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부끄러운 일이지만 난 살면서 장애인들한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우물 안 개구리 + 온실 속 화초 콤보의 삶을 살아온 나에게 장애라는 것은 남의 일 같았다. 처음으로 장애에 대해 생각해 본 건 임신 때였다. '혹시 이 아이에게 장애가 있으면 어떡하지?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 당시 이 고민에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낳아 보니 다행히 아이는 정상이었다.
그러고 아기가 돌 때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던 아이를 보고 쎄한 느낌을 받았다. 자폐 스펙트럼의 가장 큰 특징이 호명 반응이 안 되는 거라던데... 난 가슴이 철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는 정상이다. 그냥 남의 말 안 듣는 애였을 뿐...) 하지만 1년이 지난 그 시점에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이 아이가 자폐든 뭐든 무조건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든 감당해 낼 것이라는 걸.
장애에 대한 지식과 이해는 없지만, 다행히 복지관 요가 수업을 맡기 전에 아이 엄마가 되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요가원에서 만난 20대 발달 장애 청년들을 볼 때, 부모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나도 엄마가 되어 보니 그 부모님들의 노력들이 눈에 선히 보였다. 깔끔하게 세탁된 옷에서, 온몸에서 나는 비누향에서, 턱이 쓸릴까 봐 손수건을 덧댄 마스크에서... 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는지가 보이니 나 또한 자연스럽게 애정을 담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좋았던 건 아니다. 까칠한 친구들도 있었다. 내가 핸즈온을 하려고 몸에 손을 대면 '하지 마요!' 말하며 거부하기도 했고, 아무리 같이 하자고 회유해도 '싫어요' 하며 거절당하거나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럴 땐 요가 강사로서 이 수업을 잘 이끌지 못한다는 생각에 속상한 마음도 들고, 기운이 빠져 다음 수업에 가기 싫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보람찬 순간들이 더 많았다. 균형 잡는 자세에서 손을 잡아 달라고 나한테 손을 내밀던 친구들, "선생님, 저 잘하죠?"물으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친구들, 사바사나 할 때 나더러 옆에 누우라면서 손을 잡아 주던 친구들. 열심히 움직여서 송골송골 땀이 맺힌 모습들을 보면 참 보람차고 흐뭇했다.
1시간이 넘는 수련 시간 내내 이 친구들한테 핸즈온을 하는 건 상당히 고된 노동이다. 허리 디스크인이 3만 원 받고 할 일이 못 된다. 일반인처럼 모방이 잘 안 되고, 주의력도 짧다 보니 일반 수업보다 몇 배로 힘든 수업이다. 또 근육이 경직되어 있어서 신체적으로 따라 하기 어려운 경우들도 많다. 수련 기간이 쌓여도 눈에 띄는 성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업을 계속해 왔던 이유는 이 수업 안에 사랑이 가득해서였다. 부모님들의 사랑은 물론, 복지사님들이 얼마나 큰 사랑으로 이 아이들을 대하는지도 훤히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안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아무 조건 없이, 그저 존재만으로도 사랑받아 마땅하다는 말, 참 많이 들었지만 예전엔 믿지 않았다. 그런데 이 수업을 하면서 모든 존재가 사랑이라는 말이 피부로 와닿았다. 참 이기적이고 매사에 부정적인 나조차도 무조건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을 이 수업을 하면서 처음 했다.이 수업을 만나서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