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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교진 Mar 09. 2018

그 남자의 직장생활

[서른 번째 책] 김웅의 '검사내전'

재벌들이 실형을 살 확률보다 낮은 게 사기죄로 구속될 확률이라고 한다. 사기죄 재범률이 77%로 사기죄가 처벌받기 어려운 천혜의 환경을 우리나라는 갖추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법 제도에서는 사기꾼을 제대로 처벌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사기는 각자가 알아서 피해야 한단다.


검찰의 인사이동과 사건 재배당을 꿰뚫으며 구속을 피한 전문 사기꾼 할머니를 상대하고, 본인이 도망갈 구멍만 만들어 놓고 처벌을 피한 수많은 사기꾼들을 상대했던 대한민국 검사, 김웅이 하는 조언이다. 깊이 감동 받았다. 이 책을 계속 읽어보기로 했다. <검사내전>이라는 책이었다.




펴고보니 감웅 검사, 그는 또라이었다. 고향에서 체육 행사를 하는 검사장 앞에서 '기왕 이런 행사를 할 거면 우리 관할 지역에서 개최해 갈비탕 한 그릇이라도 팔아줬으면 불황에 시달리는 지역 주민들이 좋아했을 것 같은데 그게 좀 아쉽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고소인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검사장의 말을 듣고도 '어떻게 고소를 헌법상 기본권보다 더 중요하게 보호할 수 있느냐.'는 말을 하고, 술자리에서 부하직원들을 호출해 어느 쪽이 더 많이 나오는지를 내기한 차장검사에게 '그럼 제가 술 마시다 차장님을 불러도 차장님이 나와주나요?'를 되물었단다. 재미없을 수가 없는 책이다.


권력을 추구하며 야망과 기개를 숨기지 않는 검사들 속에서 그는 분명 또라이지만, 범죄 피의자와 피해자를 만나 사건을 처리해 가는 과정에서 그가 풀어가는 세상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친근하다. 그가 사건 기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바라본 세상과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사는 우리 사회 엘리트 또는 사법 권력으로서 전혀 다른 세상에 살며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았는데, 김웅 검사가 말하는 세상과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의 생각이 우리의 정서, 생각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이 책이 공감을 얻고 인기를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제부터 그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그 생각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재판장에 나가보면 피해자의 반신불수보다 피고인의 치질이 더 중병 취급을 받는다.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에서 범죄는 국가에 대한 침해로 보고 있다. 범죄를 국가와 범죄자와의 대립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형사 사법 제도는 국가가 국가에 대한 침해를 이유로 함부로 시민들의 자유와 생명을 유린하지 못하도록 적법절차와 인신보호 등을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내란죄, 반역죄면 몰라도 폭행이나 사기, 절도, 살인과 같은 범죄는 엄밀히 말하면 국가에 대한 침해라고 하기 보다는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침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범죄 사실에 있어서 국가가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현재의 사법 제도에서 범죄를 국가와의 대립으로 보고 있어서 폭행, 사기, 절도, 살인 등의 범죄가 발생하면 형사 사법 제도에 따라 범죄자의 인권 보호라는 절차적 정의에만 집착한다.


국가와 범죄 간의 대립으로 보는 관점에서 당연히 피해자는 배제되고, 법적 처벌이 끝났다고 하더라도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 사법 제도가 범죄의 재범과 증가라는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웅 검사는 묻는다. 실제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형사 사법 절차에세 배제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상처 입고 피 흘리는 피해자는 쳐다보지 않는 현재의 사법 제도가 과연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되는 사법 권력을 향한 복수전들이 떠올랐다. 우리 사회가 사실 이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웅 검사는 피해자를 배제하고 국가가 전면에 나서는 이런 사법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서 '회복적 사법이론'을 대안으로 가지고 왔다. 범죄자와 피해자가 직접 당사자로서 분쟁 해결 과정에 참가하고 주도하는 것이다. 피해 보전과 화해에 집중하며 가해자의 책임감을 고취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이 방법은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과 범죄를 인정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애초에 형사 사건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기에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미국엔 이미 이 제도가 정착되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형사 조정 제도의 모습으로 시작되어 조정 성립률이 61.4%나 된다고 한다.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김웅 검사는 한 가지 대안을 더 제시하는데 이게 정말 매력적이다. 우리가 갈등과 분쟁을 해결할 능력을 가져야 한단다. 치솟는 고소 사건 수만 보더라도 우리가 분쟁과 갈등의 해결 방법으로서 주로 고소를 선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단 고소가 이루어져서 정식 사건으로 입건이 되면 그 사람의 전과기록을 밝혀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게 되고, 출석을 요청해야 함으로써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 또 각종 서류나 통신 자료를 요구함으로써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한다. 검찰은 우리의 삶에 너무 많이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의 분산과 견제, 균형을 국가 기관, 공권력 사이에서만 실현할 것이 아니라 공권력과 시민들 사이에서 실현해야 하며 사법 권력의 집중화를 문제로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분쟁과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에서부터 실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법은 세상의 규정하는 규칙 중 하나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서 그것이 도덕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법 말고도 세상을 읽어내는 다양한 언어들이 있음을 잊고 있었다.




그가 검사 일을 하면서 배운 세상은 직선이 아닌 곡선이었다고 한다. 굉장히 다양하고 모순적이라는 것이다. 두 가지 사실이 있고 그 두 가지 사실 사이에 단절된 사실이 있을 경우 우리는 흔히 상상력으로 두 사실 간의 최단 거리를 만들어낸다. 아이가 아동학대를 당해 죽었다는 사실 하나와 그 아이에게는 계모가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 앞에 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두 가지 사실로 ‘계모가 아이를 괴롭힌다.’라는 두 사실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를 쉽게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김웅 검사가 본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가치는 여기 있는 것 같다.  김웅 검사가 검사 시절 걸어왔던 먼 곡선의 길을 따라가는 것 말이다. 모두 김웅 검사가 안내하는 이 곡선의 길을 걸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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