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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교진 Jun 03. 2017

삼가 읽어다오!

[스무 번째 책] 반디의 '고발'

빅 브라더, 하면 떠오르는 것은 일정하다. ‘빅 브라더’가 상징하는 바가 간단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해서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획일적으로 지배하려는 권력. 이것이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빅 브라더의 의미다. 실제 책을 읽고 나면, 소설의 핵심 장치가 상징하는 것이 명쾌하고, 또 이것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간단한 줄거리 요약만으로도 빅 브라더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면, 감시와 통제의 아슬아슬한 위기 속에서 본능적으로 그것의 의미를 알아챘거나.

      

어쨌거나 <1984>은 소설이다. 현실과 매우 가까워 자주 비교되고, 현재를 꿰뚫어 보는 통찰도 보이지만, 텔레스크린과 같이 작가가 메시지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설치한 장치들이나 배경 설정은 모두 가상의 것이다. 가상, 허구라는 것은 신기하다. 소설이 아무리 긴장과 위험의 연속일지라도 현실의 독자에게는 경각심, 반성, 회의, 견제 등을 할 생각과 감정의 여유로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현실을 닮은 모습이 있긴 해도, 결국 현실은 아니야. 이 소설을 계기로 우리 모두 경각심을 가지면 돼’와 같이 소설이기에 가질 수 있는 안도감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현실이고 지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허구라는 안정 장치가 풀리는 순간, 여유로운 생각? 메시지 파악? 교훈 습득? 이런 것들이 오히려 가진 자, 누리는 자의 여유 또는 다른 사람의 비극적인 처지와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행동일 수 있다고 생각됐다. <고발>을 보면서 말이다.       


자그마한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원고지를 꺼내 청년에게 건네줍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그 편지의 내용만 믿고 말입니다. ··· 그 원고는 지금 자유와 희망의 땅 대한민국에 와 있습니다.


<고발>은 북한의 저항 작가 반디의 소설이다. 작가는 북한 사회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꼈고, 북한 주민들이 실제 겪었지만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사연들을 하나하나 수집했다. 그리고 각종 사연들이 담긴 소문들과 실제 벌어졌던 사실들을 모았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작가의 이 비밀스럽고, 위험천만한 수집의 결과물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김일성과 마르크스 초상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 때문에 엄마는 커튼을 치지만 중요 행사를 앞두고 커튼을 치면 안 된다는 커튼 규칙과 충돌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유령 이야기>>


고향에 계신 병든 어머니를 보러 가려 통행증 발급 신청을 하지만, 번번이 반려 당해 몰래 고향을 향해 떠나야만 했던 아들의 이야기 <<지척만리>>


열과 성을 다해 당에 충성했지만, 갈수록 허무함과 당의 기만을 깨닫는 이야기 <<준마의 일생>>


김일성 애도 기간에 아들이 깨달은 현실의 부조리함을 듣고 혼란스러워 하는 아버지의 이야기 <<무대>>까지. 완전히 통제되고, 감시받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는 이야기는 역설적이게도 참 다양했다.       


다양한 이야기 외에 우리 독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재미적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북한어이다. 북한 출신 작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든 북한식 한국어 표현들과 이를 설명하는 주석은 이 책을 읽는 한국 사람들만 캐치할 수 있는 이 책의 재미다.        


철저하게 폐쇄된 북한 사회에서 북한 작가가 썼다는 이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작가 반디에게  북한의 솔제니친이라는 별명이 붙으며 작품에 담긴 저항 정신과 문학적 표현이 크게 주목받았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을 분류해야 한다면 수필, 에세이에 더 들어 맞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책이 다루는 7개 이야기가 지도부에 의해 발각이 되었을 때의 실제 당사자의 안전을 위해 인물의 이름 정도만 바꾸는 가벼운 각색을 거쳤다고 보는 것이다.


솔제니친과 달리 반디(북한의 솔제니친)는 자신의 이름을 숨겨야 했다. 자신의 주변에 늘 죽음의 공포가 상주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죽음의 공포가 작가로 하여금 예명을 짓게 하는 했듯이. ‘소설’이라는 형식 역시 죽음으로부터 실제 사연의 당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허구라는 가림막을 친 것이다. '장르는 중요하지 않아. 위험하니까 소설쯤으로 하자.'식의 가림막 말이다.  

    

북녘땅 50년을

말하는 기계로,

멍에 쓴 인간으로 살며     

재능이 아니라

의분으로,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나의 이 글     

사막처럼 메마르고

초원처럼 거칠어도,

병인처럼 초라하고

석기처럼 미숙해도

독자여!

삼가 읽어다오    

 

이 책을 통해 북한의 광기, 이 광기에 짓눌린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겠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대단함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치밀하게 사람을 억압하고, 통제하고, 감시하는 사회에서도 현실의 부당함을 깨닫고 이를 표현하려는 사람이 어디든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 생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꿈꾸고 이를 실현하는 본능적인 행동에 대해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다. 절망적인 이 책은 사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고, 변화와 희망의 전조인 것이다. 그러니 독자여! 삼가 읽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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