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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교진 Apr 04. 2017

10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했다.

[열여덟번 째 책]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은 생각보다 많은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10살이나 차이 나는 나는 이 책을 읽고 과거를 회상했다.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쿵짝이 잘 맞는 친구를 만난 느낌이었다. 책 읽는 동안 작가와 그렇게 시간을 나눴다. 이 책은 정말 어느 연령대까지 품으며 공감대를 살 수 있을까.


그래, 나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래도 부디 2002년생들은 2012년생들은 이 책을 읽고 고리타분하다고 말하며 세대 차이를 한껏 느껴주기를 바란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82년생 김지영씨는 그 시대에 태어난 여아라면 누구나 하나씩은 갖고 있는 슬픈 탄생 설화를 갖고 태어난다. 아버지, 동생, 할머니 순으로 따뜻한 밥을 담고, 모양이 온전한 두부나 만두는 남동생 입으로 들어가는 집에서 자랐다. 우산이 두개면 자연스럽게 남동생이 하나를 차지하고, 나머지 하나는 언니와 김지영씨가 나눠서 썼다.


이 모든 양보와 배려는 동생이기 때문에 배려한 자의도 있었지만, 타의도 작용했음을 김지영씨는 시인한다. 특히 '감히 내 손자'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내뿜는 할머니가 결정적이었다. 어쩌다 한번 남동생에 대한 편애와 양보, 배려가 짜증이 나도 지영씨와 지영씨 언니는 참았다. 동생 잘 봐준다는 칭찬에 샘을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지영씨는 학교 가기 싫을 정도로 짝궁이 괴롭히는데 좋아서 그런 거라고 이해시키려는 선생님, 바바리맨을 놀려 먹었다가 여자애들이 창피한 줄 모른다며 혼내는 선생님 밑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쫓아오는 건 남자앤데 밤 늦게 멀리 학원을 다니는 지영씨 잘못을 따지는 아버지 말을 들으며 입시를 준비를 했다.


대학에는 남자라는 이유를 채용 추천의 이유로 당당하게 말하는 교수님과 성적이 더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남자 동기에게 채용 추천에서 밀렸던 여자 선배가 많았다. 사회에 나가서도 다르지 않았다. 일단 첫 손님으로 여자는 안 태우지만 특별히 당신만은 태운다는 택시 기사 아저씨의 말을 들으며 면접장으로 향했으니 말이다.



회사 화장실에 설치한 몰래 카메라로 따지고 들자 가정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까지 해야 하냐며 오히려 역정드는 직장을 다녔다. 그러다 출산과 육아 문제로 회사를 그만둔 김지영씨는 명문대에 홍보대행사에서 일했는데도 말을 잃기 전까지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다녔다.


김지영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고 믿었던 분이다. 제 공부 버리고 남자 형제들 뒷바라지 하는 게 가족 모두의 성공과 행복을 위한 거라고 믿으며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라도 오빠나 남동생들의 학비에 보탰다.



가족의 성공과 행복의 이름으로 하고 싶은 일을 그만두고, 좋은 학력과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출산 후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 생계에 보태려는 김지영씨의 삶이 김지영씨의 어머니의 삶과 비교해서 뚜렷하게 뭔가가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같은 여자로서 공감 가는 이야기이다. 나도 딸 부잣집 셋째 딸로 슬픈 탄생 설화가 있다. 연이은 아들 출산의 실패 중에 손발이 달린 구렁이 꿈에 할머니는 철썩같이 이번엔 아들이라고 믿었지만 결국 나였다. 첫째를 낳고, 둘째에 거는 희망과 둘째를 낳고 셋째에 거는 희망의 크기는 아무래도 달라서 아들 출산 실패에 따른 죄책감은 셋째, 넷째 순으로 이렇게 밑으로 갈수록 짙어졌다.       


주먹을 꽉 쥐고 손바닥과 손목의 경계를 힘껏 누르면 새알 같은 동그란 것들이 손목에서 튀어나온다. 그 새알 같은 것들이 몇 개가 튀어나오느냐가 나중에 커서 낳을 아들 수라며 서로 숫자를 세어 주고, 새알 같은 게 많은 친구를 은근히 부러워했던 교실에서 초등학교를 보냈다. 남중 애들이 가득 찬 버스에 탔다가 손들이 엉덩이를 스쳤다는 무수한 경험담에 버스를 여러 대 보내거나 걸어가는 일도 많았었다.     


대학 때 처음 일년은 선배들이 술자리에서 1학년 여자 신입생은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으면 안 된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 다음은 술은 여자가 따라야 맛있다는 농담에 안 웃어 아무 때나 웃어서 웃음이 헤프기로 유명한 나는 조용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여학생들 이력서 사진에 등급을 매긴 인사 담당자와 마주 앉아야 했던 일, 그런 류의 일을 당한 친구를 위로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이제 공중 화장실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살해를 당하는 사회에 나왔다. 82년생 김지영씨와 92년생의 나는 시차만 조금 있을 뿐 사실 대부분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  


머리만 좀 지끈거려도 쉽게 진통제를 삼키는 사람들이, 점 하나 뺄 때도 꼭 마취 연고를 바르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엄마들에게는 기꺼이 다 아프고, 다 힘들고, 죽을 것 같은 공포도 다 이겨 내라고 한다.    


김지영씨가 직장에서 회식을 할 때, 직장 상사는 김지영씨에게 괜찮다는데도 굳이 옆에 와서 앉으라는 둥, 술을 강권하는 둥, 얼굴 품평까지 하다 마지막에 자리를 나서면서 말한다.


내 딸이 요 앞 대학에 다니거든. 지금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이제 집에 간다고 무서우니까 데리러 오라네. 미안한데 나는 먼저 갈 테니까, 김지영 씨, 이거 다 마셔야 된다!


그리고 김지영씨는 당신이 나를 계속 이렇게 대하는 한 당신의 그 소중한 딸도 몇 년 후에 나처럼 될 지 몰른다고 속으로 생각한다.


엉뚱한 소리를 시작한 김지영씨를 상담하는 정신과 의사는 지영씨의 증상이 단순 산후우울증이나 육아우울증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김지영씨를 보고 자신보다 훨씬 뛰어남에도 아이 문제로 의사를 그만둬야 했던 아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내가 육아를 전담하면서 문제를 보이던 아이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병원 확장하는 일도 다 잘됐지만 아내는 이제 집에서 겨우 초등학생 수학 문제를 푼다. 자신보다 뛰어난 아내는 겨우 초등학생 문제집을 풀면서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게 이거 하나뿐이라면서 수학 문제집을 산처럼 쌓아놓고 푼다. 이를 지켜보면서 정신과 의사는 자신의 아내가 가진 재능을 아까워하며 이거보다 더 재미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아내가 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일 잘하는 여자 동료가 임신으로 일을 그만 둔다고 하자 정신과 의사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다른 사람은 어쩔 수 없는데, 내 딸은 안 그랬으면 좋겠어.

다른 여자는 되는데, 내 아내, 여자친구는 안돼.     


김지영씨 회사 상사와 정신과 의사의 태도에서 보이는 나는 안 되고 너는 된다는 식의 사고 방식은 결국 김지영씨의 목소리를 잃게 했다. 그리고 시간의 차이를 뛰어넘어 결국 92년생의 나까지 이 이야기에 공감하고,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나는 안 되고 너는 된다는 식의 사고 방식은 기본적으로 문제를 공감하려는 의지나 감정 공유의 폭을 좁힌다. 이런 사고 방식은 내 문제가 되어야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다는 태도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지점을 몇몇의 인물들로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아마 진짜 주인공은 이들일 수도 있겠다 싶다.


불쾌하고 위험한 말을 쏟아내다 자기 딸 밤길 위험하다고 사라지는 상사의 모습, 내 아내는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방금까지 생각하다 아내가 일을 그만뒀던 이유와 같은 이유로 일을 그만두는 일 잘 하는 동료를 보고는 미혼 후임을 고민하는 의사의 모습. 우리나라의 '성 감수성'이 얼마나 떨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이 인물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가 나와 너를 분리해서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모습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 책은 아마 어느 시대에 읽어도 공감을 살 수 있는 고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김지영씨의 목소리는 영영 돌아오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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