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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교진 Aug 04. 2017

도시의 주인을 찾습니다.

[스물네 번째 책] 정석의 ‘도시의 발견’

도시는 정치적이다. 도시는 자본과 권력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당장 재개발하는 곳만 봐도 그렇다. 재개발은 건물과 기반시설이 열악한 곳에서 일어나야 하는데, 정작 재개발이 일어나는 곳은 돈이 많은 곳이다. 도시는 돈이 되는 쪽으로 움직인다.      


도시는 또한 권력에 의해서도 움직인다. 히틀러의 집무실은 복도가 길고 천장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히틀러를 만나기 위해 집무실에 오는 동안 이미 주눅이 들도록 치밀하게 디자인 된 것이다.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북한의 김일성 광장이나 주체사상탑 역시 도시가 권력에 따라 움직이는 좋은 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20~30년을 두고 역사복원과 환경생태 복원을 목표로 추진하려고 했던 청계천 복원 사업이 당시 이명박 서울 시장의 공약으로 변모하면서 청계천이 원래의 목표를 잃고 2년 3개월 만에 인공하천으로 복원된 것이 대표적이다.      


자본과 권력이 만드는 도시는 어쩌면 편리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들이 ‘살고 싶은 도시’로 직결되지는 않는 것 같다. 재개발로 살고 싶은 집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서민층 주거지에 부자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지가가 올라 원래 살던 서민들이 밀려나는 일이 더 많은 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다면 살고 싶은 도시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도시의 발견>은 이에 정석 교수의 답이 들어 있다.      


작가 정석 교수는 도시를 움직이는 힘을 자본과 권력에서 시민으로 옮겨와야 한다고 말한다. 도시가 정치적이라면,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 역시 정치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과 권력으로 작동하는 도시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오직 수(數)에 있다. 단합된 힘, 강력한 다수가 시민들이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 갈 힘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마을 단위의 주민들이 모이고 연대해서 목소리를 내면, 원하지 않은 재개발을 저지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고, 주민들이 직접 살고 싶은 도시를 계획하고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작가는 도시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그가 설명하는 연구 결과, 프랑스, 미국, 콜롬비아 등의 해외 사례들을 보면 도시는 사람들의 삶의 질과 행복도 향상에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집 담장이 있느냐, 없느냐가 범죄 예방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서울 구로구의 단독주택 지역과 다가구, 다세대 주택 지역의 범죄발생 현황을 분석해 본 결과, 담장을 허문 곳이 오히려 범죄의 밀도가 낮았다고 한다. 높은 담장이 범죄로부터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담장을 허물고 나자 확 트인 시야에서 집들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되고, 이 ‘감시의 눈’이 범죄를 예방해주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불록이 어떻게 이루어졌느냐는 그 도시의 상권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신도시는 대부분 슈퍼 블록과 넓은 도로로 도시를 구성한다. 그러나 슈퍼 블록은 자동차가 막힘없이 통행하기에는 좋아도 보행자에게는 경로 선택의 여지를 별로 주지 않는다. 블록이 커지면 커질수록 보행자들은 멀리 돌아가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 반면 작은 블록들로 이루어진 지역에서는 최단거리 통행이 가능하고, 다양한 경로가 생겨 선택의 폭도 훨씬 넓어진다. 사람들이 이곳저곳 골고루 다닐 수 있어 작은 블록에서는 가게의 판매와 영업도 유리해진다는 얘기다.      

담장의 유무가 범죄 예방 효과에 영향을 주듯, 블록의 모양이 상권 형성에 영향을 미치듯 도시의 생김새는 삶의 질, 행복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사람이 만든 책이 사람을 키우듯이, 사람이 만든 건물과 도시 역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구호로서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와 실체로서 살기 좋은 도시는 우리에게 중요하다.      


작가는 이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으로 ‘마을’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2012년부터 시작된 다양한 분야의(경제, 주거, 문화, 복지) 마을공동체 사업을 소개하면서 이 공동체가 실제 해낸 성과와 마을의 변화에서 희망을 본 것이다. 실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마을과 학교가 협력한 ‘은평 북스타트’부터 에너지 자립을 목표로 한 ‘성대골 에너지센터’, ‘마을예술창작소’와 2015년부터는 서울시가 마을계획 시범 대상지를 선정해 주민들이 직접 그 마을 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있는 제도를 보면 주민들의 생활 패턴의 변화와 이웃 간의 유대 관계의 변화가 굉장히 인상 깊다.      


작가가 주목한 이 변화들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 살고 있는 도시가, 동네가 마음에 드는지,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 그리고 본인도 모르게 동네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이때부터가 진짜 ‘도시의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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