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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교진 May 13. 2017

익숙해졌으면 하는 '낯선 시선'

[열아홉 번째 책] 정희진의 '낯선 시선'

책이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 질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책을 관통하는 단일한 주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그곳에 다다르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나의 한국현대사>를 읽고, 좋은 역사책이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지극히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역사 해석에 불과하다고 불신을 갖고 책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표시할 수도 있다. 가타부타 평을 할 필요도 없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때로는 질문을 놓칠 때도 있다. 나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폭력의 폭력성, 폭력 거부의 메시지를 모두 놓쳤다. 그리고 오직 한 가지에만 집중했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형부와 처제 간의 부적절한 관계 설정이 꼭 필요했던 것인가? 메시지 전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소설 속 하나의 장치를 붙잡고 따지는 게 촌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렇게 책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는 읽는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를 것이다. 책 읽는 행위를 ‘대화’라는 상호작용적이고 필수적인 행위에 빗대어 표현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특정한 사람의 서평 글을 읽는다. 내가 임의로 정해 놓은 큐레이터와 같은 것인데, 그 사람이 책 소개에서 드러내는 메시지에 대한 해석, 생각 등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돼서 그 사람의 서평 글을 찾아 읽고, 책을 읽었다. 그 사람이 바로 정희진이다. 꽤 잘 통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낸 책이니, 이미 준비된 마음으로 그녀의 책을 집어 들었다. 역시나 대화가 잘 되는 사람이다.      




언뜻 진부해 보일 수 있는 책 제목이다. 낯선 시선이라.    


어려운 출판 시장에서 고전을 면하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2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첫 번째는 그동안의 책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를 담아내는 작가만의 문체다. 한마디로 다르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작가만이 갖고 있는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또 이를 개성 넘치는 필체로 담아내야만 책이 팔리는 (그래도 팔릴까 말까이지만) 출판 시장에서 ‘낯선 시선’이라는 제목은 사실상 모든 책들의 보이지 않는 부제다. 그러나 정희진의 책 제목만은 진부한 부제라고만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정말 본 적 없기 때문이다. <낯선 시선>은 경제, 사회, 문화, 정치적 사안에 대한 사회적 약자의 시선을 담고 있다. 그럼으로써 문제를 재정의, 재인식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개성은 존중하지만 인권은 억압한다(p84), 언어는 사전의 약속이 아니라 사회적 약속이다(p169), 분업은 역할 분담이 아니라 위계의 시작이다 (p214), 사실 보편성은, 쉽게 말해 강자의 특수성에 불과하다(p241), 좁은 것은 그들 삶이지 세상이 아니다(p281)와 같이 짧으면서도 강렬한 표현들. 새로운 시선에서 나온 나오는 새로운 언어다. 이만하면 ‘낯선’ 이라는 책 제목이 진부하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의 제목은 생존을 위한 절박함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낯선 시선>은 세상을 바라보는 낯선 시선, 이 시선을 표현하는 언어와 말로 이 사회에서 약자의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각자도생식의 해결 방법을 강요받는다. 문제 유발자와 해결자가 같다는 전제가 숨겨진 해결 방식이다. 실제, 이 둘이 정말 동일 인물인지, 같은지를 확인하는 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로 다뤄지지 않는다. '환경이 지구의 문제가 아니듯, 여성의 문제 역시 여성의 책임이 아닌데’(p17) 말이다. 이런 개별적인 각자도생식의 해결 방법으로는 거대한 문제의 구조를 인식하기조차 어렵고, 따라서 문제 현상만 유지될 뿐이다. 이에 작가는 각자도생 해결 방법을 넘어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권력 구조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말과 언어로 말이다.



여성에게는, 사회적 약자에게는, 언제나 언어가 부족하다. 그것은 인식의 부재, 사유의 부재, 실천의 부재를 의미하고, 이는 곧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들의 좌절과 혼란으로 이어진다.(p20-22) 그러므로 작가는 세상에 낯선 시선, 질문을 던지면서 여성의 언어를 만드는 사회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책 출판의 의미를 넘어선 것이다.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해 존재 양식을 잃어버린 사회적 약자의 절박한 생존 운동을 표현하는 수식어를 감히 진부하다고 말할 수 없다.


평등, 인권 등의 거대한 이야기까지 꺼내며 이 책을 읽으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르게 생각하라가 모토인 사회이다. 그러나 이미 인류 절반의 경험 속에서 ‘다르게 생각하라’는 외침은 이미 그 효용을 다했다. 나올 만한 건 이미 다 나왔다는 소리다. 이제는 다르게 생각하라를 정말 다르게 생각해야 할 때다. 정희진이 주목한 나머지 절반의 경험과 세상은 그야말로 블루오션이다. 다르게 생각하다를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면, 나머지 인류 절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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