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따라올 수 없는 연극의 중독적 매력

나를 만든 동아리

by 참치

연극동아리에 들어오기 전 연극을 접한 건 재수가 끝나고였다. 우연히 아빠가 선물로 받은 공연 티켓을 들고 크리스마스날 집 앞 소극장에서 한 공연이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이었다. 연극이라는 콘텐츠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고작 국어시간에 배웠던 희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이라는 점, 희곡의 3요소(해설, 대사, 지시문), 시•공간의 제약이 있고, 일회성이라는 내용들이 다였다. 하지만 6년간 연극동아리를 하면서 연극쟁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주변에 친구들은 연극대학 치과 동아리를 하고 있는 줄 알고 있는 친구들도 있을 정도로 빠지게 된 연극은 그 매력이 넘친다.

박준용 연극 평론가가 말하는 사람들이 연극을 영화보다 안 보게 되는 4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비싸다

-멀다

-홍보가 안된다.

-어렵다.

영화와 연극은 엄연히 다른 것인데 계속 영화의 기준에 맞춰 연극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연극이라는 매체는 여전히 삶과 동 떨어진 매체이고 더욱이 코로나 덕에 그 거리감을 좁히기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이 영상의 시대에 느낄 수 있는 연극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우선 첫 번째 시선의 차이이다.

영화는 감독이 ‘카메라’라는 기계적인 장치를 통해 바라본 비일상적이고 기계적인 세상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 없던, 상상할 수밖에 없던 세계를 만들어 보여주는 장점을 갖고 있다. 반면 연극은 일상적 시선의 연장선상에서 보이는 것이다. 실감 나는 것으로 치면 영화가 더 실감 난다. 특정 상황에 적절한 음향까지 음향감독도 투입이 되어 더 그 장면을 리얼하게 포착한다. 현장에서의 무수한 연극은 한번 하고 마는 게 아니라 짧게는 2주 한 달 두 달 공연을 하다 보니 실감 나는 연기보다 배우의 안전이 중요한 매체이다. 암전 이후 시간의 흐름이 달라져도 이전 씬에서 맞은 손바닥 자국이 얼굴에 남아있다면 몰입이 깨지고 그런 점에서 연극은 실감 나지 않을 수 있다.

영화적 시선은 기계적이고 거리를 두고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연극은 일상적 시선의 연장선 상의 경험으로 받아들여져 나와 똑같은 피와 살은 가진 어떤 인간이 맞고 쓰러져 고통을 느끼고 현장의 경험을 같이 나누는 동질감을 느끼는 매력이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연극은 사건과 사고의 발생 가능성의 예술이다.

사건은 좋은 것이고 사고는 나쁜 것이다. 당하는 사람은 죽겠는데 보는 사람은 흥미진진하다. 연극은 매일매일의 공연이 사고 한번 없는 완전한 공연은 불가능하다. 이 사고의 발생 가능성이 보는 사람과 하는 사람에게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게 부정적 의미에서의 흥미로움이다.

이에 반해 사건은 긍정적 의미의 흥미로움이다. TV나 영화매체의 대본은 쪽대본이라는 형태로 보통 전날/직전에 주어진다. 순발력으로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연극의 대본들은 하루 6-7시간씩 연습을 최소 2-3개월, 긴 연습기간 동안 고민하는 거다. 일반 대학로나 큰 공연장의 공연은 정말 짧으면 2달 길게는 반년 이상도 연습을 한다고 들었다. 우리 연극동아리도 정말 힘든 연극동아리로 유명한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가장 긴 연습기간, 연습시간 때문에 힘들다는 점이다.

내 첫 연극 때 “꼼짝 마”라는 대사를 뱉는데 정말 다양한 캐릭터, 한 캐릭터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대사를 뱉었던 기억이 난다. 한 단어의 의미를 찾아내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대본을 읽다 보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연극을 예술이 되게 하는 절대 시간의 필요성이다. 사건은 빠르고 순발력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이 대사를 연습하고 캐릭터에 깊이 들어갔던 배우가 장기 공연 가운데 어느 날 배우가 아니라 그 배역이 되어 하나가 되어 그 배역으로서 마음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건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건 이 사건이 언제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준비된 배우는 그 경험을 10번 중 5-6번 경험을 하고 평생 한 두 번 겪어볼까 말까 하는 사람도 있다. 사건의 순간을 체험하기 때문에, 관객으로 같이 참여하기 때문에 연극이 영화보다 매력적이다.


세 번째로 연극은 소통의 예술이다.

연극은 배우와 관객이 끊임없이 상호 소통하는 예술이다. 배우가 어떤 진심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때 대사는 20-30% 부분만 차지하고 더 많은 부분은 비언어적 표현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연극적인 행위를 통해 소통을 할 때 긍정적인 반응은 모이고 모여 사건의 연극을 만든다.

사건의 연극은 연습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에 멈춰있다. 그 한계를 뚫을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관객의 긍정적인 에너지들이 모여 이루어낼 수 있다. 그래서 관객이 중요한 것이다. 이에 반해 부정적인 리액션이 모이면 사고의 연극을 만든다.

매일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때 사건 되게 만든다는 핵심적인 역할을 내가 한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봐도 된다. 자연스럽게 화를 내고 웃고 비언어적 표현을 자연스럽게 할 때 좋은 연극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연극을 보는 즐거움은 내 일상적 경험의 연장선상에서 어떤 극적인 경험을 같이 나누는 것.

사고의 긴장을 가지고 사건을 기대하면서 사건의 연극을 같이 만들어간다는 의미에서의 중독적 매력이 연극 가운데 내재되어 있다.


대학교를 다니는 6년 동안 선배들이 말하는 “인생의 황금기” 공중보건의 생활을 할 거라고 생각하며 공부를 안 하고 열심히 한 게 연극밖에 없어서, 갑자기 인턴을 남기로 한 내게는 막상 인턴이 끝나고 레지던트 면접을 볼 때 연극 이야기 말고 할 이야기가 없었다. 7분의 교수님들에 나 혼자 면접을 보는 다대일 상황은 14개의 눈이 달린 벽 앞에 놓여 나를 샅샅이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객관적인 성실함의 지표라고 하는 성적이 안 좋은 날 조금 더 위축시켰고 온 몸에 힘이 들어가 경직된 내 모습을 조금이라도 감추려 어깨는 힘을 풀고, 발끝에 힘을 줘 최대한 자신감 있으면서 여유 있어 보이려 했다. 연극이 어떻게 내 밑거름이 되었고, 어떻게 내 수련 생활에 도움이 될지 등 흔히 하는 면접 질문들에 연극을 접목시켜 열심히 말하던 중 교수님 중 한 분이 내게 물으셨다.

“그렇게 열심히 연극을 했는데 연극 쪽으로 나가볼 생각은 없었나요?”

본인도 연극을 해보셨다며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그 면접장 분위기가 한순간에 누그러뜨려질 수가 없었다. 같이 연극을 한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날 편하게 한 걸까. 물론 교수님 말씀대로 그런 생각도 해봤다. 자본주의 시대에 예술은 돈이 안된다는 것을 너무 많이 들었고, 실제 극단에서 활동하시는 분들과 함께 워크숍을 해봤을 때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다 들었었는데도 연극하는 게 좋아서 배우를 해볼까, 대학로 무대에 서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야 하는 것.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 있으니 일찍이 마음을 접었었는데 교수님께서 잠깐 내 연극 혼을 깨워주었다.

잠깐 잊고 있었지만 연극이 매력적인 것은 여전하다.


출처 :Youtube:<세바시 연극평론가 박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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