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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란 Jan 29. 2021

희망으로 지속할 수 있는 지점

#아침에는일기를

파티룸. 소설가와 시인 그리고 평론가가 모여 앉아 지난 한 해를 결산한다. 어느 지면에 단편 소설을, 시를 혹은 비평을 실었는지.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꿈과 용기, 폭력과 고통에 대한 담론 같은 건 없었다. 그들이 전구색 조명 아래 나란히 앉아하는 결산은  '벌이'였다. 이름하여, 


'글로! 얼마 벌었나?'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을까. 꼭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어도, 텍스트 읽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궁금증을 가질만한 주제인데 생각만큼 드러난 정보는 없다. 너무 많이 버는 사람과 아주 적게 버는 사람의 극심한 격차가 노출되었을 때, 후자의 상대적 박탈감을 고려해 알고리즘을 미리 설계한 것은 아닐 것이다. 너무 많이 버는 사람의 이야기는 보지 않으려고 해도 보이니까.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을까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어떤 글을 쓰려고 하는지, 그들의 생각하는 상한선이 얼마 인지 가늠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가정을 해본다.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직장을 다닐 때의 고정적인 벌이, 노동하는 것에 비례해 글을 쓸 수 있는 지점. 영혼의 부름에 답하는 동시에 몸뚱이도 지킬 수 있는 그 지점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한 거라고. 지금 당장 <킹덤>, <도깨비> 같은 드라마를 쓸 수는 없지만<박쥐>, <아가씨> 같은 영화의 각본을 내게 맡겨주지 않더라도. 아이유가 노랫말을 청탁해 오는 일이 오 년 십 년 후의 일일지라도. 그런 날이 내게도 올 거라는 희망으로 글 쓰는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지점이 있는지.


직장 노동자의 삶이 지루해지고 글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된 그즈음부터 나의 탐구 혹은 저울질은 시작되었다. 글 쓰는 사람들이 있는 장소, 그들의 인터뷰를 실은 영상이나 글 주변에서 자주 서성였다. 그들은 얼마나 (시간을 들여 글을) 쓰고, (작업 량에 비례해) 얼마를 받는지. 숫자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문인은 대부분 등단 이후 작업을 요청받는다(글을 발표할 수 있다). 단편 소설 한 편은 원고지 80~100매 기준 80~150만 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평론은 매당 6,800원(최저 1,500원인 곳도 있다고). 시는 한 편에 (평균) 7만 원인데 보통 2편씩 청탁을 받는다.*


미등단 프리랜서 작가의 경우 정해진 기준이 없다. 방송 작가는 주 단위로 몇십(30~60)만 원을 받거나 월 단위 혹은 회당에서 경력에 따라 몇 백(200~500)만 원을 받는다. 금액과 무관하게 부당한 지점은 (작가 일을 했던 친구들 말에 의하면) 근로 계약서도, 퇴직금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최근에는 유튜브 작가도 조금씩 수요가 늘고 있는데 내가 일하고 있는 팀에서는 5분 내외 원고에 편당 7~15만 원을 기준으로 한다. 채널 볼륨이 큰 곳은 월급제 작가를 고용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채널은 방송이나 전업 작가를 하면서 사이드로 원고를 쓸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말하자면 경력직 프리랜서를.


이 숫자 안에서 '그런 날이 내게도 올 거라는 희망으로 글 쓰는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지점'이란 과연 어디일까. 그 지점을 찾아 오늘도 책을 찾고, 일기를 쓴다. 내 이름이 들어가 있는 글은 몇 자 쓰지 못하고, 이름 없는 유튜브 원고를 붙들고 오후 내내 시름한다. 1월도 그렇게 지나고 있다. 그냥 좋아서, 라는 말이 통용되는 세계에 산다면 없을 고민을 참 많이도 하면서



*

유튜브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24LnRjyLfz4&t=102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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