭘 좋아했는지, 뭐가 먹고 싶은지 

우리가 좋아하던 스타일은 무엇인지, 읽고 싶은 책은 무엇인지,

배우고 싶은 게 있는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나에겐 동지보다 돌파구가 필요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조금 외롭고 심심하지만 주어진 에너지를 지키는 방법을 택했다.

종종 도서관에 가고, 좋아하는 재봉틀 수업을 듣고,

동네 친구는 아니라 1년에 몇 번 못 보는 친구들과 아주 가끔 전시도 보고, 수다도 떨었다. 

신데렐라처럼 하원 시간이 되면 뒤돌아 와야 하지만, 그 또한 이해해 주는 그녀들과 -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나면, 동네 카페 중 유일하게 오픈해 있는 스타벅스로 향한다. 

요즘은 피스타치오 크림 콜드브루를 주로 주문하고,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집으로 돌아가면 분명 눈앞에 집안일들을 가만 두고 볼 수가 없을 게 뻔해서

일부러 바로 들어가지 않는 걸 택한다. 종종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날 애쓰지 않아도 유난히 동선이 겹치는 사람이 있었다.

너무 자주 마주쳐서 분명 서로 아는데, 인사를 해야 하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사람.

나만큼 놀라지만 조심스러워하는 행동이 눈에 읽히는 사람. 

그러다 우연히 책을 읽고 계시는 걸 자주 봤다며, 

밥 한 번 먹고 싶었는데 말 걸기 조심스러워 이제 인사한다고 말을 걸어주셨다.

초면인데 익숙한 사람, 게다가 아이가 둘째와 같은 유치원에 입학했다. 

적당히 마음을 열고 닫는 법이 미숙한 사람이라,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아이 엄마가 아닌 나를 봐주어, 너무 반가웠다. 

출판사에 다니신다고 했고, 나처럼 가끔 전시를 보러 가는 멤버가 있다고 하셨다.

이렇게 비슷해도 되나 싶게 취향도 비슷했다. 

그날 밤 아이들을 앉혀놓고, 

"너희들은 유치원에 가면 친구가 많~잖아, 엄마도 오늘 친구가 생겼어!"

 라고 하니 그게 뭐 대수냐는 표정으로 "축하해" 해준다.

고마워, 축하해 줘서, 엄마 오늘 정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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