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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o Mar 06. 2023

감독판을 보고 나서야 이해되는 영화들처럼

헤밍웨이의 첫 소설 <우리 시대에>를 번역하며 느낀 짧은 이야기입니다

사진: Unsplash의 'Daniel K Cheung'

잘 만든 영화도 어느 장면에서는 연결이 어색할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이상한 장소로 가 있기도 하고, 연기자의 표정이 갑자기 미묘하게 이상해 보이기도 합니다. 잘 웃다가 갑자기 속 좁은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뚱해 있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제가 다 어색합니다. 한 참 뒤에 사이사이의 삭제된 장면들이 포함된 감독판으로 보면 이상했던 모든 게 납득이 됩니다. 처음 영화의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장면들을 구성할 때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과정들이 있는데, 투자자나 관계자들의 입김으로 처음 의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기도 합니다.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헤밍웨이의 첫 소설이자 단편집인 <우리 시대에>는 각 단편들과 그 단편들 앞에 있는 짧은 장면묘사가 어떨 때는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합니다. 몇 십 년이 지나 단편 모음집으로 묶여 나왔을 때, 첫 단편집에 있던 스케치들은 제외 됐습니다. 


    그렇게 되니 <아주 짧은 이야기>의 스케치가 닉에 관한 것이고 그 이야기가 바로 이어지는데도 닉에 대한 스케치가 없으니 그 아래 나오는 단편의 ‘그’가 누군지 독자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냥 이름 없는 사람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게 되는데, 처음 썼던 헤밍웨이판으로 보면 이 <아주 짧은 이야기>는 바로 앞에 있는 짧은 장면묘사와 이어지는 이야기처럼 읽힙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맛이 살아납니다.


혹시 감독판을 찾아보시나요? 감독판이라고 해서 무조건 지루하고 길어지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원작의 의도를 그대로 느끼는 그 즐거움을 맛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번역한 <우리 시대에>는 와디즈에서 펀딩으로 2023.3.20까지만 판매됩니다.

https://bit.ly/3ZhOjq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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