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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그미 Aug 07. 2022

나의 자궁과 노동과 행정 이야기

나, 경력단절여성 1

나는 요즘 몹시 괴롭다. 삶은 늘 새로운 이유로 괴롭다. 그건 내가 삶을 느끼는 방식 때문이기도 하고, 나의 예민함을 '괴롭다'는 단어에게 몽땅 떠넘긴 채 예절바르고 차분하고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사는 시늉을 하는 것이 내 삶 자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긴 하지만 난 그래도 유익한 글을 쓰고 싶었다. 되도록이면 한 사람이라도 더 좋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 만한 글을. 그러나 그건 지나친 욕심인 것 같다. 일단 이 글 한 편부터 오늘 안에 마무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나는 정말 시간과 힘이 없다. 이루고 싶은 것은 많았다. 지금도 단념하지 못한 것이 많다. 그러나 나는 시간을 아껴 쓸 계획이 없다. 짬이 날 때 자신에게 준 숙제를 하나라도 해결하기 위해 착수하는 그 힘이 너무나 부족하다. 그리고 그저 널부러지기만 해도 너무 바빴고, 쉽게 시간이 흘렀다. 잠시 숨만 돌렸을 뿐인데, 30분, 40분, 50분!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다음 날 아침이다. 시간은 나를 채찍질한다. 분초를 쪼개어 씻고, 단장하고, 출근해라! 일해라! 퇴근해라! 가사노동을 하고, 가정의 화목을 위해 힘써라! 그리고 건강한 삶을 위해 충분히 숙면하라! 이 모든 명령이 자유의지보다는 쳇바퀴 위에 오른 직장인에게 기계적으로 주어지는 명령같다. 충분히 잠을 자라는 조언마저도 그렇게 느껴진다. 충분히 자고, 뇌를 회복해서, 다시 일하라! 일찍 자야 한다. 우리는 쉬어야 한다. 왜? 내일 출근할 거니까! 이것이 현대의 삶인가?진실로 그러한가?앞으로 나는 몇 년이나 이렇게 살아야 할까?

그런데 나는, 이런 생활을 하게 되기를 몹시 소망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나는 몸이 편하고 마음이 불편한 백수였다. 결혼에 즈음하여 짧게 다니던 회사를 떠나고, 아기를 낳아 기르는 삶을 상상하며 공무원 수험생활을 시작했다. 3년 동안 시험장을 들락거렸다. '출근하기 싫다'는 남편의 푸념에 매번 '좋겠다, 출근할 곳 있어서'라고 대꾸해 주곤 했다. 우리 가족 모두가 내 일하기를 바라고,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망을 이루었다. 이제 나는 '내일 출근하려면 우리 일찍 자야 해'라고 말하는 남편을 흘겨보며 '아니, 출근하기 싫어'라고 말한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 그렇게 울고불며 시험장을 드나들었고, 이런 삶을 살 수 있어서, 눈물나게 기뻐했다. 그래, 정말 감사한 일이다. 아!감사하다!

이 감사가 '진짜 감사'에서 '가짜 감사'가 되어버린 후 하루하루 업무에 임하는 내 마음은 매일 널을 뛴다. 어떨 때는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 내 업무를 성공으로 이끌고 싶다. 어떤 날은 무력감이 나를 사로잡는데, 그 사이에 밀려들어오는 서류를 보면서, 내 감정을 외면하고 나 자신을 피폐함에 던진 채, 조금 더 기계에 가까운 인간이 되기 위해 애쓴다. 어떤 날은 분노로 가득 차오르고, 누구의 얼굴도 보고 싶지 않고, 누구의 눈도 바라보고 싶지 않고, 누구의 이야기도 들어줄 수 없을 것 같다(그래도 전화를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있다. 내가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있고,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내 이야기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여성이다. 근로자다. 그리고 아직도 근무연수 일 년을 못 채운 신출내기 공무원이다. 지금은 경력단절여성에 관한 업무를 맡고 있다. 바로 내 과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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