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남 1녀 중 장남, 누나형이 생기다.

나를 만든 동아리

by 참치

염상섭의 <삼대>를 읽으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덮어놓고 크게 되겠다는 공상도 가지고 있지 않으나 책상물림의 뒷방 서방님으로 일생을 마치기도 싫었다. 제 분수대로는 무어나 하고 싶었다.”

책상물림은 책상 앞에 앉아 글공부만 하여 세상일을 잘 모르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을 의미하며 저 구절을 읽고 난 후부터 나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첫째인 내게 모든 사랑과 애정을 듬뿍 주고, 부족함 없이 나를 키우려고 하셨던 부모님 덕에 내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부모님의 돈 주고 산 문제집에 있는 문제뿐이었다. 돈 주고 옷을 사려면 얼마를 들고 가야 하는지 몰랐고, 학교 앞 닭꼬치 집에서 닭꼬치는 얼마를 하는지, 노스페이스가 유행하는 가방인지 뭐가 요즘 연예계 이슈가 되는 게 뭔 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스쳐 지나다니면서 들리는 단어 하나하나 겨우 들려서 들어봤다 하는 정도가 내가 아는 세상의 전부였다. 책 속에 갇힌 문제들 말고는 다 엄마와 함께 해결하고 난 그렇게 부모님의 말 잘 듣고 학원을 다녀서 원하는 치과대학에 들어왔다.

첫째여서 내가 원하고 갖고 싶은 것은 손에 쥐어 주셨으니까 갖고 싶은 것은 딱히 없었다. 그렇지만 하나 쥐여주지 못한 게 있었다. 바로 누나였다. 주변에 누나와 형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러던 내가 부모님의 손을 벗어나 세상과 직접 마주하게 된 대학교 첫 행사 신입생 OT에서 형누나들을 만나게 됐다.

야구부 선배를 보는 내 느낌...이었다

동명이인의 야구선수 이름을 가진 덕에 야구동아리 선배들이 나를 꼬셨다. 그러다 뭐든 열심히 하라는 부모님 말씀대로 신입생의 통과의례인 자기소개와 장기자랑을 열심히 보여주었더니 연극동아리 선배도 나에게 러브콜을 보내왔다. 그때는 그 모든 게 치과대학의 동아리끼리 신입생 쟁취를 위한 경쟁인 줄 모르고 그저 나를 챙겨주고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데 최선을 다하려 했고 그게 지금의 내 모습까지 이어져왔다.

많고 많은 동아리의 러브콜 중 내가 연극동아리를 선택한 이유는 연극동아리가 힘들고, 이때 아니면 못할 것 같고 이 동아리를 통해서 나를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20여 개의 동아리 중 힘듦의 정도로 "빡센 동아리 3대장"이라고 하는 연극부, 밴드부, 풍물패가 있었다. 고생하는 것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나는 고생하는 동아리를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50-60일 가까이 아침 10시부터 하루 평균 연습시간 15-16시간 정도를 같이 생활하다보면 집은 어느덧 그냥 잠만 자는 곳이 되었고, 그렇게 합숙 아닌 합숙을 하며 연습을 하는데 진짜 친누나, 형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으며 내성적인 내 모습을 벗어나 무대 위에서 다른 사람을 연기를 하다 보면 외향적으로 바뀔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연히 놀러 간 처음의 연극동아리 술자리에서 내 솔직한 이야기를 친누나, 형이 있었다면 이야기하듯 말했다. 내성적이라 고민이 된다고. 친누나 형처럼 내 고민을 내 양쪽의 나보다 4-5살은 많은 당시 본과 4학년, 3학년 누나 형이 들어주며 졸업을 하고 나서도 선배들이 엄청 많이 오셔서 재밌다고, 소심했던 선배도 있는데 완전히 바뀌었다고 온갖 동아리의 에피소드들을 나를 사이에 두고 나누었다. 아직 취하지 않았는데도 모든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그저 재미있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동아리에 들겠다고 언제 어떻게 이야기하면 되냐고 묻는 내 질문에 양쪽 누나 형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자리에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안녕! 안녕! 안녕하십니까!!! “

그렇게 난 그 날 100여 명의 연극동아리 누나 형들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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