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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교진 Apr 02. 2018

다시 순이 삼촌

[서른한 번째 책] 현기영의 '순이 삼촌'

음력 섣달 여드렛날, 한날한시에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터져 나온다. 온 동네가 같은 날 각자의 집에서 제사를 치르는 것이다. 한날한시에 터져 나오는 곡소리와 자정 넘어 들리는 비참한 이야기가 싫어서 가지 않았던 제삿날에 오랜만에 참석했는데, 여기서 순이 삼촌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된다.


30년 전, 당시 공비라고 해서 산에서 활동하는 공산당 유격대, 무장대로 활동하는 젊은이들을 군경이 탄압했는데, 서서히 젊은 청년층으로 그 범위를 넓히면서 사람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제주도가 1948년에 있었던 5.10선거를 반대했던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의심과 확신은 더 쉬웠고 탄압의 강도는 점점 더 심해졌다. 법과 제도로 계엄령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제주도에 처음으로 계엄령이 선포됐으니 그 탄압의 강도가 어느 정도였을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다 이제는 청년이 사라진 가족은 도피자 가족이라고 하며 전 가족을 몰살하며 초토 작전이라고 그 마을을 모두 불태워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난리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바로 순이 삼촌이다.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아 운동장에 세워 놓은 날이었다. 군경의 직계 가족만 단 뒤로 가서 섰고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교문 밖으로 끌려 나가 일주도로변 옴팡밭에서 총살을 당했다. 일찍이 기절해 있었던 순이 삼촌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순이 삼촌의 오누이는 옴팡밭에서 죽고 말았다. 끔찍한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았지만 신경쇠약과 환청에 시달렸고 결국 그녀는 자살하고 만다. 자살한 그녀의 시체를 발견한 곳은 30년 전 학살을 당했던 일주도로변이었다. 결국 그 자리로 돌아가 죽은 것이다.




<순이 삼촌>은 10개의 단편 소설로 이뤄진 소설로 제주 4·3 사건을 최초로 알린 책이다. 4·3 사건이 발발한 지 30년 만인 1979년에 말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0년에 이 책은 불온서적이 됐다. <순이 삼촌>은 현기영 작가가 쓴 소설로 작가는 이 책을 쓰고 3일 동안 고문을 당하고 한 달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 국가보안법으로 묶지는 못했는데, 국가보안법으로 묶으면 재판을 통해 4·3 사건이 온 국내에 알려지는 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순이 삼촌>은 불온서적으로 묶어버리고, 금기시 되어오던 것을 깨뜨려버린 이 제주 출신 작가는 그저 고문하고 때리는 거 말고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순이 삼촌>은 7년을 불온서적으로 묶여 있다 세상에 나왔지만 거세지는 민주화의 바람 속에서 문학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일을 해냈다. 4·3 사건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에 대한 관심을 불러오고, 묻혀 있던 진실을 규명하는 운동의 시작이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현기영 작가가 쓴 이 소설이 다행스럽게도 진실로 향하는 단 한 발자국에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도 뚜벅뚜벅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며 이어져 오고 있다.


천재지변과 같이 막강한 가해자들, 그들에게 분노나 증오를 품는다는 것은 마치 천둥벼락에 적개심을 품는 것과 다를 바 없이 허망한 노릇이었다. 고향 섬 해변을 수시로 침범하여 섬 여자를 약탈, 겁간, 살인을 자행하던 왜구들이 전설 속에서는 해룡으로 묘사된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가 아니었을까?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제주도민에서 4·3 사건은 천재지변과도 같았다고 말한다. 다른 의미에서 나에게도 그렇다. 교과서에서 배웠지만 ‘제주 4·3 사건’이라고 이름만 외우면 문제 틀릴 일이 없게 딱 그 정도로만 배웠는데, 이 정도의 피해 규모와 이 정도의 희생자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오래 전부터 말을 살찌우는 행정에만 관심이 있어 초지가 마르면 말을 보리밭으로 몰아 백성들이 먹는 일 년 양식을 먹어치우게 했다던데, 중앙에서 벗어나 망망대해에 외롭게 고립되어 있었던 오래된 역사 또는 전통 때문일까. 이렇게 슬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는 아직도 물과 바다와 돌이 많은 아름다운 자연으로 또 다른 ‘해룡’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2018년이면 해룡의 가면을 서서히 벗겨 가해자를 직면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마침 내일이 4·3사건 70주년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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