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과장님은 약간 처진 눈매에 푸근한 인상을 가진 분이었다. 마냥 서글서글해 보이진 않으셨는데 지내보니 빙긋빙긋 잘 웃으시고 시덥잖더라도 직원들에게 이런저런 농을 건네고 다니셨다. 편하게 해 주려고 그러신 거였다.
과장님은 잔심부름 하나를 부하직원 불러다 시키는 일이 없으셨다. 6급 선배들이 과장님을 '보필'하려고 들면 어지간한 것들은 거절하셨다. 노조위원장을 지내신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MZ세대 직원의 출근시간'을 두고 왈가왈부가 요란할 때 출근은 시청 건물에 들어선 시점이 9시면 되는 것으로 보자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니 제도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지만 과장님 생각은 하여튼 그랬다. 과장님 자리에는 화분이 많았다. 아침 일찍 출근하면 그 화분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돌보고 계셨다. 직원이 돌보다 앓게 된 화분도 과장님 곁에서 활기를 찾았다.
과장님 자리에는 책이 분야의 구별 없이 꽂혀 있었다. 부서 업무 관련 간행물도 있고 정보기술도 있고 역사도 있고 그랬다. 책들의 주제는 두서없지만 키 맞추어 정리되어 있었고 과장님의 책상 위는 단정했다. 8시 무렵에 일찍 출근한 직원들이 커피를 나눠 마시면 회의 탁자에 모여 앉았는데, 과장님은 종종 거기 계셨다. 전날 '차이나는 클래스'에서 다룬 상하이의 역사를 거의 외운 듯이 이야기하시기도 했고 인사발표가 난 다음날이면 어떤 놈의 입김으로 누가 그렇게 되었는지를 줄줄 꿰고 나타나셨다. 상당한 정보력에 비해 다른 사람을 쥐고 흔드는 힘은 안 쓰시는지 못 쓰시는지 하여튼 안 하시는 분이었다. 조금은 괴팍하신 듯도 했다.
공무원은 호봉으로 먹고살고, 호봉은 승진이라도 해야 가끔 그럴싸하게 나아지고, 승진을 하려면 교육시간을 채워놓아야 하는데, 독서교육은 업무를 비우지 않고 교육시간을 채울 수 있어 인기가 좋은 편이다. 독서교육 공문이 뜨면 과장님은 그걸 신청하라고 알리고 다니셨다. 또한 우리 시의 복지제도 중에 도서 관련 서비스가 있는데, 종종 무료로 도서를 보내주는 이벤트가 열리기도 했다. 그 이벤트 공지가 나올 때면 과장님은 다시 온 부서를 누비면서 도서 신청을 하라고 하셨다. 짜친 업무 지시는 꺼내지도 않는 과장님께서 팀마다 들러 권하고 재촉하시는 무료도서 신청이란, 문서 작업에 몰두하는 입장에서는 그거야말로 짜치디 짜친 것이었건만, 과장님은 문서만이 채우고 있는 우리 모니터를 보며 왜 도서 신청을 않고 일만 하느냐고 하셨다. 때로는 도서 신청을 재촉하는 대신 과장님이 직접 직원들 앞으로 책을 일일이 신청해 주시기도 했다. 어쩌다 1층 택배실에 뭐가 왔다고 하면, 과장님이 각 직원들 앞으로 신청해 주신 책이었다. 우리 부서의 모두가 그렇게 책벼락을 맞곤 했다. 가끔 과장님은 그 책을 읽었느냐고 묻곤 하셨다. 나는 건방지게도 바빠서 못 읽는다고 답했다. 과장님은 정독이 어려우면 발췌독이라도 하라고 하셨고, 발췌독을 독서로 인정하지 않는 나는 과장님 말씀을 또 안 들었다. 그럼에도 책벼락은 몇 번 더 이어졌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모이 먹으려고 부리 벌리는 새들이 떠들듯이 직원들이 인사를 하기도 했지만, 나 외에도 책을 읽지 않고 고이 꽂아만 두는 사람은 많았다. 우리 부서 직원 거의 전부가 그랬을 것이다. 과장님은 무슨 책이건 일단 읽는 것을 권하셨다. 무료로 손에 쥐어진 책은 부동산, 소설, 자기 계발서, 인문교양서 등 다채로웠다. '그래서, 결국 어린 왕자는 누가 죽인 건지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는다'며 쥐어 줘도 책을 읽지 않는 부하직원들을 밉지 않게 책망하기도 하셨다. 업무에 관해서는 재촉도 닦달도 않으시는 분이 책 읽으라고는 그렇게까지 하셨다.
자꾸 독서를 권하고 다니시는 과장님은 그 유명한 '나무를 심은 사람' 같기도 했다. 독서의 맥이 말라붙은 우리 부서에, 책 읽기의 씨앗을 뿌리는 나그네, 임 과장님. 나야말로 독서를 그친 지 오래되어 책 안 읽는 나 자신이 부끄럽지도 않고 아무럴 것도 없는 건조한 상태였다. 과장님은 자꾸 이 건조한 사람에게 책을 뿌리고 읽으라고 물을 주고 그러셨다. 책을 읽는 것이 삶의 가장 큰 사치라는 말에 동의하는 바이긴 하나, 그때는 책 읽는 여유가 정말로 사치였는데, 과장님은 한결같으셨다.
육아휴직을 며칠 앞둔 날, 과장님과 우리 팀이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과장님은 돌아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휴직 인사 겸 선물이라며 책 한 권을 고르라고 하셨다. 어디서 본 적 있는 '아비투스'를 골랐고 과장님은 그대로 책을 사주셨다. 무료로 나눠주는 책을 과장님이 받아다 주시는 것과, 내가 고른 책을 과장님 카드로 결제해 주시는 건 차원이 다른 것이라, 덜컥 죄송해져 휴직 후 출산을 기다리면서 그 책을 읽었다.
너무 좋았다. 오랜만에 책 한 권을 읽었다는 성취감도 좋았고, 책의 내용도 흥미로웠다. 갑자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쨌거나 지금처럼 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읽지 아니하고 무기력하며 필요 이상으로 절망하는 생활, 그 생활을 덮은 얇고 질긴 어리석음의 막이 째지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독서의 보람과 앎의 기쁨이, 입덧 때 잃었던 입맛 돌아오듯이 돌아왔다. 뇌 속에 내가 알지만 오래도록 버려두었던 즐거운 쾌감이 돌아왔다. 나는 그 순간에 진심으로 임 과장님께 감사했다. 그분이 책에 지불하신 돈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과장님이 사막에 도토리 심듯, 콩나물이 클 때까지 물을 쏟아붓듯 그렇게 재촉을 하고 권유를 하던 시간이 나를 기어이 등 떠밀었던 것이다. 과장님은 성공했다. 최소한 한 명을 깨우치게 하셨으니.
과장님께 책을 다 읽었다는 인사 문자를, 진심으로 우러나는 감사를 담아 보냈다. 이윽고 받은 답장의 첫 문장은 '고마워유.'였다.
임 과장님 같은 어른을 나는 참 좋아한다. 그분 덕에 나는 읽지 않던 날들을 끊어냈다. 또 책을 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